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뻥 뚫린 야구공, 콕 박힌 축구공…'장관이네'

중앙일보 2012.12.28 02:50 Week& 2면 지면보기



해돋이가 아름다운 동해안 등대 명소
젖병등대·야구등대·월드컵등대 … 생긴 건 요래도 진짜 등대랍니다















































동해안으로 등대 여행을 떠난 건 해맞이 여행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해보다 더 자주 마주한 건 동해안에 깃든 우리네 삶이었다. 강원도 동해 묵호항에서 등대는 묵호항 어부의 삶 자체였고, 울산 간절곶, 경북 포항 호미곶 등대에는 일제강점기의 굴곡진 역사가 배어 있었다. 등대의 파격을 선언한 부산 기장의 이색 등대도 저마다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동해안 등대 여행을 떠났지만 등대‘만’의 여행은 아니었다.



글=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항구의 삶 깃든 동해 묵호등대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에는 등대마을이 있다. 묵호등대를 중심으로 어민들이 오밀조밀 살아가는 묵호진동 산동네다. 묵호등대는 1963년 첫 불을 밝혔다. 산동네 주민이 바닷가 모래·자갈을 등짐으로 져 날랐다. 품삯으로 밀가루 배급권을 받았다.



 “등대로 온 동네가 배를 불린 턱이지.”



 등대 앞 구멍가게 ‘종점매점’의 손만택(74) 사장이 회상했다. 태백 도계 석탄이 죄 묵호항에 모이던 시절이었다. 석탄 가루로 먹빛이 된 바다에선 오징어도 많이 잡혔다. 하룻밤 오징어 배 벌이가 공무원 월급보다 나았다. 4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석탄 산업이 저물고 묵호 바다에 고기가 줄면서 산동네엔 하나둘씩 빈집이 늘었다. 하지만 묵호 어민이 살아온 흔적도 지워진 건 아니었다. 등대 불에 의지해 새벽 바다를 누벼온 어민의 삶 하나하나가 이태 전부터 산동네 비탈길(논골길)에 벽화로 그려졌다. 논골길에 이야기를 입혔다고 해서 ‘논골담(談)길’이다.



 40년 전 문을 닫은 논골3길 구멍가게는 허물어진 옛 담장 위에 벽화로 부활했다. 논골1길 어느 담벼락은 등대가 가득 채우고 있다. 한평생 등대 불에 의지하다 퇴역했다는 한 선장이 등대 그림을 크게 그려달라고 특별히 부탁했기 때문이다. 바다로 일 나간 아버지가 무사히 돌아오시라고 뒷간 ‘쓰레빠(슬리퍼)’까지 신발 코를 죄다 집 쪽으로 돌려놓던 미신도 그림 속에서 되살아났다. 묵호항에서 묵호등대로 오르는 논골담길 3코스(논골1길·논골3길·등대오름길)는 벽화마다 사연이 파란만장하다.



 ●여행정보=동해문화원(mukho.org)에 신청하면 논골담길 해설을 들을 수 있다. 033-531-3298. 묵호등대에는 전망대도 설치돼 있다. 새해 첫날 일출시각에 앞서 등대 문을 연다. 033-531-3258. 묵호는 지금 알이 꽉 찬 도루묵이 제철이다. ‘동남회집’ 도루묵찌개 2만~3만원. 곰치국도 겨울이 제 맛이다. 맑은 곰치국 1만원. 033-532-8204. ‘칠형제곰치국’은 묵은 김치를 넣어 국물이 얼큰하다. 1만2000원. 033-533-1544.





‘등대 도시’ 부산의 이색 등대들



2009년 부산시가 ‘등대의 도시’를 선언했다. 이후로 등대는 부산에서 색다른 관광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기장군 대변항 일대다.



대변항에 들어서니 4㎞ 남짓한 해안선을 따라 낯선 모습의 등대 5기가 방파제마다 서 있었다. 가장 오래된 건 2003년 세운 ‘월드컵 기념 등대’였다. 2002년 월드컵 4강 진출을 기념해 월드컵 공인구를 등대 기둥에 박아 넣었다. 월드컵 기념 등대가 인기를 끌자 뒤이어 장승 모양의 등대가 들어섰다. 앙증맞은 ‘젖병등대’에는 2009년 전국 출산율 꼴찌였던 부산에 아기가 많이 태어나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등대 위로 걸어 오를 수 있는 ‘계단등대’에는 연인들이 남기고 간 사랑의 자물쇠가 빼곡했다.



