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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 만들던 회사서 보일러로 대박낸 비법

중앙일보 2013.01.02 00:32 종합 4면 지면보기
지난달 18일 서울 광화문 KT 올레스퀘어에서는 고벤처포럼 주최로 창업콘서트가 열렸다. 이 행사에 참가한 주요 벤처기업인과 투자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류중희 인텔코리아 상무(올라웍스 창업자), 박희은 이음 대표, 임지훈 케이큐브벤처스 대표, 김홍중 성진로얄모션 대표, 고영하 고벤처포럼 회장,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 정수환 앱디스코 대표, 김태우 모글루 대표, 박재욱 VCNC 대표,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대표. 선배 창업자들의 경험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인프라를 갖춰야 젊은이들이 시행착오 없이 대담하게 자기 사업에 도전할 수 있다. [박종근 기자]


도전은 대한민국을 있게 한 원동력이다. 기업가 정신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시아 시대의 문턱 앞에서 20, 30대는 불안에 떨며 안정만을 좇는다. 직장을 나와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40, 50대 고급 인력들의 출구도 새로 마련해줘야 한다. 이들의 야성을 깨우는 것, 그것이 창업국가 코리아로 가는 길이다. 실패가 자산이 되고, 성공이 또 다른 성공을 부르는 열린 창업의 생태계를 만들자.

[2013 중앙일보 어젠다]② 창업국가 만들자
“지금의 도전이 바로 내 스펙이자 경쟁력” … 360도 열린 청년 창업의 문



응답하라, 청년의 야성





 가방업체 윌씨 김병건(34) 대표의 인생 계획에 ‘내 회사’는 없었다. 20대까지 그랬다. 스펙도 꿀릴 게 없었다. 세계적 디자인스쿨 파슨스를 나왔고, DKNY 등 유명 브랜드와도 함께 일했다. 2008년 11월 한국 의류업체로 스카우트될 때도 안정이 보장되리라 믿었다. 그러나 팀이 갑자기 해체되면서 한 달 만에 실업자가 됐다. 자존심을 접고 50~60곳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모두 떨어졌다. 8개월 만에 그는 가방 도매업을 시작했다. 장사는 꽤 잘됐고, 도매로 돈 버는 법도 보였다. 하지만 그는 ‘내 가방’에 도전하기로 했다. 한 차례 실패도 있었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김병건표’ 가방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 그는 “창업은 정보기술(IT) 벤처에나 있는 일쯤으로 생각했다”며 “그러나 내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에도 기회가 숨어 있었다”고 말했다.



 창업의 문은 이처럼 누구에게나 360도 열려 있다. 모임 중계 회사인 온오프믹스의 양준철(28) 대표는 고등학생이던 16세 때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는 사업에 도전했다. 18세 때 이미 두 번이나 사업에 실패하면서 2000만원의 빚을 지기도 했다. 양 대표는 “한 번 망하면 재기하는 데 2~3년은 걸릴 것까지 감안해 10대에 창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런 그는 “내 인생을 스스로 주도적으로 살고자 하는 게 바로 기업가 정신”이라고 강조했다.



 대안적 창업의 공간도 넓어졌다. 5명 이상이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지 한 달 만에 조합 설립신고나 인가신청은 130건에 달했다. 대리운전 기사들이 모여 기업을 만들고, 이주 노동자 급식소는 인력 중개·교육업을 해보겠다고 신고서를 냈다. FC바르셀로나, 세계 최대 보험회사 알리안츠, 미국 통신사 AP통신이 다 협동조합이다. 그러나 대다수 한국의 청년은 여전히 도전을 주저한다.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지난해 9월)에 따르면 대졸 청년 구직자 1002명 중 창업을 꿈꾸는 이는 4.9%에 불과했다. 공기업·대기업만 쳐다보는 이가 절반(48.6%)에 달한다. 베스트케이스시나리오를 갓 창업한 김대현(25) 대표는 “통관을 직접 해보고, 박스를 사러 서울 을지로 방산시장을 다니면서 책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운다”며 “지금의 도전이 바로 내 스펙이자 경쟁력인 셈”이라고 말했다.



