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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골목길살짝 숨은 마당현행법으론 한낱 꿈

중앙선데이 2013.01.12 03:06 305호 22면 지면보기
1 전주 한옥마을의 한옥은 중정이 있는 도시형 한옥과는 다르게 담장과 그 안에 둘러쳐진 자투리 공간 같은 애매한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새해 첫날을 보내고 신년 계획에 분주하다 보면 곧 설날이 다가온다. 이 또 다른 새해(?)를 맞이하고 나서야 비로소 2013년이 시작된다. 음력설은 구한말 태양력을 도입한 이래 구정(旧正)으로 불리며 신정의 뒤안길에 있었다.한 세기가 지난 1989년부터 설날로 복권되면서 이제는 세계 공용의 달력 속에서 추석과 함께 최고의 명절이 되었다. 고유한 전통문화가 세계화된 양식 속에서 잘 융화된 모습이 바람직하다. 개량 한복, 퓨전 한식 등 기본적인 의·식생활에서부터 음악·드라마·영화 등 예술 분야에까지 한류의 약진이 눈부시다.

최명철의 집을 생각하다 <15> 도시형 한옥

하지만 우리나라의 집, 한옥은 아직 역사 속 과거의 집에 머물러 있다. 최근에 많이 짓고 있지만, 현재 9만여 채로 전체 주택 수의 0.5%에 불과하다. 한옥을 원하는 사람은 내·외국인을 포함해 많아지는데 한옥의 보급은 더디다. 이러다 보니 남아 있는 한옥은 비싸지고 그나마 10% 정도에 불과한 한옥마을들은 점차 테마파크화하고 있다. 일상적인 삶이 이루어지는 주거 유형의 하나로서 한옥의 현대화는 과연 가능할까.

2 하루헌은 바깥담으로 만들어진 골목과 내밀한 마당이 있는 도시한옥이다. 사진 진효숙.
집은 생활을 담는 그릇이다. 농경사회의 삶을 유지시켜준 한옥은 그 생활에 맞춘 집이었다. 따라서 현재 남아 있는 대부분의 한옥은 농촌에 있다. 정부의 지원에 의해 새로이 지어지는 한옥들도 농촌형이 많다. 문제는 도시형 한옥이다.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있는 하루헌(何摟軒)은 소박한 도시형 한옥이다. 61년 지어진 한옥을 한 전통주택학자가 연구소 겸 주택으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좁은 골목길을 가운데 두고 일곱 열, 14채가 가지런하다. 그당시 제법 큰 대지를 나누어 집장사가 지은 형상이다. 50여 년의 풍상을 겪어서인지, 번잡한 찻길과 대비되어서인지, 나란한 집들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삐죽 나온 처마 밑에 대문간과 문간채가 반복되면서 이어지는 골목길 풍경은 도시형 한옥이 갖는 첫 번째 매력이다. 여기에 비하면 담장 너머의 집이 갖는 보통 집의 풍경은 섬처럼 영역의 경계감이 느껴진다. 그 집이 그 집 같은 균질감 속에서 2-12번지를 찾아 이리 오너라하는 기분으로 대문을 열어 젖히면 맞닥뜨리는 마당은 도시 한옥의 결정적 매력이다. 『한옥의 진화』를 쓴 윤재신 교수는 이 마당과 사각형 하늘을 일컬어 ‘우주적 자연과 직접적으로 소통하는 도시 공간의 내밀한 사적 통로(private passage of confidentiality)’라고까지 표현하고 있다.

3 잘 알려진 북촌의 한옥들은 대부분 1930년대부터 1960년대 사이에 지어진 중정식 도시형 한옥이다. 당시 집장사가 제법 큰 대지를 여러 개의 필지로 나누어 보급했다. 삐죽 나온 처마 밑에 대문간과 문간채가 반복되면서 이어지는 골목길 풍경은 도시형 한옥이 갖는 첫 번째 매력이다. 자료: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방도로·주차장 확보하자니 짓기 힘들어

도시형 한옥의 요체는 이처럼 길과 마당에 있고, 이들의 비어 있음에 의해 한옥의 형태는 자기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음악이 쉼표에 따라 들리듯, 그림이 좀 떨어져 보아야 보이듯. 길과 대문간, 문간채, 마당과 안채로 이어지는 안과 밖의 무수한 변주를 ‘띠 패턴’으로 정의 내린 윤재신 교수는 이를 공적 영역을 포함하는 ‘도시 조직(urban tissue)’의 대표적 특성으로 도시 한옥이 계승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잘 알려진 북촌의 한옥들도 대부분 1930년대부터 60년 사이에 지어진 ㅁ자형 도시한옥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도시형 한옥이 63년 제정된 도시계획법과 건축법으로 인해 달리 개발 여지가 없어 잔존하게 되었고, 역설적이게도 새 법체계 때문에 더 이상 생산될 수도 없다. 부연 설명을 해보자면, 골목길은 차가 다닐 수 있는 소방도로여야 하고주차장이 확보돼야 한다. 집마다 화재와 분쟁을 예방하도록 대지 경계로부터 1m씩 확보해야 하니 전후좌우로 담장과 자투리 공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넓힌 찻길과 둘러친 담장 너머로 섬처럼 한옥을 배치하고 나면 도시 한옥이 갖는 고즈넉한 골목길이나 내밀한 사적 통로인 마당은 사라지고 만다. 이런 조건으로 하루헌과 비슷한 규모인 25평 정도의 한옥을 완성하려면 땅값 비싼 도심에서 최소 70평 이상의 대지가 필요하다(기존 도시형 한옥의 대지는 35~40평 정도다). 그러므로 이러한 건축 규제를 완화시켜준 기존의 한옥지구들이 한정적 자원이 되어 희소해지고 비싸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관광자원의 목적으로 도시화된 대표적 사례인 전주한옥마을의 경우 기존 법 테두리 안에서 개발되었기 때문에 ㅁ자형 도시 조직과는 다르게 담장과 자투리 공간과 애매한 마당과 한옥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도시 속에서 지속 가능한 한옥의 현대화는 ‘집의 형태*’에 앞서 한옥의 안팎 공간이 구현될 수 있는 적절한 ‘도시 조직’을 공급하고 이를 체계화할 수 있는 새로운 건축제도가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국가 한옥센터에서 발행한 자료에 따르면 한옥의 범주를 ‘전통적 형태에의 충실도’에 의해 문화재 한옥(보존과 관리)과 정통 한옥(보존과 활용) 및 현대 한옥(보급과 육성)으로 구분하고 있다. 보급형인 현대 한옥도 최소한 기둥·보·지붕틀은 목구조여야 하고 한식 기와에 외관은 전통 양식에 따라야 한다).

최근 한옥을 마을 단위로 공급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은평뉴타운의 경우 기존 단독주택지를 한옥지구로 지정 공급·분양하고 있다. 70~80평의 대지 비용에 제대로 짓는 한옥 건축비를 포함하면 과연 수요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조선 말 고종은 태양력을 들여오면서 국호를 건양(建陽)이라 하였다. 태양력 달력 속의 음력 설날처럼 한옥의 본질이 살아 숨 쉬는 우리나라 집의 현대화와 도시화는 온전히 우리들의 숙제다.



최명철씨는 집과 도시를 연구하는 ‘단우 어반랩(Urban Lab)’을 운영 중이며,‘주거환경특론’을 가르치고 있다. 발산지구 MP, 은평 뉴타운 등 도시설계 작업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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