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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시명의 ‘힐링으로 풀어보는 약술 기행’ ⑪·끝 일본 막걸리

중앙일보 2013.01.07 06:36 건강한 당신 6면 지면보기
2012년 가을 도쿄 신주쿠에서 열린 생막걸리 시음 행사장. 일본 막걸리와 한국 막걸리가 함께 자리했다.
일본 막걸리의 역습이 시작됐다. 2011년 3월부터 한류스타 장근석을 모델로 한 장수막걸리가 이동막걸리·진로막걸리에 이어 일본에 진출하면서 막걸리는 일본의 스타가 됐다. 그리고 그 스타를 쫓는 일본 마코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3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일본 청주 양조장에선 이젠 막걸리를 만들고, 북쪽 홋카이도부터 남쪽 가고시마에서도 막걸리 양조장이 생겨나고 있다. 안타깝게도 일본에서의 막걸리는 김치의 운명을 닮아가고 있다. 일본인들은 김치를 처음엔 ‘조선쯔게’라고 낮춰 부르다 김치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면서 ‘기무치’란 이름으로 부르며 세계시장을 선점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한국은 세계시장에서 김치의 주도권을 놓고 일본과 힘겨운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이제 일본은 한국에 묻고 있다. “막걸리의 주인은 누구냐!”


“유산균 가득해 장에 좋다” ‘마코리’ 힐링음료로 인기

부드럽고 건강한 저알코올 음료



일본인들이 막걸리의 매력에 빠져든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양념한 불고기와 발효식품 김치로 대표되는 한국 요리가 일본 사회에 퍼지고, 한국 드라마와 음악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막걸리 인기도 상승했다. 하지만 막걸리 인기의 핵심 동력은 바로 부드럽고 건강한 저알코올 음료라는 점이다. 지진과 방사능에 노출된 일본인은 모든 식품을 홍보할 때 ‘안전과 안심’을 강조하는 실정이다. 막걸리 역시 힐링 음료로 제조됐다는 점을 강조한다.



 일본 이바라키현에서 11대째 술을 빚는 요시쿠보 주조장에서는 ‘토끼의 댄스’라는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국산 쌀 100%를 사용하고, 전통기법으로 양조한 안전한 국산 막걸리입니다. 미세한 탄산에 엷은 단맛을 여성과 술에 약한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라고 홍보한다.



 한국 막걸리 양조장에서 많이 사용하는 백국균(아스퍼질러스 가와치)을 처음 발견한 가고시마의 니시키나다 주조장에서는 생막걸리를 만들면서 “효모와 효소가 살아 있고, 유산균이 가득해 장에 좋습니다. 막걸리엔 아미노산 18종류가 들어 있고, 그 안에 필수아미노산 8종류가 전부 들어 있습니다. 건강식품으로 알려진 흑초보다 훨씬 양이 많습니다”라고 홍보한다. 이 회사는 흑초를 상품화하면서 누룩연구소도 운영한다.



 1925년에 일본 청주회사로는 처음으로 냉장시설을 갖춘 고치현의 기쿠스이 주조장에서는 일반 막걸리와 자몽·망고 막걸리 3종류를 만들고 있다. 특히 자몽 막걸리는 “여성을 위한 술로 고치현에서 생산하는 자몽을 사용해 깔끔해서 마시기 좋고, 상쾌한 신맛을 즐길 수 있는 술”로 알려졌다.



청주·유자 ·두유 막걸리 등 일본 본토에서 인기



2012년 11월 도쿄 북쪽 사이타마현의 아사하라 주조장을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는 모두 6종의 막걸리를 생산하고 있었다. 양조장은 2010년 1월에 일반 막걸리, 유자·블루베리·망고 막걸리를 출시했다. 2011년에는 두유 막걸리와 ‘마선생이 자랑하는 막걸리’를 내놓았다.



 마선생은 아사하라 대표 자신이다. 그는 도쿄의 신주쿠에서 막걸리를 처음 맛보았다. 그 맛에 반해 막걸리를 만들게 됐다. 청주에 술지게미와 탈지분유를 넣어 흰빛이 돌고 당류를 넣어 단맛을 강화시킨 제품이다. 알코올 도수도 얼추 막걸리 수준인 7% 수준이다. 그가 만든 두유 막걸리는 더욱 낯설었다. 청주에 두유와 복숭아향료·당류·술지게미·탈지분유를 넣어 만들었다. 엄밀히 말하면 두유 막걸리는 막걸리가 아니다. 왜 막걸리라고 이름 붙였느냐고 묻자 아사하라 대표는 “일본에는 막걸리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 재미있게 하려고 막걸리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라고 대답했다.



인공 감미료 배제한 고급 술 막걸리



일본에서 만들어지는 막걸리는 대부분 유리병에 담겨 있어 고급스럽고, 일본산 쌀을 사용해 안전을 강조했다. 쌀누룩으로 단맛을 낼 경우 감미료를 쓰지 않고, 지역 특산 과일을 넣어 다양한 제품이 나온다. 흥미로운 사실은 탁한 술들이 니고리자케(일본 탁주)나 리크류라는 이름 대신 막걸리라는 이름을 썼을 때 훨씬 더 잘 팔린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한국과 달리 막걸리가 결코 싸지 않다. 그리고 일본 청주는 겨울에만 빚지만 막걸리는 사계절 빚을 수 있어 양조장 가동률을 높일 수 있다는 점도 양조업자에겐 큰 매력이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 막걸리가 늘어나면서 벌어지는 한국산 막걸리와의 생존 경쟁이다. 일본 양조업자들은 일본에 수출되는 한국 막걸리가 주로 살균 막걸리라는 점을 들어 유산균이 풍부한 막걸리를 즐기려면 생막걸리를 마셔야 한다고 주장하고, 건강을 위해 인공감미료가 들어 있지 않은 막걸리를 마셔야 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막걸리를 ‘마코리(マッコリ)’라고 부르는 데서 한 발 더 나아가 일본풍 막걸리라는 의미로 ‘와코리(和っこり)’라고 부르고 있다. 우리가 선뜻 병에 담지도, 한국산 명품쌀을 쓰지도, 인공 감미료를 배제하지도, 그래서 고급스럽게 보란 듯이 내놓지 못하고 있는 막걸리를 일본은 슬그머니 해내고 있는 것이다. 문화는 전파처럼 떠다니는 것이라 바로 체감하기 어렵고 경계 짓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 발신처와 수신처는 존재한다. 막걸리의 발신처는 어디일까. 세계시장으로 나서는 막걸리는 김치의 시행착오를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



 글=허시명

(농림수산식품부 지정 우리 술 교육 훈련기관 ‘막걸리 학교’ 교장, 『막걸리, 넌 누구냐?』『술의 여행』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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