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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협력사 경조금은 ‘을’의 상납이다

중앙일보 2013.01.07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요즘 인기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 중 하나가 ‘개그콘서트’의 ‘갑을 컴퍼니’다. 직장 내 상사와 부하 직원 간에 벌어지는 애환을 갑을(甲乙) 관계로 해석해 풍자한다.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갑을 관계의 전형은 원청(原請) 대기업과 하청(下請) 중소기업이다. 하청 기업을 상생의 동반자가 아닌, 약탈과 착취의 존재로 보는 풍토다. 기술 탈취와 부당한 납품 단가 등의 불공정 거래가 빈번하고, 대·중소기업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건 이런 갑을 관계 탓이 크다.



 이런 점에서 을(乙)인 협력업체로부터 경조금과 선물을 일절 받지 않기로 한 LG의 선언은 참으로 신선하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갑을 관계를 청산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수 있어서다. 물론 개인적 친분에 의한 선의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기에는 우리 사회의 현실이 너무 심각하다. 어쩔 수 없이 챙겨야 하는 경조금과 선물의 고통을 호소하는 협력업체들이 너무 많다. 며칠 전 법원이 자신의 감독하에 있는 업체로부터 축의금을 건네받은 노동청 공무원에게 뇌물죄를 적용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업체 관계자들이 축의금을 보내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에 뇌물이다”고 판결한 점을 감안한다면 ‘선의’ 운운할 일 아니다.



 당연히 재계가 적극 동참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상생 문화의 확산과 양극화 해소, 반(反)기업 정서 완화에 시동을 걸어야 한다. LG 이전에도 이런 움직임은 있었다. 신세계가 1999년, 삼성이 2년 전부터 이미 시작했다. 신세계의 임직원 10여 명은 이 규정을 어기는 바람에 해고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되지 않은 건 재계의 잘못이다. 재계가 나서면 정·관계 등도 나설 수밖에 없다.



 선언을 확실히 정착시키는 것도 대기업이 해야 할 일이다. 협력사 입장에선 이 같은 선언이 제대로 실천될지 의구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경조금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면 부작용만 더 커질 것이다. 이런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철저히 실천해야 한다. 말로만의 선언에 그칠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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