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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나의 비전 ① 박이문 교수

중앙일보 2013.01.02 00:40 종합 27면 지면보기
80대 초반에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있는 박이문 미 시몬스대 및 포항공대 명예교수. 그는 “시인도 되고 철학자도 되고 싶었던 60여 년 전 젊은 시절이 바로 엊그제 같다”며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같은 길을 걷고 싶다”고 했다. 우리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화합이라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2013년 새해, 묵은 짐을 털고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아침이다. 문화계 인사들의 올해 행보를 들어보는 기획 ‘2013 나의 비전’을마련했다. 꿈을 꾸는 자만이 누리는 영원한 특권을 확인하는 자리다. 첫 순서는 원로 철학자 박이문 교수다.

철학·문학 아우른 60년 … 이제 다시 시작이죠



나이는 학문에 장애가 아니다. 시인이자 철학자인 박이문(82) 미 시몬스대 및 포항공대 명예교수. 2013년은 그의 꿈을 실현하는 원년이다. “철학적인 문제를 제대로 본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올해 철학과 문학을 가로질러온 지난 60여 년 학문여정을 결산하고 대중에게 좀 더 쉽게 다가가는 작업을 기획 중이다. 그런데 뜻밖의 작은 복병이 나타났다. 지난해 말 『철학의 흔적들』이란 책을 펴내느라 좀 무리를 해서 그런지 가벼운 뇌경색증이 발발했다. 1일 오전 만난 그는 “건강 회복에 힘쓰겠지만 결코 꿈을 접지 않을 것”이라고 의지를 다졌다.



 - 또 다시 새해입니다. 철학자는 이맘때 어떤 생각을 합니까.



 “사람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동안 못한 일이나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곤 합니다.”



 - 몸이 불편하시지 않나요.



 “두 달 전 가벼운 뇌경색증이 와서 좀 고생하고 있어요. 생각하는 데는 지장이 없으니까 그 동안 해온 작업을 정리하려고 합니다. 철학의 커다란 줄기는 나름대로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 철학의 큰 줄기라고요.



 “종교·철학·예술·과학 분야의 여러 세계관이 있잖아요, 그런 세계관들이 겉으로는 다르지만 속으로는 그리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관심과 환경의 차이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부른다는 얘깁니다.”



 - 『철학의 흔적들』에서 ‘나는 시인도 되고 철학자도 되고 싶었다’고 했는데, 다시 젊은 날로 돌아간다면.



 “시인인 동시에 철학자, 그때도 같은 길을 걸을 겁니다. 철학과 문학의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아요.”



 - 원로로서 우리 사회에 한 말씀 부탁합니다.



 “화합이죠. 갈라진 마음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선거도 끝났으니까 모두가 각자 위치에서 차근차근 일을 해나가는 분위기를 만들어갔으면 합니다.”



 - 불문학 박사학위까지 받고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셨죠.



 “1950년대부터 시와 문학의 기능,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일관성 있게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현재까지 나의 결론은 철학과 문학·예술에 절대적 구별이 없다는 겁니다. 철학과 과학도 분절할 수 없어요.”



 - 모든 것이 통한다는 말입니까.



 “철학이나 문학·과학을 공부하는 근본적인 과정을 생각해 보세요. 뿌리를 파면 또 뿌리가 나오고, 파면 또 뿌리가 나오고 그런 과정에 놓여 있어요. 반복적 뿌리파기가 끝나는 순간은 죽음이라든가 무의식이라든가, 인간이 사고를 접을 때지요. 철학이나 과학이나 예술이 모두 끝없이 뿌리를 캐는 사고활동이란 점에서 같습니다. 그것이 나쁘다 좋다는 얘기가 아니라 그렇게 돼 있다는 겁니다.”



 - 궁극적 진리가 있는 건가요.



 “근원을 캐는 과정이 있을 뿐이지 어느 세계관도 밑바닥 뿌리에 닿았다고 말할 수 없을 겁니다. 이런 시각으로 보면 우리가 진리라고 부르는 것도 임시로 그런 것이죠.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진리가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진리가 객관적 사실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방편이라고 봅니다. 철학자들이 끊임없이 서로 논쟁하는 문제들이 있죠. 문제가 안 풀리는 이유는 진리에 대한 생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 풀리지 않는 철학적 문제는 무엇이죠.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느냐 없느냐, 신이 있느냐 없느냐 같은 것들이죠. 신의 존재 여부를 보면 현대적인 답은 유물론적으로 신이 없다는 시각이 우세한데, 나는 그렇게 절대적인 답은 없다고 보는 쪽입니다. 무한한 수의 우주가 있다고 천문학자들이 이야기하죠. 수억 년도 넘는 지구의 역사에서 보면 요즘 우리가 사는 문명은 자그만 에피소드 정도 아닐까요.”



 - 교수님의 철학을 ‘둥지의 철학’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새가 둥지를 만드는 과정이나 사람이 철학을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새가 나뭇가지를 물어오듯 사람도 나뭇가지(정보)를 물어다 자기 생각을 키워갑니다. 자기가 편한 대로 생각의 집(둥지)을 지으려고 애씁니다. 자기의 로컬(지역적) 환경을 반영할 수밖에 없죠. 기독교·불교·도교 철학이 다 로컬 환경에서 그들의 기질과 맞아 생겨났습니다. 시대가 바뀌면 또 다른 생각의 양식이 들어와 변화가 생기고 그런 것입니다.”



배영대 기자



◆박이문=1930년 충남 아산 출생. 서울대 불문과와 대학원 졸업. 프랑스 소르본느대와 미국 남캘리포니아대에서 각각 불문학, 서양철학으로 박사학위 취득. 해외에서 30여 년 활동하다 91년 귀국, 포항공대 교양철학 담당교수로 정년 퇴임. 『둥지의 철학』 『철학의 흔적들』 『부서진 말들』 등 저서 100여 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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