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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베이비박스의 진실

중앙일보 2013.01.16 00:00 종합 33면 지면보기
소라미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개정된 입양법으로 인해 베이비박스(부모가 아이를 몰래 두고 갈 수 있게 만든 곳)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많아졌다는 비판이 있다. 비판의 개요는 이렇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으로 출생신고가 의무화되었고, 그로 인해 미혼모의 혼인 외 출산 사실이 호적에 여과 없이 드러날 것이고, 미혼모들이 이게 두려워 입양을 포기하고 아이를 유기(遺棄)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새 입양법이 입양을 가로막는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과연 그럴까.



 입양법 개정 전에도 입양신고를 위해서는 당연히 입양될 아동에 대한 출생신고가 필요했다. 그러나 법대로 입양신고가 이루어진 사례는 희박했다. 입양신고가 아니라 입양부모의 친자녀인 것처럼 ‘허위로 출생신고를 하는 방식’으로 입양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법원과 같은 공적 기관의 개입이 없었기 때문에 탈법적인 입양 관행이 수십 년간 굳어졌다. 그 결과 장애아동 지원금을 받기 위해, 아파트 분양 선순위인 다자녀가구가 되기 위해, 앵벌이를 시키기 위해 입양제도가 악용되는 사례가 발생했다. 입양제도 개정의 당위성은 여기에 근거한다.



 개정된 입양특례법에 따르면 입양 절차가 완료되면 아이와 친모의 가족관계증명서에 모자관계 기록은 일절 남지 않는다. 별도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가 생성되어 그곳에서만 친모와 친자 관계가 기재돼 관리된다.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열람이나 증명서 발급이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 원칙적으로 본인만이 열람 가능하며, 아이는 성인이 된 후에만 열람할 수 있다. 학교나 사회생활에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의 제출을 요구받을 일도 없다. 따라서 개정된 입양법으로 인해 미혼모가 혼인 외 자녀를 출산한 사실이 무차별적으로 노출된다는 일부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미혼모들이 아이를 출산한 기록이 가족관계증명서에 전혀 남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그 추운 날씨에 갓 태어난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버리고 갔을까. 입양기관이, 언론이, 정부가 제대로 된 정보를 충분히 줬더라도 영아 유기를 선택했을까.



 예기치 않은 임신을 하게 되면 혼자서 전전긍긍했을 것이다. 미혼모에 대한 편견으로 친지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못했을 터이다. 매달리는 데가 인터넷이다. 거기서 잘못된 정보에 접하게 된다. 개정된 입양법 때문에 출산 사실이 드러날 수밖에 없게 되고, 베이비박스라는 영아 유기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본인이 키울 생각을 해보지도 않고 베이비박스 유기를 선택하게 된다.



 이런 상황인데도 일부 언론에서는 베이비박스를 미담 사례로 다루고 있어 걱정스럽다. 유엔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체코 정부를 상대로 아동 권리를 침해하는 베이비박스 프로그램을 조속히 중단할 것을 권고했다. 그 다음 차례는 우리나라가 되어야 할까.



 개정 입양법은 지난 수십 년간 탈법적으로 이루어진 입양 관행을 고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그동안 아동 인권과 미혼모의 친권이 무시되고 박탈돼온 점을 개선함으로써 국제적인 인권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이 담겨 있다. 몇 십 년간 쌓여온 잘못된 입양 관행을 바꾸자니 이해 관계자들의 불만이 제기될 수 있고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과도기적 현상이다.



 그래서 영아 유기 문제가 마치 개정된 입양법 때문인 것으로 호도해서는 안 된다. 개정된 입양법이 시행된 지난해 8월 이후 영아 유기가 증가했다는 객관적 통계조차 없다. 보다 근본적으로 미혼모의 영아 유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다양한 방책이 모색돼야 한다. 개정 입양법을 되돌리는 것은 대안이 아니다. 청소년 미혼모를 예방할 수 있는 성교육을 강화하고, 친부모가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지원 정책을 마련하며, 미혼모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한 인식 개선 작업이 병행돼야 한다. 또 미혼부모의 사생활 보호를 위한 가족관계등록제도의 정비 등 제도적인 보완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소라미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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