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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지하철 39년간 요금 35배, 승객 18배↑

중앙일보 2013.01.07 00:46 종합 18면 지면보기
1984년 지하철역에서 역무원이 티켓을 검사하는 모습. 당시엔 자동으로 티켓을 인식하는 스피드 게이트가 없어 역무원이 일일이 티켓을 확인했다(왼쪽). 1980년 10월 31일 지하철 2호선 개통축하 장식을 단 전동차가 달리고 있다(오른쪽 위). 1974년 8월 15일 지하철 개통을 기념해 나온 승차권. 서울역~청량리까지의 노선도가 들어가 있다(오른쪽 아래). [사진 서울메트로]


서울 지하철. 지금은 노선도만 봐도 머리가 아플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1974년 개통 당시엔 1호선 딱 한 개 노선뿐이었다. 서울역에서 청량리 구간 7.8㎞를 달렸다. 이용 승객은 하루 평균 23만 명. 이용 요금은 기본구간(8㎞) 기준으로 30원이었다. 지금은 1~4호선 기준 하루 평균 404만2052명이 이용한다. 개통 당시보다 18배가 많은 인원을 실어 나른다. 요금은 1050원으로 35배가 됐다.

서울메트로 ‘시민의 발 …’ 발간



 서울메트로는 6일 출범 30주년을 기념해 『시민의 발, 시민의 길 서울메트로 30년사』를 발간했다. 서울메트로는 81년 9월 서울시가 500억원을 출자해 만든 국내 최초의 지하철 운영 공기업이다. 지난해 작업하기 시작해 이 한 권에 지금까지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여기엔 국내 지하철의 변천사를 비롯해 진귀한 기록이 모두 담겨 있다.



 지하철이 지금은 ‘시민의 발’로 사랑받고 있지만 시작은 미미했다. 개통 첫날부터 순탄치 않았다. 74년 8월 15일 조간신문은 ‘최초 지하철 개통’을 축하하는 사설과 기사들로 넘쳐났다. 오전 11시에는 성대한 개통식을 열 참이었다. 그러나 바로 직전 열린 광복절 경축행사에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부인 육영수 여사가 총탄을 맞고 사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결국 개통식은 침통한 분위기 속에서 별도행사를 모두 취소한 채 간단히 치러졌다. 그날 석간신문에서 개통식 관련 기사는 구석에 조그맣게 실리거나 아예 빠졌다.



 요즘은 지하철을 이용할 때 교통카드를 찍고 통과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초기에는 개찰구에 서 있는 승무원이 일일이 표를 검사하고 받아 통과시켰다.



당시 승차권은 발행번호·발매역·창구번호 등을 일일이 손으로 찍어 발행한 ‘핸드 메이드 티켓’이었다. 이름은 일명 ‘에드몬슨 승차권’. 직원들이 표를 조작해 돈을 떼먹는 등 각종 비리가 발생하자 영국 철도회사 직원이었던 에드몬슨이 이를 막기 위해 승차권 발매기를 직접 만든 것에서 유래해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86년 자동화기기와 함께 마그네틱 승차권이 도입되면서 에드몬슨 승차권은 사라졌다.



초기 지하철은 냉방시설이나 환기장치가 없어 여름철만 되면 승객 모두 고생했다. 야심 차게 도입한 마그네틱 승차권은 땀에 젖어 훼손되기 일쑤였다. 이런 불편함은 97년에 후불교통카드 시스템이 도입되고 난 뒤에야 해소됐다.



 지하철과 관련한 각종 데이터도 이 책의 재미를 더해 준다. 1~4호선이 지금까지 실어 나른 인원은 총 367억4683만 명이 넘고 열차의 하루 운행시간을 합하면 2050시간36분이다. 이 구간 중 가장 깊게 위치한 역사는 2호선 이대역으로, 깊이가 28.41m에 달한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잃어버리는 물건으로는 스마트폰과 노트북이 꼽혔다. 3호선 약수역은 지금의 버티고개에 위장병에 특효인 약수터가 있었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메트로는 서울시와 시의회 등 관련 기관과 도서관 등에 총 2000부를 배포할 계획이다. 또 시민들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www.seoulmetro.co.kr)에도 전자책 형태로 게시할 예정이다.



강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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