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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너무 컸나신파조 창법에 묻힌완득이 쿨한 매력

중앙선데이 2013.01.05 17:22 304호 24면 지면보기
70만 부 이상 판매된 화제의 베스트셀러, 500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 영화. 김려령 작가의 성장소설 『완득이』가 뮤지컬 무대에 올랐다. 쿨한 척 훈훈한 감동을 주는 독특한 매력의 탄탄한 내러티브로 많은 사랑을 받은 원작과 ‘명성황후’ ‘영웅’으로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의 대부로 꼽히는 윤호진 연출의 만남. 이미 영상으로 완벽에 가깝게 구현된 완득이의 세계는 얼마나 개성적인 무대로 탄생했을까?
달동네를 배경으로 희망을 노래하는 원작에 걸맞게 7년 넘게 롱런하고 있는 소극장뮤지컬 ‘빨래’를 연상시키는 정감 가는 무대미술, 공연 전부터 로비까지 흘러나오는 흥겨운 배경음악은 기대를 고조시켰다. 원작의 한 축을 담당하는 완득이의 기도 타이밍에 사이비 교주처럼 코믹한 하나님의 등장은 딱 그 기도 수준을 형상화한 연출로 극의 분위기를 띄우기에 적절했다. 카바레 댄서 출신 아버지와 민구 삼촌의 커플댄스도 뮤지컬 무대에 제격이었다. ‘영웅’의 박진감 넘치는 추격신을 만들었던 정도영의 안무도 볼거리. 완득이의 꿈과 희망인 킥복싱을 절도 있는 군무로 풀어 시각적 쾌감을 선사했다. 고물자동차 티코와 허리 잘린 종이 버스를 인물이 힘겹게 끌고 다니는 위트도 돋보였다. 착시효과를 이용해 실제와 영상을 교차시킨 실물 크기 기차의 스펙터클이 압권이던 ‘영웅’을 스스로 패러디한 것. 킥복싱 데뷔전에서 적절히 사용된 실루엣 조명과 영상은 클라이맥스의 극적인 효과를 강조했다.

뮤지컬 ‘완득이’, 3월 23일까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

완득이의 무대 미학은 거기까지였다. 대학로 근처 이화 사거리에 새로 지은 홍익대 대학로아트센터는 700석 규모의 중극장이지만 웬만한 대극장 못지않은 무대 스케일을 자랑한다. 문제는 바로 거기, 콘텐트와 극장 규모의 충돌에서 비롯됐다. ‘완득이’는 소극장뮤지컬에 안성맞춤인 아기자기한 휴먼드라마. 소극장용 콘텐트를 대극장 스케일로 펼치는 과정에서 마치 남의 옷을 빌려 입은 듯 전체가 어색해졌다. 덕분에 ‘청소년 성장소설의 새 장을 열었다’는 원작의 독특한 매력을 살릴 무대만의 개성은 방향을 잃고 실종된 채 그저 영화의 잔상만 자꾸 떠오르는 평범한 무비컬이 되고 말았다.

사진 에이콤코리아
대극장에 안 맞는 소극장용 콘텐트
‘완득이’의 매력은 무심한 독백조의 대사 속에 묻어나는 시니컬한 심리묘사, 그리고 철천지원수로 상정해 놓은 담임 똥주와의 거부할 수 없는 충돌 가운데 빚어지는 사소한 유머와 잔잔한 감동. 그 안에 완득이의 고민과 성장, 주변인들과의 갈등과 극복이 다 들어 있다. 튀는 장면 없이 잔잔하게 흘러가지만 그 모든 무심한 대사들이 완득이를 완득이이게 했고, 이것은 고스란히 소극장의 문법으로 연출되어야 하는 소재다. 완득이와 똥주라는 캐릭터와 그 대립의 축이 굳건해야 함은 물론이다.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듯 영화의 김윤석, 유아인이 생생히 살려냈던 캐릭터의 매력은 무대에서도 섬세한 연기로 구축되어야 할 성질의 것이라는 얘기다. 대극장용 폭발하는 노래로 대신하기엔 완득이의 캐릭터들은 너무도 생활밀착형. 감당하기 힘든 스케일을 떠받치려 감정과잉을 남발하는 무대에는 진정한 완득이가 없었다.
우리가 소설 속, 영화 속 완득이를 사랑한 것은 장애인 아버지와 외국인 노동자 어머니, 달동네 옥탑방과 수급품 햇반 등 밑바닥 인생의 키워드를 고루 갖춘 이 시대 불행의 아이콘인 이 소년의 인생이 결코 불쌍하거나 비참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불행한 환경조차 쿨하게 인정한 채로 꿈과 사랑을 향해 일보전진을 시도하는 소년의 희망은 거창한 감동 대신 유쾌·상쾌·통쾌한 에너지로 우리를 훈훈하게 달궈줬었다.
스케일 조절에 실패한 뮤지컬 ‘완득이’는 그런 유쾌한 에너지를 살려내지 못했다. 그룹 ‘동물원’의 박기영과 ‘솔리드’ 김조한이 공동작곡한 ‘햇살1g’ ‘엄마향기’ 등 일부 넘버들은 서정적이었지만, 질퍽거리는 감동넘버와 가창력을 과시하려는 듯한 연기자들의 폭발하는 창법은 완득이의 정서와 영 어울리지 않았다.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감상적인 가사들은 급기야 극 전체를 신파조로 몰고 가버려 달동네 사람들이 진정 비참해 보였다.
어느 정도 흥행이 보장된 킬러 콘텐트인 만큼 대극장 무대도 욕심 나는 것이 사실. 그렇다면 신파조의 노래 대신 대극장 무대에서 통할 새로운 문법을 찾았어야 하지 않았을까. 어떤 무대에서건 발랄한 성장드라마로서의 미덕은 지켜져야 진짜 ‘완득이’를 만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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