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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할 수 있는 것 당당하게 밝혀야 휘둘리지 않아요

중앙선데이 2013.01.12 16:22 305호 9면 지면보기
콘서트라는 게 가수 입장에선 응당 필수 코스다. 특별한 무대를 눈앞에서 보고 싶어하는 팬들에 대한 서비스이자 자신의 모든 끼를 발산하는 자리다. 하지만 가수 생활 14년차, 7장의 앨범을 내고도 국내에서 콘서트 한 번 하지 않은 가수가 있다. 바로 보아(27)다. ‘넘버원’ ‘마이네임’ ‘허리케인 비너스’ 등 잇단 히트곡을 불렀던 그는 26, 27일에서나 첫 국내 단독 콘서트를 마련했다. 지금껏 대형 기획사(SM엔터테인먼트)의 오디션과 트레이닝을 거친 아이돌의 원조, 한류 바람이 불기 전 이미 일본에서 성공한 K팝의 개척자 등의 이미지로 대중과 거리감을 두어온 그로서는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기실 보아의 변신은 지난해부터 조금씩 감지돼 왔다. 7집 앨범의 타이틀곡 ‘온리원’으로 강한 일렉트로닉풍 댄스를 벗어나 서정적 멜로디를 선보였고, 한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 ‘k-pop스타’에 심사위원으로 등장해 따뜻하면서도 날카로운 지적으로 ‘보아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변화에 대한 그의 생각은 무엇일까. 콘서트 준비에 한창인 그를 9일 오후 서울 청담동 SM엔터테인먼트 사무실에서 중앙SUNDAY가 만났다.

데뷔 13년 만에 첫 국내 단독 콘서트 '아시아의 별' 보아를 만나다



게스트 없이 혼자서 20여 곡 부를 계획
긴 머리에 살짝 웨이브를 넣은 보아는 좀 피곤해 보였다. 콘서트를 앞두고 매일 연습장으로 ‘끌려다닌다’고 했다. 이미 해외에서 콘서트를 수십 번 해봤을 그이기에 선뜻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만큼 국내 공연에 대한 부담이 큰 걸까. “곡이 너무 많아요. 20여 곡 부를 계획인데 옛날 노래들은 지금 들어보니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게다가 옛날 안무를 외우고 있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동영상 보고 ‘이거 어떻게 했었지’ 되살리기를 하고 있어요.”
-처음이니만큼 부담이 크겠어요.
“부담이라기보단 고민이죠. 이 많은 노래를 어떻게 보여드릴까, 어떤 방향으로 공연을 꾸며야 할까. 그걸 정리해서 멋진 퍼포먼스로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그런데 국내 단독 콘서트가 왜 이렇게 늦었죠.
“공연이라는 게 댄서와 저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연출·음향 등 전체 스태프에 대한 세팅 자체가 필요해요. 이제는 그게 가능해졌어요. 무엇보다 일본에서 공연할 때 합을 맞춰본 분이 합류하게 됐죠. 실력 있는 스태프를 모으다 보니 인종도 다양해요.”
-비장의 카드가 있을 텐데.
“없진 않겠죠? 현장에서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실 만한 걸 준비하려고요. 아이돌 친구들은 뭘 많이 하더라고요. 패러디 같은 것도 하고. 하지만 전 게스트도 없어요. 그저 오시는 분들이 ‘이런 노래도 있었지’ 추억하고 즐기는 공연이 될 것 같아요.”

