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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국내 생산 … 싱가포르선 테팔 눌러”

중앙일보 2013.01.07 00:37 경제 5면 지면보기
해피콜 이현삼 회장은 10년간 노점에서 프라이팬을 팔다가 ‘제대로 된 물건을 만들어 보자’는 결심으로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창업 10여 년 만에 해피콜 프라이팬은 싱가포르 등 일부 시장에서 프랑스 유명 브랜드를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안성식 기자]
냄비·프라이팬 같은 주방용품은 국내산 제품을 만나기 쉽지 않다. 임금이 싼 중국이나 동남아시아에서 만들면 제조원가를 낮출 수 있고, 현지에서 판매하기도 수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냄비와 프라이팬을 만들면서 100% 국내 생산을 고집하는 회사가 있다. 주방용품업체 해피콜이다. 이 회사는 모든 제품을 경남 김해에 있는 3개 공장에서 만든다.


중견기업 파워리더 (18) 이현삼 ‘해피콜’ 회장

 1999년 해피콜을 세운 이현삼(50) 회장은 “국내에서 만들면 비용이 중국보다 20%가량 더 들지만 품질 관리가 잘되기 때문에 줄곧 국내 생산을 고수했다”고 말했다. 그는 “더구나 해외에서 한국산은 가격을 20% 이상 더 받을 수 있어 ‘메이드 인 코리아’가 곧 수출 경쟁력인 셈”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한류 열풍 덕에 해외 백화점에서 판촉행사를 할 때 태극기를 내걸면 매출이 두세 배는 뛴다고 한다.



 해피콜은 2001년 출시한 양면 압력 프라이팬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대표적인 국내 주방용품업체로 자리 잡았다. 가스레인지에서 구이요리를 할 수 있는 직화구이 냄비, 특수 코팅을 입힌 다이아몬드 프라이팬 등 히트작을 연달아 내놓아 매출 1200억원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해피콜 제품은 대부분 아이디어의 승리다. 이 회장이 10년간 장사를 하면서 귀담아 들은 고객 의견이 아이디어의 원천이다. 그는 고교(거창농고)를 졸업한 뒤 고향에서 포장마차, 중소 제조업체를 전전하다 돈을 벌기 위해 89년 무작정 상경했다. 서울역에 도착해 처음 접한 노점상을 보고 그 길로 장사를 시작했다. 지하철역과 전국의 장터를 돌며 프라이팬과 신발·옷·이불을 닥치는 대로 팔았다. 장사에 재주가 있어 4년 만에 현금을 15억원까지 모았다.



 하지만 허름한 물건을 팔다 보니 혹여 손님이 항의할까 늘 쫓기듯 자리를 옮겨 다녀야 했다. “이럴 게 아니라 물건을 잘 만들어서 계속해서 사러 오게 하면 피해 다닐 필요가 없지 않나”하는 생각으로 제조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후발업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존에 없는 제품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프라이팬에 생선을 구울 때 사방으로 기름이 튀고, 냄새와 연기 때문에 불편하다는 데 착안해 양면 프라이팬을 고안했다.



시장에서 자주 봤던 붕어빵 틀에서 힌트를 얻었다. 제품 개발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너무 두꺼우면 무겁고, 얇으면 눌어붙었다. 직접 수천 마리의 생선을 구워본 끝에 가장 적당한 알루미늄 두께를 찾아냈다. 그의 손과 팔에는 그때 입은 화상이 남아 있다.



그는 “어떤 일이든 90%까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나머지 10%에서 판가름이 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신상품을 출시할 때는 직접 홈쇼핑에 출연한다. 제품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물건도 잘 팔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사업이 늘 수직 상승했던 건 아니다. 양면 프라이팬으로 잘나가던 회사는 2004년 노사분규와 세무조사가 겹치면서 추락했다. 매출이 10분의 1로 줄고 거액의 세금도 추징당했다.



부산 본사와 공장을 매각하고 김해로 옮겨 재기에 성공했다. 이 회장은 “창업 이후 지금까지 상품 개발과 판매에만 집중해왔는데 올해부터는 인재 양성과 지속 성장의 토대를 갖추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피콜은 중국 등에 해외법인 5개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수출에 나설 채비를 갖췄다. 매출액의 35%인 수출 비중을 장기적으로 8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전망은 밝다. 싱가포르 등 일부 시장에서는 프랑스 테팔을 누르고 프라이팬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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