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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시작이다

중앙선데이 2013.01.07 14:41 304호 28면 지면보기
지나간 날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속에 기쁨과 슬픔, 열광과 회한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그 기억들은 무한대로 뻗어나간다. 이제 그것은 지상의 시간이 아니라 영원의 시간이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27> 스탕달의 『적과 흑』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에서 주인공 쥘리엥이 드 레날 부인의 손을 처음 잡는 장면을 보자. “10시를 알리는 마지막 종소리가 아직 울려 퍼지고 있을 때 마침내 그는 손을 내밀어 드 레날 부인의 손을 잡았다. 부인은 즉시 손을 뺐다. 쥘리엥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른 채 다시 그 손을 잡았다.”
더 천천히 음미해 보자. 이 가슴 떨리는 순간은 결코 하나의 덩어리가 아닌 미분법처럼 무한히 쪼개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는 발작적인 힘을 기울여 그 손을 꼭 쥐었다. 부인은 손을 빼내려고 마지막 안간힘을 썼으나 마침내 그 손은 쥘리엥의 손에 머물러 있게 되었다. 그의 마음은 행복으로 넘쳐흘렀다. 드 레날 부인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끔찍한 고통이 끝났기 때문이었다.”
『적과 흑』은 1830년대를 배경으로 계급의 벽을 뛰어넘어 비상하려는 청년 쥘리엥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제목의 두 가지 색깔은 군인(적)과 성직자(흑)를 상징하는데, 당시 하층계급에게 출세의 길은 이 둘밖에 없었다. 가난한 제재소 집 셋째 아들 쥘리엥은 이렇게 다짐한다. “출세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죽고야 말겠다.”

신약성서를 라틴어로 암송할 정도로 총명한 쥘리엥은 특권계층에 대한 증오심을 숨긴 채 레날 시장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그러고는 자신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부인을 유혹해 마침내 그녀의 침실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언뜻 보면 연애소설에 불과한 것 같은 이 작품이 아직껏 고전으로 손꼽히는 이유는 탁월한 심리묘사를 통해 우리 삶의 본질을 이루는 사랑과 고뇌, 행복을 이야기해주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수도원에 들어간 쥘리엥은 유력 정치인인 드 라 몰 후작의 비서가 되는데, 후작의 딸 마틸드의 사랑을 얻는 데 성공하고 부와 명예를 막 움켜쥐려는 찰나 스스로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감옥에서 비로소 자신의 위선과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깨닫는다.
“하루살이는 한여름날 아침 9시에 태어나 저녁 5시면 죽는다. 그 하루살이가 어찌 밤이란 말을 이해할 것인가? 그것에게 다섯 시간만 생명을 더 준다면 그것은 밤이 어떤 것인지를 보고 이해할 것이다. 이처럼 나도 스물세 살에 죽는 것이다. 드 레날 부인과 함께 살기 위해 5년만 더 생명이 주어진다면….”
쥘리엥은 항소를 포기하고 사형을 기다린다. 드 레날 부인은 감옥까지 찾아와 그를 애인이라고 떳떳이 고백하고 국왕에게 탄원하겠다고 하지만, 쥘리엥은 고개를 흔든다.
“전에 우리가 베르지의 숲 속을 함께 거닐고 있었을 때 저는 몹시 행복할 수 있었는데, 격심한 야심에 끌려 제 마음은 공상의 나라를 헤맸지요. 이 아름다운 팔이 바로 제 입술 곁에 있었는데도, 저는 제 가슴에 이 팔을 꼭 껴안을 생각은 않고 미래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지요. 저는 거대한 행운을 쌓아 올리기 위해 지탱해야 할 수많은 마음의 갈등에 사로잡혀 있었어요. 이 짧은 생의 얼마 안 되는 나날이라도 행복하게 지냅시다. 우리들의 존재를 숨기도록 해요.”
찬란한 햇빛이 만물에 즐겁게 내리쬐던 날 쥘리엥에게 사형 집행이 통고된다. 그는 오랫동안 바다에 나가 있던 사람이 육지를 산책하는 것처럼 상쾌한 기분으로 단두대를 향해 걸어나간다. “잘려 나가려는 그 순간만큼 그 머리가 그렇게 시적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한때 베르지의 숲 속에서 지냈던 가장 감미로운 순간들이 한꺼번에 그의 머릿속에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끝났으며 쥘리엥은 아무런 가식 없이 최후를 마쳤다.”

스탕달은 당대의 비평가와 독자들에게 철저하게 외면당한 작가였다. 두 세대가 흐른 후에야 그의 작품이 재평가되었는데,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대부분의 문학작품이 『적과 흑』에 비해 작품성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그 작품의 작가들이 천재성을 결여해서가 아니라 작품을 창작하는 데 따르는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더라도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은 얼마든지 있다. 마흔이 넘어서야 소설을 쓰기 시작한 스탕달은 자신의 부족한 기억력을 보충하기 위해 모든 것을 메모하고 기록했다. 그렇게 자신의 기억들을 다듬고 개선해서 쥘리엥이라는 황홀한 인물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해가 또 바뀌었다. 지나간 날들이 미분의 대상이라면 남아 있는 날들은 적분의 대상이다. 짧은 인생이라고 하지만 과거를 떠올리듯 미래를 바라보면 아직도 무수한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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