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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쟁명:임대희]중국의 예술창작 공간

중앙일보 2013.01.07 14:55
요즈음 싸이에 대한 중국의 인기가 상당히 높다. 중국에서는 싸이를 "오아저씨(烏叔)"라고 부른다. 싸이의 노래 음판이 세계 각국에서 판매되는 수량이 엄청나다는 보도를 보면서, 뿌듯한 심정이다. 또한, 영화 분야에서도 합작인 경우도 많기는 하지만 세계 각국으로 꾸준하게 보급되어 나가고 있다. 이러한 것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10여년전부터 한류나 인터넷에 대해서 정책적으로 적극적인 투자를 아끼지 않았던 성과라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한국의 국격이 이만큼 높아졌으며 한국 상표에 대한 신뢰가 매우 돈독해졌다.

그런데 아직까지 미술품에 대해서는 이러한 한류를 타지 못 하고 있다. 이 분야에도 이러한 바람을 불러오려면 뒷받침이 필요한 것 같아서, 오늘은 중국에서 예술창작을 위해서 어떻게 뒷받침하고 있는지 찾아보고자 한다. 중국에서는 여유자금이 있는 사람들이 예술품에 대해서 투자해 놓으려는 인식이 크다. 그래서 그런지 청년예술가를 양성하려는 배려가 있는 편이다. 곳곳에 예술촌을 조성하는 분위기가 있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북경의 “798예술구”가 있으며, 또한 남경의 “1865문화창의원(文化創意園)”이 있다.



1950년대 초기에 옛 소련이 원조하여 중국에 무선통신기기 공장을 지어주게 되었다. 옛 소련은 이 건을 위해서, 옛 동독에 설계와 건축을 맡겼다. 동독에서는 바이마르(Weimar)지역의 바우하우스(Bauhaus)식의 건축양식을 활용하여 설계했으며, 항진(抗震)강도 8급 이상이 되도록 튼튼한 건물을 지었다. 벽돌은 무척 단단한 것을 사용했으며, 창문은 직접 조명을 피하기 위해서 북향으로 만들었지만 뒤쪽 지붕의 반사광이 들어오도록 설계하였다. 이렇게 건설한 공장은 1964년까지 무선전기공업단지(北京華北; 6개 단지; 60여만㎡)를 이루었다. 1964년부터 2001년까지 6개 단지가 각기 독립적으로 운영이 되었다가 2001년에 칠성(七星華電)그룹이 이 6개 단지를 다시금 합치기 시작했는데, 공장은 폐쇄하고 이 곳을 임대내주는 방향으로 방침을 변경하였다.



2002년에 미국인 로버트씨가 이 단지안에서 본래 회족(回族)음식점(120㎡)을 빌려서, 앞에는 아동서점을 열고 안쪽에는 사무실을 두어서 인터넷으로 중국예술품을 소개하는 넷트워크를 만들었다. 그는 예술 관련자 가운데 교제하는 사람들의 폭이 넓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드나들게 되었다. 그들은 이곳이 천장이 높고 임대료가 싸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또한 중앙미술학원(中央美術學院)이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왕징(望京)으로 이전하는 것을 계기로 이 주변에 많은 미술과 관련된 개인이나 업체들이 모여들게 되었다. 더욱이, 그 시기에 중국의 경제력이 급성장하면서 중국 미술품의 가격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하자, 상업 화랑들이 하나둘 임대를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에는 고급소비층인 외국인이 왕징?리두?싼위엔치아오 등 근처에 대규모로 밀집하여 있다는 이유도 있었다.



대체로 200개가 넘는 업체 가운데 갤러리만 100여개가 넘는다. 현재는 그 가운데에 작가작업실은 비싼 임대료를 견디지 못 하고 모두 근처로 이전해 나갔다. 그리고 공간디자인, 광고 디자인, 가구 디자인이나 복장 디자인, 형상 디자인 등의 분야가 대체로 30%를 차지한다. 그밖에 미디어 발간이나 서점, 음식점이나 호프집 등이 들어와 있다. 적어도 300명 이상의 예술가 들이 798예술구 안에 거주하거나 또는 그 주위에 거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에는 많은 외국인 작가도 있을 뿐 아니라, 세계적인 예술품 수장업체나 전람회사 등도 이곳에 몇천㎡씩을 임대하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는 해외 갤러리 등의 상당수가 이미 “798예술구”에 들어와 있어서 많은 중국작가들을 해외에 활발히 소개시키고 있다. 세계적인 컬렉터인 벨기에의 울렌스라는 사람이 만든 재단이자 미술관(UCCA)은 들어와 있고 구겐하임도 이곳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2004년 이래로 독일 Gerhard Fritz Kurt Schroder 총리를 비롯하여 프랑스 Jacques Rene Chirac 대통령, EU의 Jose Manuel Durao Barroso 주석, 스웨던 총리, 스위스 총리, 오스트리아 총리 등을 비롯한 많은 외국 국가원수나 왕비 등이 중국 방문에서 꼭 가야할 문화지역으로서 이곳을 방문하였다.



