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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자가 바닷물 들이켜듯

중앙선데이 2013.01.12 07:20 305호 28면 지면보기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1896-1940) 자전적 소설인 『낙원의 이쪽』(1920)의 성공으로 경제적 여유와 인기를 얻은 피츠제럴드는 사교계 생활에 빠져들었다. 유럽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던 그가 1925년 발표한 『위대한 개츠비』는 20세기 미국 소설을 대표하는 걸작이 되었다.
금? 귀중하고 반짝거리는 순금? 아니, 신들이여! 헛되이 내가 그것을 기원하는 것은 아니라네. 이만큼만 있으면 검은 것을 희게, 추한 것을 아름답게 만든다네. 나쁜 것을 좋게, 늙은 것을 젊게, 비천한 것을 고귀하게 만든다네…. 문둥병을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고, 도둑을 영광스러운 자리에 앉힌다네. 그리고 원로원 회의에서 도둑에게 작위와 궤배와 권세를 부여한다네.”

강신주의 감정 수업 <27> 탐욕

셰익스피어의 『아테네의 티몬의 삶』에서 4막 중 3장에 등장하는 대목이다. 산업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에도 인간은 돈에 집요하게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탄식처럼 부유함은 모든 것을 좋고, 젊고, 고귀하고, 심지어 사랑스럽게 만들 수 있다. 그렇지만 그의 탄식 이면에는 그래도 검은 것은 검은 것이고 나쁜 것은 나쁜 것이며 추한 것은 추한 것이라는 확신, 반대로 흰 것은 흰 것이고 좋은 것은 좋은 것이며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라는 낭만주의적 확신이 깔려 있다.

19세기 이후 산업자본주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인간은 명목상으로나마 유지되었던 낭만적인 외투마저 과감히 벗어버리게 된다. 돈으로 매매할 수 없는 것들은 고귀한 가치를 가진 것이 아니라 가치가 없는 것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돈으로 거의 모든 것을 살 수 있게 되면서, 동시에 탐욕은 인간의 욕망 중 가장 지고한 권좌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감정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탐욕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을까.

“탐욕(avaritia)이란 부에 대한 무절제한 욕망이자 사랑이다.”(스피노자의 『에티카』중) 스피노자의 말처럼 무절제하게 부를 욕망하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탐욕이란 감정의 실체다. 탐욕에는 중용이란 있을 수 없다. 탐욕의 상태는 목이 말라서 바닷물을 마신 상태다. 바닷물을 마시면 잠시 동안 갈증은 해소된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과거보다 더 강한 갈증이 우리를 찾아오게 될 것이다. 이제 충분히 돈을 벌었으니 지금부터는 삶을 영위하도록 하자, 바로 이런 절제력이 탐욕에서는 거의 불가능하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뿐 아니라 미래의 집, 미래의 음식, 그리고 미래의 이성 등을 돈으로 모두 구매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데, 어떻게 탐욕이란 감정
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그 무절제함으로 탐욕은 끝내 우리의 삶을 파괴하고 말 것이다. 우리 시대 위대한 작가 F 스콧 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 1896~1940)가 1925년 출간한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에서 포착하고자 했던 것도 바로 이것이다.

개츠비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이 집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요, 형씨.” “데이지의 목소리에는 신중함이 없어요. 그 애의 목소리에는 뭔가 가득….” 나는 머뭇거렸다. “그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갑자기 그가 말했다. 바로 그것이었다. 전에는 그걸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데이지의 목소리는 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안에서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끝없는 매력, 그 딸랑거리는 소리, 그 심벌즈 같은 노랫소리…. 하얀 궁전 속 저 높은 곳에 공주님이, 그 황금의 아가씨가….”

지금 방금 우리는 『위대한 개츠비』에서 탐욕과 관련해 셰익스피어의 대사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가장 인상적인 구절을 읽었다. 표면적으로 소설은 사랑, 결혼과 관련된 진부한 멜로드라마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소설에서 부와 관련된 인간의 탐욕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피츠제럴드의 소설을 읽어도 읽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은 네 명으로 압축된다. ‘닉’이라고 불리는 소설의 화자 ‘나’, 5년 동안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옛 여인을 찾아온 ‘개츠비’, 개츠비의 옛 애인이자 지금은 남편을 가진 아직도 매혹적인 여인 ‘데이지(Daisy)’,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청난 재산으로 데이지를 아내로 받아들이는 데 성공한 그녀의 남편 ‘톰’. 개츠비가 다시 등장하면서 데이지의 마음은 톰과 개츠비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게 된다.

슬프게도 데이지의 고뇌는 그녀가 충족을 모르는 그녀 자신의 탐욕을 개츠비가 충족시켜 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사랑의 고뇌 이면에는 탐욕의 고뇌가 똬리를 틀고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데이지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을 때 이것을 눈치챈 톰은 개츠비의 재산 형성 과정이 불법적이어서 그의 부유함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사상누각과도 같다고 폭로한다. 바로 이 순간이 데이지가 개츠비가 아니라 다시 톰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계기라고 할 수 있다. 참으로 흥미롭지 않은가. 개츠비가 데이지의 탐욕을 간파했던 것처럼, 톰도 아내의 본성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5년 전 가난한 장교 신분으로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했던 것도 그녀의 부유함이 뿜는 환상 때문이었다는 점을 놓쳐선 안 된다. 결국 개츠비의 사랑도 탐욕에서 출발했던 셈이다. 그러니 사실 위대했던 것은 개츠비가 아닐 수 있다.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개츠비, 데이지, 그리고 톰을 가로지르고 있는 ‘탐욕’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대중철학자『. 철학이 필요한 시간』『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상처받지 않을 권리』등 대중에게 다가가는 철학서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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