1 1집 ID Peace B 재킷 사진 2 2집 No.1 재킷 사진 3 4집 My Name BoA 재킷 사진 4 6집 Hurricane Venus 재킷 사진
5~7 7집 Only One 재킷 사진 8, 9 6집 Hurricane Venus 재킷 사진
10, 11 Copy & Paste (BoA The 6th Repack Album) 재킷 사진 12 미국 싱글 Eat You Up 재킷 사진 13 미국 앨범 BoA 재킷 사진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주위가 숙연~”
보아는 지난해 SBS 연예대상에서 특별상을 받았다. 오디션 프로그램인 ‘k-pop스타’에서 심사위원으로서 프로그램에 기여했다는 이유였다. 이전까지 그는 예능 출연이 거의 없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주위가 숙연해진다”고 했다. 하지만 일부러 웃길 필요가 없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의 장기가 발휘됐다. 차분하지만 따뜻한 말투, 참가자들과 함께 울고 웃는 모습이 인간미 넘치는 이미지를 대중에게 심어줬다.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요.
“회사에서 제의를 받았어요. SM에서 한 명 나가야 하는데 양현석·박진영 대표가 남성이니 여자가 나왔음 좋겠다는 거였죠. 처음엔 현역으로 가수를 하면서 누구를 심사한다는 게 부담됐죠. ‘말은 그렇게 하면서 네 무대는 왜 그래’라는 소리를 듣기 딱 좋으니까요. 그런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래도 참가자들도 ‘내가 15년 전 가졌던 마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오지 않을까’라고. 그러면 직접 조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고민 끝에 수락했어요.”
-차가운 이미지와 다르다고들 해요.
“대본도 없고, 시즌1부터 우리가 어떻게 심사할지 감독들도 전혀 예상을 못해요. 눈치껏 첫 심사위원이 많이 혼내면 뒤에서 좀 위로해 주고, 암암리에 그런 분위기가 조성이 된 것 같아요.”
-진행 경험이 없는데도 말을 잘하던데.
“전 심사 멘트를 미리 준비하지는 않아요. 그냥 간단하게 좋으면 좋았다, 그러죠. 나머지 두 사람이 경쟁이 붙지 않았나요? ‘공기반 소리반’ 수준의 비유들이 막 나와요. 둘 사이에서 저는 시청자 입장에서 재밌게 지켜봐요.”
-스스로 오디션 출신이라 감정 이입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캐스팅이 먼저 돼서 오디션 보고 (SM) 소속 가수가 됐죠. 그 친구들은 20회 넘게 서바이벌 관문을 통과해야 해요. 이 프로그램이 잔인하다고 생각되는 게 트레이닝을 도와주면서 고민도 들어주고 정이 들게 되거든요. 그런 친구들이 탈락하면 참 마음이 아프죠. 친구들의 성장과정에 있어서 저는 성장통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감정적인 모습이 드러나게 되나 봐요.”
-경험자로서 10대의 어린 참가자들에 대해 조언한다면.
“전 긍정적으로 봐요. 시대가 많이 변했어요. 많은 분들이 제게 ‘어릴 때 데뷔해서 잃은 게 많지 않냐’ 그러는데, 생각하기 나름이죠. 대학까지 나와서도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반면 어린 친구들이 자신의 끼를 찾고 잘되면 정말 좋은 거죠. 끼 있는 친구 보고 딴 건 절대 못 할 사람이라 생각하면 지지해야죠. 이젠 아이돌을 보는 시각도 달라졌어요. 저 나이에 왜 저렇게 춤을 춰가 아니라, 저렇게 어린데도 참 잘한다로 바뀌었죠.”
-이제 오디션-기획사의 발탁 없이 가수가 되기는 힘든 건가요.
“아마 눈에 보이는 가장 빠른 시스템이니까 사람이 몰리겠죠. SM에는 아직도 길거리 캐스팅이 있다고 들었어요.”
-끼와 노력, 가수에게 뭐가 더 중요한가요.
“사실 끼가 없는 친구들은 가능성이 많이 낮아요. 연예계가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잖아요. 정말 시험처럼 점수가 많이 올라간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고. 끼가 있는 친구들에게 노력하라고 할 순 있지만, 노력하는 친구들에게 끼를 줄 순 없죠. 끼는 자기 안에 표현할 게 너무 많아 주체가 안 되는 건데, 노력만 하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죠. 같은 노래를 불러도 흡인력이 달라요.”
-15년 전 오디션에 뽑힌 이유도 그 끼 때문일까요.
“한 번은 저도 궁금해서 수만 선생님에게 왜 나를 뽑았는지 물어봤어요. 그냥 웃는 게 예뻤다고 그러시대요.
-춤을 잘 춰서 아닌가요.
“오디션에서 수만 선생님은 노래만 봤어요. 음, 정확한 이유는 아직 몰라요.”

