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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박 당선인은 기억할까, 5년 전 발언을

중앙일보 2013.01.07 00:00 종합 32면 지면보기
정선구
경제부장
아마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2007년 6월 한 조찬 특강에서 한 말을. 경제부 차장 시절, 그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는 딱딱한 분위기를 녹이고자 썰렁한 유머부터 꺼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갔어요. 그런데 관람 도중 화재가 났지요. 작품 하나만 들고 나와야 하는 상황입니다. 어떤 작품부터 들고 나와야 할까요. 모나리자? 비너스? 정답은 자기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작품입니다.”



 청중을 웃기려고 한 얘기였다. 물론 아무도 웃지 않았지만. 그러면서 그는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것은 바로 내 앞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경제 성장과 일자리 창출이며, 그리하기 위해 첫 번째 ‘산업의 쌀’이 땅이요 두 번째가 철이요 세 번째가 반도체라면, 네 번째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대선 직전엔 박종웅 대한석유협회장과 오찬을 한 적이 있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가신(家臣)이자 3선 의원 출신인 그가 전한 YS의 인사법. YS는 요직을 발탁할 때 누구와도 의논하지 않았다. 혼자 골몰히 구상한 뒤 전광석화처럼 인선을 발표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참모들 의견을 들으면 이해당사자들끼리 험담하고 끌어내리고…. 이는 DJ(김대중 전 대통령)가 JP(김종필 전 총리)를 영입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DJP 구상을 논의하기 시작하면 JP 입성을 꺼리는 충청권 의원, 보수와의 연합을 반대하는 세력 때문에 아마 DJ는 동교동 자택에 갇혔을 것이다. 당연히 DJ 정권 탄생은 어려웠을 테고.



 인수위원이 발표됐다. 역시 박 당선인답게 ‘깜깜이 인사’라는 평이 나왔다. 만기친람(萬機親覽: 임금이 온갖 정사를 직접 살핌) 인사도 화제다. 그의 인사 스타일은 YS나 DJ와 비슷해 보인다. 특히 대탕평을 강조하는 그이기에 참모들과 의논하다가는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어 이해가 간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향후 5년은 그 어느 정부보다 어려운 시기다. 지구촌 전체가 위기에 빠져 있는 때다. 5년의 평가가 인수위 활동에서 비롯될 텐데, 과연 제대로 된 인선일까.



 박 당선인은 2007년 특강 때 이런 말도 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찍 일어나면 뭐합니까. 그것만으론 부족한 시대입니다. 어디에 먹이가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의 말마따나 일찍 일어난다고 되는 게 아니다. 인재는 먹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한다. IBM 같은 굴지의 기업들이 채택하는 인재고용 방식이다.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보다 지식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사람을 중요시한다.



 ‘일찍 일어나는 새’ 발언으로 짐작하건대, 박 당선인은 이미 5년 전 인재등용법을 알고 있었다. 문제는 교수들로 잔뜩 채워진 인수위가 ‘벌레의 위치’를 제대로 알고 있느냐다. 혹여 정책을 만든답시고 과거 원인 분석에만 허송세월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지. 세이브 더 칠드런(Save the Children)의 베트남 지부장 제리 스터넌은 1990년 베트남 어린이 영양실조 해결 때 쓸데없는 원인 파악에 매달리지 않았다. 대신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은 어린이들을 관찰해 해법을 찾았다. 놀랍게도 이들 어린이 부모들은 아이들이 소화를 잘 하라고 식사를 조금씩 쪼개 하루 네 번 먹였고, 고구마 잎으로 밥을 싸 먹였다. 스터넌은 6개월 만에 베트남 어린이 영양상태를 개선시켰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문제가 심각한 정책들은 지겹도록 원인 분석이 돼 있다. 실증적인 활용법을 찾지 못했을 뿐이다. 예컨대 가계부채 문제만 놓고 보자. 주머니 사정은 매우 어렵지만 그나마 가계부채를 피해 온 중산층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정보를 모아 해결하는 ‘스터넌식’ 발상은 어떨까. 이제는 먹이를 잘 꿰고 있는 사람이 발탁돼야지, 자칫 어정쩡한 인사가 혜안도 없이 부지런만 떨다가 정책 망칠까 두렵다.



 특강 말미에 박 당선인은 “농담 하나 더 하겠다”며 말을 이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는데, 그럼 일찍 일어나는 벌레는 뭐가 되나요.”



 첫 번째 유머에서는 눈만 깜박거렸던 청중들이 두 번째 유머에서는 웃었을까. 정답은 박근혜 정부가 끝나는 5년 뒤 국민 각자가 내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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