 창업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물론 쉽게 성공을 허락하지는 않는다. 열정과 함께 냉정이 필요한 창업의 두 얼굴이다. 프로자이너의 김영한(43) 대표는 “정말 내가 열정이 있는지, 아이디어는 시장성이 있는지를 굶어가며 (투자 없이) 검증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한 어학교육 솔루션 업계에서 그의 회사는 15년째 건재하다. 교육 컨설팅 사업가인 허지원(31) 이비엔 대표도 “반짝이는 아이디어보다 실행력과 위기 관리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모두가 ‘창업국가’의 주주



김병건 윌씨 대표가 서울 신당동 본사 쇼룸에서 자신이 디자인한 가방을 들어 보이고 있다.
 지하자원은 없지만 지식 자원은 세계 다섯 손가락에 드는 나라, 이스라엘이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 30개를 계열사로 둔 RAD라는 그룹도 있다. ‘벤처 재벌’인 셈이다. 이스라엘 성공의 토대에는 ‘후츠파(Chutzpah)’ 정신이 있다. 학교나 사회에서도 뻔뻔함에 가까운 대담함을 가장 높이 산다.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사고의 밑바탕이 되는 ‘이스라엘 스타일’이다.



  겁 없이 자기 사업에 뛰어드는 이 나라의 창업 정신은 교육과 재교육, 멘토와 멘티 문화가 한데 어우러져 ‘만들어진’ 것이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고 이스라엘처럼 대담하게 나서도록 하려면 창업 인프라(노하우·정보·멘토)의 공유가 필요하다. 실마리는 있다. 에어컨 생산업체였던 아피스는 주력 상품을 경쟁이 치열한 에어컨에서 온수 보일러로 바꾸고, 농업단지 찜찔방 등의 틈새 시장을 공략했다. 이 덕에 지난해 주력 상품 매출이 50% 늘었다. 지난해 3월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 경영자문단의 도움을 받으면서 시작된 변화다. 이달주 아피스 대표는 “진작 조언을 받았더라면 시행착오를 많이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상의의 중소기업 자문 사업은 2009년 시작돼 지난해 1100건의 자문을 했다. ‘창업 두레’이자 ‘경영 두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중소기업에 경영진단을 해준다. 앞으로 1인 창업에 나서는 젊은이들에게도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틀을 만드는 것이 숙제다.



 돈이 돌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유튜브 뒤에는 ‘페이팔 마피아’가 있다. 유튜브의 종잣돈은 전자상거래 대행 사이트인 페이팔을 팔아 2조원의 자금을 쥔 선배 창업자에게서 나왔다. 미국에선 또 지분을 벤처캐피털이나 대기업에 팔아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경우가 나스닥 상장을 통하는 경우보다 다섯 배나 많다.



 그러나 한국의 초기 창업투자(에인절 펀드)는 2000년 5000억원 규모에서 지난해 300억원대로 줄었다. 코스닥 상장까지는 보통 12년이 걸리는데 이를 기다려줄 투자자가 거의 없어서다. 김일환 스톤브릿지캐피탈 대표는 “우리나라에서도 에인절 펀드가 창업 후 3~5년 만에 인수합병(M&A)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창업과 재창업의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실패도 국부(國富)다



 핫탑 보온받침대를 제조하는 더오디의 이원배(47) 대표는 지난해 2월 자기 이름이 쓰인 신용카드를 다시 손에 쥐었다. 2005년 부도를 낸 뒤 7년 만의 일이다. 그는 원청업체인 대기업만 믿고 생산설비를 갖췄다가 주문도 받지 못하고 4억원의 빚만 졌다. 실패자라는 ‘주홍글씨’가 박힌 그에게 재기는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부도로 대출과 지원의 길이 꽉 막힌 그는 이듬해 친척과 친구들에게 통사정해 5000만원을 빌려 가까스로 다시 일어섰다. 이 대표는 “2011년 초 추운 사무실에서 홀로 앉아 있자니 ‘한강으로 갈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며 “사업 실패를 인생 실패로 여기는 주변의 시선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실패 후유증을 보듬고 다시 설 수 있게 용기를 북돋는 ‘힐링(healing) 시스템’을 갖추는 것도 그래서 창업 지원 못지않게 중요하다. 실패와 좌절의 생생한 사례들이 모든 도전자들의 시행착오를 줄이는 사회적 자산으로 공유돼야 한다. 경남 통영 앞바다 죽도에선 이런 상황을 바꾸려는 ‘작은 실험’이 진행 중이다. 실패한 중소 창업인 대상의 힐링캠프다. 부산의 기업인인 전원태 MS코프 회장이 내놓은 3억원의 기금으로 2011년 만들어졌다. 그 역시 젊은 시절 부도로 좌절했지만 혼자 일어나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캠프 운영자인 한상하 재기중소기업개발원장은 “사업 실패로 자살 시도 등 막장에 몰린 이들도 맺힌 얘기를 들어주고 작은 위로만 받아도 기적처럼 용기를 되찾는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조금만 신경 쓰면 재기를 돕는 힐링 캠프를 전국 곳곳에 촘촘히 세울 수 있다”고 조언했다.



특별취재팀=김창우·김영훈·박혜민·양성희·심서현·이지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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