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죽음에 임해서도 마술피리 아리아 노래한 모차르트

중앙일보 2012.12.28 04:00 11면 지면보기
김근식
고전음악감상실 더클래식 대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의 죽음을 당시 그의 경쟁자이자 열등의식을 가진 궁정음악가 살리에리에 의한 간접 살인임을 암시하고 있으나 이는 사실과는 다르다. 그가 참여했던 ‘프리메이슨’이라는 결사단체에 의한 암살설 또한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 모차르트의 사인과 관련한 주장과 설들은 모두 150가지가 넘는다.



베토벤이 나폴레옹의 등장에 기대하며 교향곡 제3번 ‘영웅’의 악보 표지에 ‘보나파르트’라고 썼다가 곡이 완성될 무렵 그에게 실망해 표지를 찢어버리고 제2악장에 나폴레옹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송 행진곡’을 삽입했다거나 피아노협주곡 제5번 ‘황제’를 작곡하면서 “그는 군대로 싸우지만 나는 음악으로 그에게 맞서겠다”고 얘기했던 일화에서처럼 음악가들의 삶도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생전에 아버지에게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편지를 보내 비교적 상세히 알려져 있는 모차르트가 남긴 편지들을 분석하면 비교적 정치와는 거리를 둔 삶을 살았으나 당시 공연이 금지됐던 보마르세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을 오페라로 각색해 무대에 올리는 용기에서 보듯이 그의 정치적 이념과는 무관하게 ‘자유인’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저항적 기질이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신전이 그가 가입했던 저항단체인 ‘프리메이슨’의 모델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프리메이슨은 ‘군주라 해도 다른 인간보다 결코 탁월하지 않다.’는 평등주의 이념을 주창했던 단체다. “그 때, 이 세상은 천국이 되고 죽어야 할 인간도 신과 같이 되리라.” 마술피리의 제1막과 제2막의 마지막에 각각 한 번씩 되풀이되는 이 아리아는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사상과도 통한다. 이전의 작품과는 달리 당시 귀족들이 좋아했던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로 쓰여진 마술피리는 처음부터 서민층을 관객으로 예상했다는 점에서도 모차르트의 비정치적 삶 속에서 발견되는 잠재적 정치성을 우회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791년 12월 5일.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죽었을 때 하이든은 “앞으로 백 년간 세상은 이 같은 재능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고 기록했다. 유명한 음악학자 아인슈타인은 모차르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지상에서는 단지 손님에 지나지 않았다.”



만년에 그가 겪었던 경제적 궁핍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비참한 것은 아니었다고는 하나 그의 시신은 빈민들이 묻히는 공동묘지에 관조차 없이 자루째 던져져 지금도 시신이 없는 묘지만 남아 있다. 어쩌면 모차르트는 오페라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파파게노에게 자신의 모습을 담으려 했는지 모른다. ‘나는야 새잡이’와 ‘연인이나 아내가 있다면’ 같은 파파게노의 익살맞고 인간미 가득한 아리아. 모차르트는 숨을 거두기 전에 그 노래를 부르며 죽었다고 한다. 죽음에 임박해서도 자신의 작품 속 아리아를 흥얼거릴 수 있었던 모차르트. 그에게 존경과 찬사를 보낸다.



김근식 고전음악감상실 더클래식 대표 http://cafe.daum.net/theClassic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