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북극 항로 진출 ‘한·중·일 삼국지’韓, 올 시험 운항 中, 나진항 허브로

중앙일보 2013.01.07 09:56
지난해 7월 말. 적재중량 7만4000t인 핀란드 국적 유조선 ‘스테나 포세이돈’이 항공유 7만t을 싣고 전남 여수항을 떠났다. 러시아 무르만스크항에서 석유·가스회사 ‘노바텍’의 가스콘덴세이트(경질원유의 일종)를 싣고 북극항로를 거쳐 대산항으로 실어나른 뒤였다. 배는 북극항로를 거쳐 핀란드에 도착했다. 중간 기착 없이 북극항로를 가로지른 첫 번째 선박이었다. 9월에도 노바텍의 가스콘덴세이트를 실은 마리카호와 팔바호가 각각 인천·대산(충남)에서 하역한 뒤 각각 항공유 6만, 7만t을 싣고 핀란드로 떠났다. 마리카는 올해 북극항로를 거친 최대 크기의 선박이다.



日, 가스 운송 경제성 타진

한, 러 통해 지난해 10회 운항

조선업계는 쇄빙선 특수 기대



이 항해의 의미는 컸다. 국토해양부 김성호 담당은 “지금 북극항로는 화물이 적어 선박들이 화물 하역 뒤 빈 배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항해로 경제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됐다”고 말했다. 북극항로는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남방항로보다 운송거리를 40%가량 줄여 경제성이 있지만 왕복이 아닌 편도 운임만 받을 경우 경제성은 뚝 떨어진다. 노바텍은 지난해 한국에 7차례 가스콘덴세이트를 수출하고 그중 3차례는 항공유를 싣고 돌아갔다. 모스크바의 ‘북동항로 이용·조정 비영리조합’의 블라디미르 미하일로비치 회장은 “2011년에도 북극항로를 통해 한·러 간에 선박이 8회 오갔는데 그중 5회는 러시아의 수출, 3회는 수입이었다”며 “중국도 8회 거래했지만 한국 사례 같은 왕복 운송은 없었다. 한국 물류시장의 잠재력이 큰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가 주도한 10차례 항해 덕에 북극항로는 이미 성큼 우리 앞에 다가섰다.

새해엔 한국도 첫 시범운항으로 북극항로 개척에 나선다. 김 담당은 “우리 정부는 지난해 상업용 시범운항을 하려 했으나 경기가 나빠 연기했다. 현재 정유사들을 상대로 국내 선박회사의 아이스클래스급 선박을이용한시험운항을 협의하고 있다. 시기·품목은 아직 미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적자에 허덕이는 해운회사들은 아직 북극항로에 큰 관심을 보이진 않고 있다.

그러나 조선업계는 다르다. 전 세계 가스·석유 매장량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북극권 개발과 함께 북극항로가 단비를 내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쇄빙선은 1척에 1억~2억 달러에 이르기 때문이다. 대우조선해양 고재호 사장은 “해저유전 개발과 더불어 북극이 조선산업의 새로운 먹거리가 될 것”이라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심해저 개발을 위한 드릴십 등 해양구조물과 쇄빙선 수주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STX조선해양 자회사인 STX유럽은 극지 운항용 선박 건조의 선두 주자다. 현대 중공업도 세계 최대 규모인 19만t급 쇄빙 상선을 개발했다. 삼성중공업도 세계 최초로 극지 운항용 양방향 쇄빙 유조선을 건조하며 극지용 특수선박 시장에 진출했다.

중국의 북극항로 진출은 관 주도 형태로 진행 중이다. 지난해 7~8월 119명의 연구인력을 실은 쇄빙선 쉐룽(雪龍)을 투입, 시험항해를 마친 중국은 다시 13억 위안(약 2200억원)을 들여 대형 쇄빙선을 추가 건조한다. 핀란드의 아커 악틱사와 공동으로 중국에서 건조 중인 이 쇄빙선은 길이 120m, 폭 22.3m으로 내년에 취항한다.

이와 관련,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중국의 북극해 야망’이란 종합 보고서는 “북극항로가 본격화되면 중국은 북한에서 임대한 나진항을 북극항로의 허브로 삼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중국 학자들은 북극항로가 두만강 유역에 큰 이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창춘(長春)∼지린(吉林)∼투먼(圖門)’을 잇는 ‘창지투(長吉圖)’ 선도구 발전사업과 훈춘(琿春)변경경제합작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나진은 바로 이 지역의 대외 출구다.



중국, 극지 이슈 총괄 ‘국립해양국’ 설립

중국은 국립해양국을 설립, 극지와 관련된 모든 이슈를 총괄하고 있다. 해양국은 국무원·인민해방군 인력 수십 명이 파견된 극지연구자문위를 주도한다. 그러나 북극항로에 관한 정부 차원의 관심은 민간까진 이어지지 않고 있다.

한국 해양수산연구원이 지난해 한·중·일 3개국의 80개 해운ㆍ물류 회사를 상대로 한 조사에서도 중국 기업들의 관심은 높지 않았다.

일본도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다. 1980년대 후반부터 민간 해양정책연구재단 등이 북극항로 실현을 위한 조사와 연구를 펼쳐왔다. 이어 95년에는 노르웨이ㆍ러시아와 공동연구 및 시범운행을 했다. 동북아 3개국 중 출발은 가장 빨랐다. 국토해양부의 김성호 담당은 “그러나 시험항해 뒤 경제성이 없다고 보고 추가 움직임이 없었다”며 “최근 다시 공동연구를 하는 쪽으로 얘기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해양수산연구원 김성우 실장은 “다양한 변수를 투입해 연구한결과 북극항로에서 가장 이익을 보는 나라는 일본이며 그 다음이 한국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지난해 산고마루라는 회사 소속의 7만5000t급 선박 두 척이 덴마크에서 북극해를 거처 중국으로 철강석을 싣고 왔다. 덴마크의 ‘노르딕 바렌츠 캐리어’사가 용선한 것이다. 또 가스프롬도 북극항로를 이용, 노르웨이에서 구입한 가스를 LNG 선박 편으로 통상의 남방항로 대신 북극항로를 거쳐 일본으로 시험운송 했다. 가스 수요가 많은 일본으로선 북극항로를 이용한 운송이 경제적인지 시험한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일본이 아니라 외국 민간 업체가 주도하는 형편이다.

다만 일본 정부의 움직임은 주목할 만하다. 국토교통성은 지난해 8월 내부에 ‘북극항로 이용을 위한 검토회’를 설치했고 이 검토회엔 관계 부처 공무원, 민간사업자, 학자들이 참여했다. 검토회 주도로 북극항로에 대한 기술ㆍ제도ㆍ경제적 분석이 진행되고 있으며 북극해 관련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일 언론은 “쇄빙 능력이 있는 조사선 투입이 늦어지고 있다”며 비판하고 있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