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車轄<거할>

중앙선데이 2013.01.12 23:03 305호 27면 지면보기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춘추시대 노(魯)나라에 손재주가 뛰어난 공수반(公輸般)이란 목수가 있었다. 그는 어느 날 나무토막과 대나무 살로 스스로 나는 까치를 만들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날아오른 나무까치는 사흘 동안 땅에 내려앉지 않았다. 백성들의 박수갈채를 받은 공수반은 세상에 나무까치보다 더 교묘한[巧] 물건은 없다고 생각했다.

漢字, 세상을 말하다

“당신이 만든 나무까치는 교묘하다 할 수 없다.” 목수였던 묵자(墨子)가 공수반을 꾸짖었다. 공수반이 항의하자 묵자는 “당신의 까치는 수레바퀴에 차축을 고정시키는 비녀장(車轄·거할, linchpin)만 못하다. 목수는 눈짐작으로 세 치 비녀장을 만들지만 수레가 무거운 짐을 싣도록 돕는다. 당신의 까치는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업적이 백성에게 이로울 때 교묘하다 말하지, 이롭지 않은 것은 졸렬[拙]하다고 한다.”(『 묵자』노문(魯問)편)

『 묵자』 공수(公輸)편에는 공성무기인 운제(雲梯)를 만들어 송(宋)나라를 공격해 오는 공수반의 아홉 차례 공격을 모두 막아내는 묵자의 활약상이 나온다. 유안(劉安)은 『 회남자(淮南子)』 에서 공수반과 묵자의 대결을 소개하며 “승리를 잘 지키는 사람은 강하면서도 약함을 자처한다(善持勝者 以强爲弱)”고 말한다. 이어 노자(老子)의 ‘도는 텅 빈 듯하지만 계속 사용할 수 있고, 또한 가득 차는 일이 없다(道沖 而用之 又弗盈也)’는 구절을 인용한다. 비녀장이 결국 도(道)와 통한다는 취지다.

『 한서(漢書)』 ‘유협전(遊俠傳)’에는 ‘진준이 비녀장을 던지다(陳遵投轄·진준투할)’란 일화가 나온다. 지독한 애주가였던 진준(陳遵)은 손님들이 집에 모여 술을 마실 때면 대문을 닫아 빗장을 걸고 손님들이 타고 온 수레의 비녀장을 모두 우물에 던졌다. 아무리 급한 손님도 떠날 도리가 없었다. 손님을 맞이한 주인의 마음이 신실(信實)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비녀장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먼 여정’을 말하는 거할철진(車轄鐵盡)이란 성어도 있다. 모두 비녀장을 다룬 고사들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얼마 전 한·미 관계를 비녀장(linchpin), 미·일 관계를 주춧돌(cornerstone)에 비유했다. 양국 관계를 이롭게 가꾸자는 의미다. 나무까치의 졸렬함이 아닌 비녀장의 교묘함이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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