남경에도 이와 유사한 예술구역을 만들고 있다. 본래 청조(?朝)의 양무운동(洋務運動)시기에 금릉기기제조국(金陵機器制造局)이 있던 자리로서 군수공업을 하던 곳인데, 이를 신광(晨光)그룹이라는 항공우주산업회사가 물려받았다가, 지금은 그 공장부분을 문화예술 지역으로 변화시키려는 것이다. “1865문화창의원(文化創意園)”이라는 이름을 불이고 있는데, 안쪽에 이미 가동하고 있는 곳은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나, 바깥쪽에 준비되고 있는 곳에는 개인박물관이 대부분이고 옛 완구(玩具)나 우수 공예품등의 전시등을 준비하고 있다. 큰길 쪽으로는 이렇게 해서 이 지역이 알려지자, 이곳에 부수적으로 생겨난 식당이나 커피점 또는 호프집이 더욱 번창하는 현상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예술구역을 중심으로 해서 많은 예술품 상인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 상인들은 현물보다는 인터넷을 통한 교역의 방식을 선택하고 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젊은 예술가들이 이러한 예술품 상인들의 넷트워크를 통해서 자신들의 작품을 판매하면서 구매자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예술이 경제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듯이, 북경의 “798예술구”도 제2금융위기 뒤에는 정체가 시작되었다. 더구나, 중국에서 예술품 거래에 33%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으므로 작품 판매는 사실상 음성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중국의 미술 소비시장으로 홍콩이 급부상하게 되었다. 예술품 거래에 세금이나 구매 자금원 추적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다보니, 예술품 거래에 부수적인 박람회의 중심이 홍콩 아트페어(Hongkong Art Fair; Art HK)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본래는 아트 바젤(Art Basel)이 홍콩 아트페어의 의뢰에 따라서 협조해 주던 관계에서 아예 홍콩의 지분 50%를 인수하여, 2013년에는 “아트바젤 홍콩 2013”으로 명칭을 바꾸어 개최한다. 이러한 추세 때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 싱가포르이다. 본래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시아 예술 시장에서는 싱가포르가 첫째로 손꼽았다. 그런데, 중국의 미술소비시장으로 홍콩이 급부상하는 바람에 아트 싱가포르(Art Singapore)가 뒷전으로 쳐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서 2011년부터 싱가포르에서는 정부차원으로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Art Stage Singapore)”라는 것을 개최하면서 필사적으로 예술분야에서 아시아 첫째를 노리면서 달려들고 있다. 또한, 싱가포르에서는 특정지역에 이미 여러 나라의 13여개 갤러리가 입주를 시켰다. 이는 싱가폴 산업의 특성과 부합하는 정책이다. 대체로 다음 미술시장이 폭발할 곳은 인도라고 보고 있으며, 발빠른 사람들에 의해 이미 인도의 몇몇 작가들은 최고의 대접을 받고 있다.



이렇게 바쁘게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 각 지역의 맹렬한 예술전쟁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 것일까? 과연 10년 정도 지나면, 미술계에서도 세계적인 “싸이”가 탄생할 수 있을까? 예술세계에서는 미술대학의 대학원 마치고 이 치열한 세상에 팽겨쳐 졌을 때에 가장 필요한 것은 3~4년 예술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아직 기성인이 되지 않았으므로, 정규적인 수입은 없고 예술작품을 만드려면 작업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판자촌이라도 좋고 천막집이라도 좋다. 그들에게 이러한 공간을 마련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 CGV가 많은 기여를 했듯이 이러한 예술 분야의 진작을 위해서도 어떠한 방안이 없을는지? 예술품의 거래는 간단한 것이 아니므로, 기업이 간여하여 이득을 창출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기업이 간여하기 어렵다면, 정부가 한류를 지원했듯이, 미술세계에 세계적인 “싸이”를 창출하겠다는 장기적인 전망을 가지고 작업공간을 만들어 주는 데에 배려를 해 주었으면 좋겠다.



