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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류창 석방, 과연 옳았나

중앙일보 2013.01.07 00:00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중국인 류창은 2011년 12월 26일 일본 야스쿠니 신사의 신문(神門)에 불을 질렀다. 그러고는 그날 오후 서울로 왔다. 일본은 범죄인 인도조약에 따라 그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검찰은 이를 받아들여 법원에 청구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 20부는 이를 기각했고 류창은 중국으로 갔다. 일본에선 비난 여론이 거세다. “한국이 국제사회 신용을 잃을 것”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한국에는 “사법부 결정이 옳으니 일본은 이를 존중하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한국 재판부 판단은 과연 옳은 것인가. 국제법적으로 일본이 당한 불이익은 없는가. 이번 결정이 한·일, 나아가 동북아에 미칠 부작용은 없을까.



 재판부는 류창은 일반 형사범이 아니라 ‘상대적 정치범’이라고 규정했다. 국제법상 정치범엔 두 종류가 있다. 절대적 정치범은 국가의 체제나 정책에 반대해 내란·소요·보안법 위반 등과 관련된 사람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공산권이나 후진국 독재체제에 항거했던 이들이 주로 해당된다. 가장 최근엔 아랍 반(反)독재 투쟁이 있다. 이들에 대한 인도(引渡)는 거부할 수 있다.



 ‘상대적 정치범’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일반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다. 상당 부분 이런 경우엔 인도해야 한다. 테러리스트가 좋은 예다. 그런데 재판부는 상대적 정치범의 경우 정치성과 범죄성을 비교해 인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류창은 정치성이 더 크므로 불인도 대상이 된다고 결정했다. 물론 류창의 정치적 범행 동기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한국인 외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였고 중국인 할아버지는 항일무장투쟁 중에 전사했다. 류창은 과거사에 대한 일본 정부의 태도에 항의하러 불을 질렀다.



 그렇다고 ‘범죄성’은 작은 걸까. 재판부는 “신사의 외부 출입문 일부가 손상됐을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인에게 단순한 건물이 아니다. 그곳에 대한 외국인의 방화는 상당한 정신적 피해가 될 수 있다. 류창은 서울에서는 일본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졌다. 이 경우에도 피해는 작았다. 그런데 한국은 사법권을 행사해 징역 10개월로 류창을 단죄했다. 한국의 사법권은 중요하고 일본의 그것은 중요하지 않나. 범죄인 인도조약은 양국이 서로의 법익(法益)과 사법권을 존중한다는 뜻 아닌가.



 ‘상대적 정치범’에 대한 관용을 확대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아버지가 한국전쟁 중에 미군에 학살당한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는 철저한 반미주의자가 됐고 맥아더 동상을 파괴한 뒤 반미 성향을 가진 나라로 피신했다. 그 나라가 그를 넘겨주지 않으면 한국인은 납득할까. 한국전쟁 중에 조상이 중공군에 학살당한 한국인이 있다고 하자. 그가 중국의 한국전 참전기념관 입구에 불을 지르고 다른 나라로 갔다. 그 나라가 그를 보호한다면 중국은 받아들일까. 정치적인 목적이 크다고 해서 범죄인을 보호하면 ‘항의와 분노의 방화’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어느 나라도 피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침략 과거에 대한 일본의 태도는 분노를 사기에 충분하다. 피해자뿐 아니라 전 인류의 이름으로 규탄해야 한다. 그러나 방법은 어디까지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역사적인 감정이 법을 압박하면 안 된다. 한·중·일은 과거가 민감하고 현재가 복잡하며 미래가 불투명한 매우 어려운 관계다. 일본 책임이 절대적이지만 하여튼 현실은 그렇다. 이런 관계에서는 정서가 법에 앞서면 문제가 더 틀어질 수 있다.



 한·중·일 사이에선 특히 폭력에 대한 남다른 경계심이 필요하다. 서로 전쟁을 치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명분이 있다고 폭력이란 수단이 광범위하게 용인되면 ‘폭력의 시대’가 다시 올 수 있다. 정서적인 이유로 일본에 대한 폭력을 용인한다면 지역의 새로운 절대강자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도 있다.



 류창은 의로운 인물이다. 의(義)를 위해 불을 질렀다면 그는 현장에서 일본 경찰의 수갑을 받았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법정에서 일본을 향해 자신의 대의를 주창했어야 하지 않을까. 안중근 의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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