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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가지 쌀 먹어보면 다 감별하죠, 나는‘밥 소믈리에’

중앙일보 2013.01.07 00:00 종합 30면 지면보기
‘밥 소믈리에’ 박경리씨가 서울 신세계 사업장에서 갓 지은 밥을 퍼 보이고 있다.
‘밥 소믈리에’. 12가지 쌀 품목의 밥맛을 모두 구별하고 평가할 줄 알아야 딸 수 있는,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밥 자격증이다. 일본취반협회가 주관한다.


박경리 신세계푸드 대리

 박경리(38) 신세계푸드 식품연구원 대리는 지난해 9월 이 자격증을 땄다. 국내에선 일식 조리사 등 10여 명 정도만 보유하는 자격증을 이례적으로 식품업체 직원이 땄대서 당시 업계에선 화제가 됐다. 그는 “일본의 도시락밥처럼 차가워도 맛있는 밥을 만들어보겠다”며 자격증에 도전했다. 회사에 지원 요청도 했다. 신세계푸드는 이마트와 편의점 CU에 삼각김밥 등을 납품하고 있다.



 패기는 좋았지만 시험 공부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대학시절 일본 유학 경험이 있었지만 이해하기 힘든 일본어 전문용어가 숱했어요. 일본취반협회가 지정한 쌀 12개 품목을 구별해야 하는데, 한국에서 파는 건 ‘고시히카리’와 ‘히토메모네’ 단 두 종이었거든요.” 그는 대형마트마다 돌아다니며 국산 쌀들을 연도별·품종별·도정별로 수십 종류 사모았다. “도대체 쌀 사는 데만 돈을 얼마나 쓰느냐”는 회사의 ‘타박’도 들었다.



 지난해 7월부턴 이렇게 사모은 쌀로 두 달 간 식사 외에 매일 맨밥만 2~3공기씩 더 해먹었다. 일주일쯤 먹으니 희미하게나마 품종 별로 맛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밥심’으로 매일 저녁 10~11시까지 남아 공부했고, 주말엔 쌀 도정센터(RPC)로 가 도정 과정을 관찰했다.



 “공부를 해보니, 간단하게만 생각했던 밥짓는 공정이 생각보다 훨씬 정교하더라고요.” 물 양을 쌀의 130%에 맞춰 지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일본은 계절별·온도별·습도별로 밥 물의 양을 130~135%까지 미세하게 다르게 하더라고 했다. “동남아 쌀처럼 쌀알이 얇고 가벼운 경우 물의 양을 130%보다 적게, ‘신동진’ 품종처럼 쌀알이 큰 경우 물의 양을 130%보다 많이 넣으면 밥맛이 더 좋아집니다. 계절에 따라 뜸들이는 시간도 달라져요. 여름에는 30분 정도만 뜸 들여도 밥이 잘 익지만, 겨울에는 2시간 정도는 놔둬야 밥맛이 좋거든요.”



 박 대리는 무농약 쌀의 경우 도정이 비교적 적어 쌀의 무기질이 잘 살아있고, 영양 균형도 잘 맞는다고 했다. “실제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비율이 5대 3대 2로 영양 밸런스가 잘 맞는 쌀이 밥맛도 좋습니다.”



 밥 소믈리에 2년차에 접어든 박 대리의 올 포부는 ‘알기 쉽고 정교한 밥짓기 매뉴얼 작성’이다. 스시용 밥, 도시락용 밥 등으로만 구분돼 있는 밥짓기 매뉴얼을 현미밥, 찰밥 등 밥 종류별로 세분화해 만들고 싶다고 한다.



 박 대리는 “일본과 한국은 세계에서 반찬과 밥을 입 안에 함께 넣고 씹는 ‘입 안 조미’를 하는 유일한 두 나라”라며 “유달리 꼭꼭 씹어 맛을 느끼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식음료 시장에서 밥맛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조혜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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