미국서 찍은 댄스 영화 ‘코브3D’ 올해 개봉
2000년 보아는 만 13세의 나이로 데뷔했다. 그리고 이듬해 일본으로 진출했다. 6개월 만에 대성공을 거뒀다. 2002년 일본 정규 앨범 1집 ‘Listen To My Heart’가 100만 장 넘게 팔리며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그로부터 여섯 장의 정규 음반을 연속으로 오리콘 위클리 앨범차트 1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넘버원’(2002), ‘아틀란티스 프린세스’(2003), ‘마이 네임’(2004),’ 걸스 온 톱’(2005)을 발매하며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2009년 4월에는 미국에 진출, 미국 첫 정규 음반 ‘BoA’를 발매해 한국 가수 최초로 ‘빌보드 200’에서 127위에 진입했다.
-왜 그렇게 빨리 가수가 됐고, 또 외국에 나갔나요.
“모르겠어요. 제가 발상이 특이할 수도 있는데, 학교 생활이 꼭 나한테 필요한 건가라는 생각이 있었죠. 부모님도 ‘너는 꼭 학교에 가야 해’ 이런 생각이 아니셨고요. 제가 하는 일에 지지를 해주셨죠. 일본에 간 건 어렸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어요. 국내에서 1집이 별로 성공을 못 해서인지 일본에서 또 신인부터 시작한다는 부담이 없었죠. 외국에서 산다는 거나 2개 국어를 한다는 게 너무 좋았죠. 국내 활동은 (어리니까) 나중에 갔다 와서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기획사 의도대로 컨셉트가 정해지진 않았나요.
“파워풀한 댄스의 여전사 이미지는 제가 정한 컨셉트였어요. 기획사에서 정해주는 것도 한계가 있죠. 아티스트가 같이 성장 안 하면 발언권도 잃게 되요. 가수는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 잘 하고 싶은 것을 과감히 말하고 도움을 청해야 서로에게 윈윈이죠. 아티스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마인드가 확실히 있어야 갈팡질팡을 안 하게 돼요.”
-어린 나이에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했을 텐데.
“사람들은 ‘보아니까’라고 기대가 컸어요. 그러면 전 그냥 ‘보아도 사람이다’ 이렇게 얘기하죠. 잘될 때도 있으면 안될 때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좋은 게 오더라고요. 낙천적으로 살라는 게 말처럼 쉽냐고 하는데 습관이 되면 그렇게 돼요. 제가 중심을 잘 잡고 컨트롤하고 있어야 항상 제 주관대로 가더라고요.”
-미국에서의 성과는 예상보다 저조했는데.
“잘 되고 못 되고 떠나 미국에선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우선 춤에 대해서요. 미국 안무가들이랑 당시 유행하던 클럽풍 일렉트로닉을 하면서 당시로선 본 적도 없는 안무를 보는 게 아주 신선했고, 음악적 시야도 넓어졌죠. 또 훌륭한 프로듀서·안무가도 만나고, 그걸 계기로 ‘코브3D’라는 영화도 찍게 됐으니까요(그는 지난해 초 듀안 애들러 감독의 댄스 영화에 출연했고, 작품은 올해 개봉 예정이다).”
-그래도 한류 도움을 받은 싸이가 부러울 것 같아요.
“그때 만약에 잘 됐다면 제가 그런 걸 배울 시간이 있었을까요. 싸이 오빠가 항상 음악에 나이가 필요 있냐, 라고 하죠. 가수가 어리다고 더 인정받는 건 우리나라가 가장 심한 것 같아요.”
스물일곱 살 ‘중견 가수’는 시종 일관 여유가 넘쳤다. 일찍 데뷔한 단점을 물었을 땐 나이에 비해 눈치가 빠른 것, 성형해도 누구나 과거 모습을 알고 있다는 것이라며 웃었다. 일본-미국 활동을 이어가면서도 국내에선 진지하게 연기를 해 보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갈 길도, 하고 싶은 일도 많은 그이지만 변하지 않고 지키고 싶은 단 하나는 무엇일까. “제 무대를 보면 알겠지만 안무가 너무 어려워요. 할 때마다 기준이 높아지고 힘든 것만 시키니까 가끔 안무가들에게 투정을 부리죠. 그러면 그래요. ‘너니까, 보아니까 할 수 있어’라고. 앞으로도 그런 도전이 이어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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