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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시골마을 누비며 들은 향토 이야기 책으로 담았죠”

중앙일보 2012.12.28 04:00 1면 지면보기
천경석 온양고 역사교사가 아산 종곡리 느티나무 장승마을에서 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다. [조영회 기자]
교직생활 30년째인 천경석(55) 교사는 온양고등학교에서 역사를 담당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일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자신의 고장 ‘아산’에 대한 연구다. 마을의 문화재나 유명한 인사가 있는 곳이 아니더라도 발길 닫는 곳이면 어디든 간다. 그 마을의 터줏대감이나 명성이 자자한 주민을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수첩과 녹음기, 그리고 카메라 한 대는 그의 가장 중요한 준비물이다. 그간의 기록으로 발간된 아산 송악마을 사람들(1·2·3·4)과 외암마을 사람들 이야기 등 총 5권의 책은 천 교사에게 가장 큰 보물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 천경석 온양고 역사 교사



세월 지나며 변하는 마을 아쉬워



“시간이 흐르면서 변화하는 시골의 정취가 못내 아쉬웠어요. 논과 밭이 아스팔트 도로가 되기도 하고, 지역에서 오랜 시간 서 있던 나무가 잘려나가고 그 자리에 현대식 가옥이 들어서기도 했죠. 모든 것이 다 변하기 전에 제 고향의 정취를 남기고 싶었습니다.”



 천 교사는 아산 지역을 연구하는 목적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그가 펜과 수첩, 카메라를 들고 마을 곳곳을 돌기 시작한 때는 지난 1995년부터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이 아니다. 단지 그의 말대로 아산의 옛 모습이 변하고 없어지는 것이 아쉬워서였다.



 “작은 마을이지만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잖아요. 그 사연을 자세히 듣기 위해선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가 필요했죠.”



 마을을 걷다가 마주친 아낙이나 밭일을 하는 촌부, 마을회관에 모인 노인 등 마을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천 교사에게는 소중한 인터뷰 대상이었다. 낯선 사람을 경계해 입을 열지 않는 주민들도 있었다. 하지만 천 교사는 수시로 그들을 다시 찾아 설득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냥 마을 주민이죠. 하지만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마을의 역사와 유래 특징들을 더 자세히 알게 됐죠.”



천 교사가 집필한 다섯권의 책 .
오랜 노력으로 책 발간 결실 맺어



1995년부터 아산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을 만나고 마을의 유래 등을 기록해왔던 천 교사는 2004년부터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의 노력을 알아본 아산 YMCA 푸른 아산 21 등 몇몇 단체에서는 그가 책을 발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다.



 “특별히 제가 글 쓰는데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쉽게 썼죠. 그냥 마을 주민과 인터뷰하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어요. 책이 나왔을 때 한 권씩 다 나눠드렸죠. 어르신들이 자신이 책에 나온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는 모습에 저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마음 아픈 기억도 있다. 마을 내력과 사람들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던 노인 중 일부는 책이 나온 뒤 다시 방문했지만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언젠가는 사라지고, 잊혀질 것들이라고 생각하니 조급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많은 곳의 마을들을 돌아다보니 이제는 어르신들과 대화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졌어요. 제가 시골출신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세상은 너무 빠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또한 성장중심, 경쟁중심이어서 부담스럽고, 사람들이 불편한 것과 지저분한 것, 뒤떨어진 것을 너무 못 견뎌하는 하는 것들이 안타까워요. 요즘 눈으로 보면 좀 지저분하고 뒤떨어질 수도 있는데 이것들이 시골마을에서는 남아있죠. 경쟁 때문에 이것들이 모두 사라지기 전에 하나라도 더 담아두고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책을 발간할 예정이고, 그 책들 속에 아산의 모든 것이 담길 수 있도록 힘쓸 계획입니다.”



아이들 가르치는데도 큰 도움



천 교사의 이런 활동은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데도 큰 영향을 미쳤다. 교과서에 나온 내용뿐 아니라 지역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역사에 관심이 없던 일부 아이들도 천 교사의 수업에 호응을 갖기 시작했다.



“사실 교과서에 나온 역사만이 역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나와 우리가 살고 있는 고장의 역사도 중요하거든요. 아이들한테 ‘넌 어디 사니’묻고 그 고장의 역사에 대해서 얘기해주니 수업에 더욱 재미를 느끼더군요.”



또한 아산 지역을 돌면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준 적도 있다.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의 ‘삶’이 바로 그것이다.



“아산의 주요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이순신 장군입니다. 학생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죠. 하지만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은 어떻게 살았는지 아는 아이들은 없었어요. 이순신 장군의 후손들은 계속 아산에 남아 각계각층에서 활약했어요. 특히 일제시대에는 독립운동을 펼치기도 했죠. 조사해본 결과 아산의 독립운동가 기록에도 남아있었어요.”



천 교사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아산의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다. 현재 몇몇 단체에서 아산 향토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고 있지만 천 교사처럼 마을을 돌며 주민을 만나고 마을만의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이들은 없다.



“혼자라고 생각하면 외로워요. 제자들 중에서나 역사학자들 중에서 아산 역사를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글=조영민 기자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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