 대변항에서 자동차로 20분쯤 떨어진 칠암항에는 야구 등대가 있다. 글러브·배트·야구공 모양으로 차례로 늘어선 ‘야구등대’는 붉은 원형 띠에 갈매기를 매단 등대와 마주보고 있다. 칠암항이 소재한 ‘일광(日光)면’과 부산 사직구장의 야구 응원곡 ‘부산갈매기’를 형상화한 ‘갈매기등대’다.



 생긴 건 제멋대로인 듯해도 부산의 이색 등대는 항로표지법을 준수하는 실제 등대다. 배가 항구로 들어올 때 오른쪽 방파제엔 빨간 등대, 왼쪽엔 흰색 등대가 서 있다. 노란 등대는 위험구역을 뜻한다. 등대마다 빛을 깜빡이는 주기도 다르다. “등대 덕에 손님도 늘고 뱃길도 더 편해졌어예.” 칠암항 한보용(68) 어촌계장이 함박웃음을 지었다.



 ●여행정보=부산의 이색 등대는 기장군 대변항과 칠암항 주위에 모여 있다. 드라이브 여행으로 권한다. 부산의 가덕도등대에서 1박2일 숙박체험이 가능하다. 부산지방해양항만청 홈페이지(portbusan.go.kr)에 신청하면 된다. 051-971-9710. 기장은 칠암항 장어로 유명하다. ‘칠암1번지횟집’이 인기가 많다고 한다. 장어회·구이 3만5000~7만원. 051-727-5454.





울산 간절곶등대 VS 포항 호미곶등대





울산 간절곶은 한반도 육지에서 가장 빨리 해가 뜨는 해맞이 명당이다. 간절곶에서 2013년 첫 태양은 오전 7시31분29초에 떠오른다.



 간절곶의 명물은 5m 높이의 소망 우체통이다. 우체통 안에 있는 엽서에 소망을 적으면 원하는 사람에게 배달을 해준다. 엽서에 적힌 사연 중 일부는 매주 울산 MBC라디오에서 소개되는데, 요즘엔 새해 염원을 담은 내용이 부쩍 늘었단다. 1월 1일 태어날 아기에게 새해 인사를 전한 예비 엄마도 있었다.



 간절곶등대는 우체통 뒤 언덕 위에 솟아 있었다. 1920년 일제가 세웠지만 태평양전쟁 때 미군의 세 차례 폭격으로 무너졌다. 이후 새로 지었다. 그나마도 수차례 보수를 거쳐 옛 자취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사방이 탁 트인 등대 언덕에서 맞이하는 일출은 장쾌했다.



 포항 호미곶(虎尾串)은 한반도를 호랑이(虎)에 빗댔을 때 꼬리(尾) 부위다. 새해 일출이 간절곶보다 고작 59초 늦다. 2000년 세운 ‘상생의 손’이 아침 해를 불끈 쥐는 진풍경을 빚으면서 호미곶은 전국적인 해맞이 명소로 떠올랐다.



 지난 13일 호미곶 앞바다는 풍랑이 매서웠다. 1908년 일제가 호미곶등대를 세운 것도 수많은 일본 선박이 거친 호미곶 바다에서 좌초했기 때문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유물이긴 해도 호미곶등대는 건축적 가치가 높다. 철근도 없이 붉은 벽돌에 석회 모르타르만으로 26.4m의 등대를 쌓았다. 100년 넘게 서 있지만 등대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호미곶 새해 첫 해는 상생의 손 오른편 바다에서 뜬다.



 ●여행정보=간절곶등대와 호미곶등대 모두 1월 1일 일출시간보다 먼저 등대 문을 연다. 간절곶등대 052-239-6313, 호미곶등대 054-284-9814. 울산에 있는 간절곶등대와 울기등대가 1박2일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는데 올해는 신청이 마감됐다. 해마다 7월과 12월 울산지방해양항만청 홈페이지(ulsan.mltm.go.kr)에서 신청을 받는다. 호미곶과 가까운 구룡포는 과메기철을 맞았다. 청어·꽁치 과메기 20마리가 1만5000원부터. 곰치국을 포항에선 물곰탕(물메기탕)이라 한다. 1만원 안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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