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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는 소치 겨울올림픽 … 서른에 복귀한 피겨 황제 플류셴코

중앙일보 2013.01.15 16:40 8면
2008년 일리야 쉬얀 패션쇼에서 공연하는 플루셴코. 2006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뒤 은퇴한 그는 방송 출연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러시아 FOCUS] 30대 노장의 올림픽 금 80년 만에 재현 노린다
2010년 판정쇼크에 은퇴
올 유럽선수권 우승하며 부활
네 번째 겨울올림픽 도전



‘볼고그라드에서 체육학교를 다니던 한 11세 꼬마가 있었다. 학교가 문을 닫자 아이와 엄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로 이사를 왔다.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한 층 전체에 화장실이 하나뿐인 공동아파트에서 방 하나를 빌려 모자는 살았다. 먹을 것도 없었다. 거주등록이 안 돼 있어 엄마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아이는 다 떨어진 운동화를 신고 다니며 사과 한 알이 생기면 엄마와 나눠 먹었다. 배를 곯는 경우는 다반사였다. 먹을 것을 사기 위해 빈 병을 모으러 다녔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피겨스케이트의 세계적 거장 예브게니 플류셴코의 이야기다. 한국에선 김연아를 꼽지만 러시아인이 플류셴코에 대해 갖는 자부심도 대단하다. 그의 경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1998년 국내 선수권 우승 이후 세계선수권 3회 우승, 유럽 선수권 7회 우승.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겨울올림픽 은메달에 이어 2006년 토리노 올림픽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잠시 은퇴. 2010년 밴쿠버 올림픽에서 두 번째 금메달을 노리며 2009년 복귀를 선언했다. 그리고 은메달을 땄다. 그에게 은메달은 패배를 의미했다. 그의 은메달은 밴쿠버 올림픽 최대 스캔들이었다. 경쟁자들과 수준차가 커서 그의 금메달을 의심한 사람은 드물었다. 그러나 심판들은 미국의 에반 라이사첵의 손을 들어주었다.



2009년 다시 은퇴 선언. 그 후 3년 동안 플류셴코는 정치, 피겨쇼 TV 사회자 등 여러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제 은반의 무대는 아예 멀어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다시 피겨 역사상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한 플류셴코는 2012년 또다시 유럽선수권에서 우승했고, 이제 자신의 네 번째 올림픽, 조국 러시아에서 개최되는 2014년 소치 올림픽을 향해 맹연습 중이다. 스케이터들이 우아한 포즈로 여유롭게 빙판을 누비던 100년 전 울리히 살코 같은 선수가 활약하던 시절에는 한 선수가 10년 이상 정상의 자리를 누리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 피겨스케이팅은 체력 소모 면에서 육상에 육박하는 수준이 되었고, 따라서 23∼24세가 선수 경력의 최전성기로 여겨지고 있다. 플류셴코의 복귀 선언이 믿기지 않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복귀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이번 12월 벌써 공식 경쟁무대에서 이 ‘피겨 황제’의 연기를 다시 볼 수 있게 된다.



서른이 넘어 올림픽 시상대에 오른 선수는 스웨덴의 그라프스트롬이 마지막이다. 아득한 1932년 일이다. 플류셴코는 그라프스트롬의 족적을 되풀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진정한 ‘피겨 황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 “그의 리허설을 보았는데, 플류셴코의 재능에는 한계가 없나 봐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어요. 몸도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고요.” 11명의 올림픽 챔피언을 키워낸 피겨코치 타티아나 타라소바의 말이다.



서른의 나이에 여전히 세계선수권대회를 누비며 최강의 자리를 노리는 것은 그가 지닌 놀라운 자신감 때문에 가능하다. 긴장을 안 할 순 없겠지만, 그는 경쟁과 책임감을 자신만의 만족감으로 변화시키는 독특한 기질을 타고났다.



그의 매니저인 아리 자카랸은 “플류셴코의 매력은 그가 다른 누구한테도 찾을 수 없는 광적인 스포츠맨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입니다. 뼛속까지 스포츠맨 이거든요. 승부사 기질이 핏속에 흐르고 있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러니 플류셴코가 2014년 소치에서 다시 금메달을 노린다 해도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니다.



“…학교에서는 그이가 가진 재능 때문에 미움을 받았대요. 체육학교에서 정말 심하게 집단 따돌림을 당했어요! 11세에 벌써 3회전 점프를 해내는 그이를 미워하는 게 당연했죠! 상급반 학생들이 그의 재능을 시기해서 때리고 모함하고 학교에서 나가라고 협박까지 했다고 해요. 그이가 성인이 된 후 학교 내 집단 따돌림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랍니다.” 유명 프로듀서이자 부인인 야나 루드콥스카야는 플류셴코의 힘이 나오는 비결을 설명한다.



얼마 전 플류셴코는 모스크바 얼음궁전을 꽉 채운 팬들 앞에서 생일 축하 아이스쇼를 열었다. ‘이제 겨우 서른’이란 타이틀을 내건 이 쇼에서 그는 2005년 마지막으로 보여주었던 4회전 점프들을 가뿐히 완성했다. 안무에 대한 몰입도 돋보였다. 여전히 훌륭한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는 플류셴코에게 팬들은 환호했다.



티무르 가네에브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베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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