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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재밌게 살자

중앙선데이 2013.01.12 07:28 305호 30면 지면보기
11시 반쯤 아재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재는 몇 달 전부터 내가 있는 사무실 근처 학원에서 영어를 공부하는 중이다. 서로 다른 약속이 없으면 가끔 만나 점심을 한다. 외모만 보면 아재가 조카 같고 조카가 아재 같다. 아재는 젊다. 한쪽 눈이 나빠진 후 오히려 아재는 더 젊어졌다. 나 같았으면 실의에 빠졌을 텐데. 아재는 젊게 생각하고 젊게 행동한다. 서울 부산 간 4박5일 자전거투어도 거뜬하게 해냈다. 아재의 오래된 꿈이었을 음반 작업도 준비 중이다. 지금은 있는 노래를 아재가 불러 음반에 담는 정도지만 앞으로는 새로 노래를 취입해 만들 거라고 한다. 아재는 음반 재킷에 들어갈 사진 몇 장을 보여주며 어느 것이 더 낫냐고 묻는다. 정말 내 대답을 구한다기보다 사진들을 보여주고 싶은 것 같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의 흥분과 활기로 아재의 얼굴은 싱싱하고 낯설다. 점심으로 카레를 먹으면서 아재는 묻는다. “요즘 넌 재미있는 일 없어?” 조카는 부끄럽다. “저야 뭐 늘 그럭저럭 그렇죠.” 아재는 정색을 한다. “재미있게 살아야 해. 하고 싶은 것 하면서 말이야.”

오후에 스튜디오에 갔다. 홈페이지에 사용할 사진 촬영이 있었다. 사진을 촬영할 이는 2년 전에도 함께 작업했던 작가다. 서로 나이는 묻지 않았지만 아마 나보다 몇 살은 위일 것이다. 적어도 2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번에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처럼 더 젊어졌다. 옷 입는 스타일이나 외모만 그런 게 아니라 에너지가 넘친다. 촬영 내내 기분 좋은 활기로 모델들을 이끌어간다. 아트 디렉터가 오케이 사인을 해도 그는 조금만 더 찍어보자고 한다. 모델들이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고치는 사이 그는 자신의 노트북을 꺼내더니 내게 동영상을 하나 보여준다. 요즘 자신이 빠져 있다는 탭댄스 공연 영상이다. 영상 속에서 네 명의 남자가 음악에 맞춰 탭댄스를 추는데 근사하다. 가장 왼쪽에 있는 남자가 그다. 네 사람의 동작은 경쾌하고 절도 있고 리드미컬하다. “멋지네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그가 말한다. “부장님도 한번 배워보시죠?” 나는 고개를 흔들고 손을 내저었다. “시간이 있어야죠.” 그는 자세를 바꾸어 내 쪽을 바라보면서 말한다. “제가 정말 진심을 다해 드리는 말씀인데요. 부장님,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세요. 시간을 거기에 쓰세요. 제가 2년 전에 큰 수술 했어요. 죽다가 살았죠. 그러고 나니까 인생관이 바뀌더라구요. 재미있게 살자. 하고 싶은 거 하자. 부장님, 다른 건 그다지 중요하지도 필요하지도 않아요.”

집에선 아들 녀석이 TV로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를 보고 있다. 나는 아는 체를 한다. “이 영화 몇 번이나 본 거 아니냐?” 아들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듯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재미있잖아요.” 나는 아들 옆에 앉는다. 분식집 아주머니가 현수를 유혹하는 중이다. 아들 녀석은 괜히 어색한지 영화 속 김부선의 대사를 흉내 내 말한다. “아빠도 아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요.”

그러게, 아들. 다들 그렇게 말하니 나도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아야겠는데. 모르겠다. 돈이나 시간도 없지만 그보다 정작 내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그걸 모르겠다. 나이를 오십이나 먹었는데도 말이야.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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