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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27세 천재 해커의 죽음이 남긴 것

중앙일보 2013.01.16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이지상
경제부문 기자
지난 11일(현지시간) 컴퓨터 프로그래머 겸 인터넷 정보자유 활동가인 애런 스워츠(27)가 뉴욕의 아파트에서 자살했다. 그는 메사추세츠공과대학(MIT) 학술자료 사이트 해킹 혐의로 검찰에 기소돼 첫 재판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 그의 죽음에 미국 사회가 보인 반응은 이전과 사뭇 달랐다.



 자살과 해커 범죄를 죄악시해 온 평소의 미국 여론과 달리 스워츠에 대해선 동정론이, MIT와 검찰에는 책임론까지 일고 있다. 미국 대학 교수들까지 트위터를 통해 자신의 학술 논문 자료를 무료로 일반인에게 공개하며 그에게 조의를 표할 정도다. ‘피해자’ 격인 MIT조차 스워츠의 죽음에 학교 측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내부 조사에 착수했다. 특허와 권리를 중시하는 미국 사회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사건’이다.



 애런 스워츠는 소셜 뉴스 웹사이트인 레딧의 초기 개발자로 미국에선 ‘천재 해커’로 통했다. 14살 때 사용자가 원하는 뉴스를 검색하면 앞부분만 공개된 채 목록처럼 나열되도록 한 ‘RSS(Rich Site Summary)’를 공동제작하면서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



 이런 그가 문제가 된 건 “인터넷 정보는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지난해 MIT의 학술자료 보관 웹사이트를 해킹하면서다. 당시 그는 과학저널과 논문 480만 건을 무단으로 내려받았다가 적발돼 불법 해킹과 저작권 침해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다.



 스워츠는 개인적 이익을 취할 의도가 없었다며 무죄를 주장했지만 미국 검찰은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최고 35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스워츠의 유족과 동조자들은 “ 검찰이 스워츠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공권력을 비난했다.



 그의 죽음을 둘러싼 미국 사회의 전례 없는 반응은 그간 ‘특허 전쟁’으로 몸살을 앓아온 제도적 현실에 대한 미국 국민들의 염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될 듯하다.



 실제로 미국에선 “법원이 특허 등에 대한 권리를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인정한 탓에 소송 비용만을 노리는 ‘특허 괴물’과 소송이 남발하고 있다”며 지적 재산권 과잉 보호를 꼬집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반면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과보호로 인한 부작용으로 몸살을 앓는 미국과 달리 한국은 저작권자가 마땅히 받아야 할 권리조차 보호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심지어 불법 다운로드가 ‘주류’이자 ‘상식’으로 통할 정도다. 자신의 소설이 인터넷 공유 사이트에서 열 권에 10원, 20원으로 거래되자 10년간 해 온 창작 활동을 접고 아파트 경비원이 됐다는 한 장르소설가의 하소연이 씁쓸한 이유다.



이지상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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