작업공간이 어디에 들어가면 좋을지도 생각해 보았다. 영등포 타임스퀘어 주변에 CGV가 있어서 그런지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는 곳으로 일컬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곳에 뒤편에는 예술작업 공방으로 차려놓고 바깥쪽에는 카페등을 열어서 그곳에 만들어 놓은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팔기도 하는 공간으로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너무 번화한 거리로 자리잡고 있으므로, 젊은 예술가들이 자리잡기에는 경제적으로 좀 벅찰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동대문 두산타워 주변에 의류디자인 공방(工房)들이 많아서 젊은 디자이너들이 2년 정도를 이곳에서 숙련하면서 갖가지 의류 디자인 관련된 시류의 흐름을 재빨리 흡수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의류 디자인에 관련해서는 이곳이 판매시장과 가까우므로 적합한 장소라고 생각된다. 그림이나 서예와 같은 시장은 인사동을 중심으로 형성되기도 했으나 너무 땅값이 비싼 곳이므로, 작업하는 공방을 이 근처에 자리잡기는 힘들 것 같다. 따라서, 필자는 미래의 “인사동”과 같은 저명한 예술문화거리를 찾아보다가 효창공원 근처를 생각하게 되었다. 굳이 프랑스의 파리를 연상했던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6호선의 효창공원역에서 숙명여대 미술대까지를 아우르면 분위기로 볼 때에 예술작업을 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또한, 외국인들이 찾기에도 편리한 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여기에는 효창공원이 가지는 입지여건이 매우 중요하다. 예술가들은 틈틈이 언덕위에 올라가서 머리를 식혀야 좋은 작품이 나오게 마련이다.

홍대입구등도 가능성이 있지만 이미 주변지역의 임대료가 너무 올라버렸을 뿐 아니라, 너무 알려져서 분위기가 차분하게 예술작업을 하기에는 산만한 경향이 있다. 효창공원은 지금 이태원에 리움미술관과 표화랑등의 여러 갤러리가 많이 있으므로 시너지 효과도 있을 것이며, 강남에 형성되어있는 갤러리 등과도 연계가 쉬울 것이다. 이곳에 용산구를 통해서 젊은 미술가가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싼값으로 장기임대를 해 줄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지금의 젊은 예술가에게는 그러한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여력이 그다지 없기에 중도에 포기하게 되기에, 우선 당장은 초가집이나 판자집이라도 좋다고 한다. 한집에 적은 인원이 들어가더라도 전체적으로는 많은 인원이 모이게 되어야 한다.



용산구청장이 미래의 예술작가들의 보금자리로서 용산구가 가장 적합하다는 점을 강조해 주었으면 좋겠다 약 100여명 가량, 미래 한국미술의 싸이가 이 지역에 움집을 틀게 되면, 이 동네 전체가 새로운 미술거리가 형성되게 되면, 갤러리도 들어오고 미술재료상도 이곳에 자리잡게 된다. 또한 국내외의 미술전문가들이 이곳을 찾게되는 관광명소가 되게 된다. 지금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창동 9개 스튜디오, 고양 21개 스튜디오를 젊은 예술가에게 임대해주고 있지만, 임대기간이 짧고 인원도 적을 뿐 아니라 지역적으로도 분산시켜 놓다보니 해당지역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미미하다. 서울시립미술관이나 경기도립미술관등에서도 예술가에게 임대를 해주고 있으나 워낙 적은 인원이므로 지역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다. 임대받을 예술가를 선발할 때에는 미술대학 석사과정 이상의 학력자 가운데, 수상경력? 공모전경력? 개인전 경력? 해외 레지던시 경력 등을 고려해야 할 것인데, 공모하여 엄격하게 심사하여야 할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 위탁하여 선발하여도 좋을 것이다. 미술가들은 고급문화를 상징하는 부류이기에 어느 한 동네에 집단적으로 몰려있으면 그에 따른 많은 관련자들이 몰려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많은 한국 컬렉터들은 한국 미술품보다는 안정적인 해외 미술품을 선호하고 있는 상황이다. 기본적으로 한국미술품의 가치가 올라가야 되고 그러기 위해선 활발한 판매나 활발한 해외 활동, 활발한 해외 미술관 전시등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은 미술작품 판매에 대한 세금은 낮지만, 올해부터 미술품 양도세를 부과하기로 하였다. 돈많은 소비계층이 괜히 미술품을 구입했다가 혹시라도 생기게 될 수익원 노출등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노출되기를 꺼리기 때문에 미술시장을 더 힘들게 만들어버릴 수도 있다. 해외 주요 미술관등에서 한국 작품을 전시하려거나, 다른 해외 전시를 하려해도, 한국미술에 대한 기업의 관심이나 상위 스폰서들이 워낙 적기 때문에, 전시 준비자금 등의 문제로 활발히 이루어지기 어려운 점이 있다. 이런 곳에 지원해 줄 수 있는 국가 단체도 있지만, 예산이 많이 부족해서 활발한 해외 활동이 힘든다. 중국미술의 성장으로 인해 생긴 아시아 미술품에 대한 관심이 이미 아시아의 다음 주자를 찾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한국은 한국의 특성에 맞는 정책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임대희 경북대학교 아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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