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선악이 본래 없다’는 말을 안다. 그러나 요즘 나

중앙일보 2012.12.28 02:50 Week& 4면 지면보기
불가(佛家)에서 말하는 ‘선악이 본래 없다’는 말을 안다. 그러나 요즘 나는, 인간은 악하다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선하게 산다고 하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인가 하는 질문이 담겨 있는 생각이다. 얼마만큼 이기적인가 하는 것이 악의 척도만 같고 그 이기심을 얼마나 다스릴 수 있는지가 선의 척도만 같다. 어린 사춘기 아이에게나 어울릴 만한 질문이 쉰 살이 가까운 나이에도 밀물처럼 다가오니 인간은 아이의 질문을 해결하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주변에, 제 목구멍에 단것 넣겠다고 억지를 부리는 자가 많으니 없어도 될 질문과 싸우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의 업이겠다.


저 바다 노을 지면 그게 곧 단청이지 … 맨몸으로 선 대웅보전

시인과 떠나는 사찰 기행 ⑤ 장석남 시인의 해남 미황사

해남 달마산 중턱에 있는 미황사는 낙조가 아름답기로도 명성이 자자하다. 겨울 해가 미황사 대웅보전을 오묘한 빛으로 한껏 물들이더니 이내 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행사로 읍내는 어수선했다. 도대체 이번에는 어떤 징검돌을 선택해 디딜 것인가. 물속에 잠긴 데는 알 수 없으니 어느 돌멩이가 우리들을 제대로 건네줄 돌멩이인지 알 수 없다. 혜안을 기르는 수밖에. 나는 다 내려놓고 그저 어린아이가 되러 절에 간다. 선도 없고 악도 없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서 해남 미황사에 간다.



 논밭 사이 완만한 길을 지나 숲 속으로 들어서니 겨울 나뭇가지 사이로 길이 숨었다가 나타나곤 한다. 차가 가는 포장길인데도 이리저리, 좌로 우로 몸을 흔들면서 급하지 않게 들어서게 된다. 양쪽 숲에는 드물지 않게 동백나무가 반짝이고 있다. 겨울 숲이니 유난히 돋보인다. 아침 볕이 말하듯 반짝이는 것이다. 그것은 허공으로 이어지는 징검돌 같기도 하고 숲 속 깊은 데로 안내하는 어떤 좌표 같기도 하다. 이른 아침 시간에 잘 왔다고 생각했다. 나는 바위에 잠시 앉아 동백나무에 반짝이는 문장들을 읽어보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문장이라는 말 가지고는 그 뜻과 소리와 색깔에 한참 미달인 ‘허공과 대지의 가슴’ 같은 것이어서 눈만으로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1 미황사 대웅보전으로 가는 길을 달마대사가 맞아준다.
 미황사(美黃寺)는 땅끝 마을에 있다. 나는 말[言]을 기르고 부리는 사람이므로 그 이름이 궁금했다. 검은 돌에서 소가 나왔고 그 소가 가다가 눕는 데에 부처님 말씀을 전할 절을 세우라는 꿈을 꾸었는데 그 소 울음소리가 아름다워 ‘미(美)’자를 썼고 그 꿈을 꾼 의조화상의 꿈속 금인(金人)의 그 황금빛에서 ‘황(黃)’자를 써서 미황사가 되었다고 한다.



 이 창건 설화는 우리나라 최남단 땅끝 마을에 해로를 통해 전래한 불교의 첫 발자국을 표상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 설화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는 되뇌어 보게 된다.



 돌배가 와서 해안에 머물렀다. 사람이 가면 물러나던 배가 스님이 목욕재계하고 마을 사람들과 다가가니 비로소 해안에 닿았다. 배 안에는 금인(金人)이 노를 젓고 있었다. 그 속에는 경전들이 있었고 검은 돌이 있었다. 검은 돌에서 검은 소가 나왔고 소에게 경을 짊어지게 하여 소가 가는 길을 따라갔다. 소가 눕는 자리에 절을 세웠다. 소 울음소리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고 한다.



2 보물 947호 지정돼 있는 미황사 대웅보전. 단청이 다 빠져 허연 게, 더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무언가 마음에서 솟아나오는 것이 있다. 검은 돌에서 나온 소, 검은 돌에서 나온 소, 검은 돌에서 나온 소. 우리는 우리 속에서 무엇이 나오려나, 내 속에서 무엇이 나오려나…. 악이 나오려나, 선이 나오려나, 그것 아닌 빛이 나오려나, 동백이 나오려나. 분명한 것은 내 마음속 살림들이 나올 것이다.



 채소밭에 아욱이며 무, 갓, 상추들이 아직 싱싱하다. 내가 사는 중부 이북에서는 어림없는 일이다. 그래, 여기는 남도 끝이다. 채소를 보면 늘 반갑다. 어여쁘고 대견하다. 꽃보다 못할 것 없는 아름다움을 나는 잘 가꾼 채소밭에서 느낀다. 요사채 뒤편에도 제법 널따랗게 채소밭이 들어서 있다. 채소들을 솎아내는 손길이 보이는 듯하고 또 그것들을 솎아다가 먹이는 일의 기쁨을 넘겨다본다. 조금은 엄숙하고 속으로는 흥겨운 절집의 ‘밥 먹는 소리(절집 언어로는 공양(供養))’가 채소밭에서 곧장 들려오는 듯하다. 그것은 인간답고 정답고 거룩하다. 만인이 평등하게 가진, 버릴 수 없는, 명상의 바탕소리인지 모른다.



 “채소밭이 넓습니다.”



 “여긴 식구가 많습니다.”



3 미황사 암자 도솔암. 4 금강스님(왼쪽)과 장석남 시인이 대웅보전 배흘림기둥을 올려다 보고 있다. 5, 6 부도탑에는 거북이·게·원숭이 등 여러 생물이 조각돼 있다. 7 대웅전 주춧돌. 서로를 붙들고 오랜세월을 견뎌낸 나무와 돌이 원래부터 한 몸인 것처럼 보인다.
 미황사 템플스테이는 유명하다. 주지 금강(金剛) 스님을 빼놓고 지금의 미황사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고들 평한다. 지금의 미황사가 있기까지는 금강 스님의 아름다운 글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에 흥겹게 펼쳐져 있다. 우리나라 템플스테이의 가장 모범적인 전형을 제시하고 성공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곳이 미황사다. 절과 마을의 아름다운 공존을 이야기하고 수행 공동체를 꿈꾸며 산사의 일상에서 찾는 진정한 쉼과 치유의 방향을 제시한 분이다.



 “여긴 삼보일배 같은 건 안 하나요?”



 “안 합니다. 산사 체험을 했다는 말은 들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건 자기 것이 되진 않습니다. 비싼 명상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그건 자기의 또 다른 욕망을 채운 것일 뿐입니다. 여기는 우선 온전히 자기를 쉬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간 단계의 수행으로 스스로 이끌도록 합니다. 최종적으로는 부처님 시대와 같은 아름다운 수행 공동체를 꿈꿉니다.”



 대웅보전은 촉루(살이 전부 썩은 죽은 사람의 머리뼈)와 같이 비바람에 깨끗하게 씻긴 흰빛을 띠고 있다. 그 흰빛이 바다를, 난바다를 반사하는 듯하다. 달마산 중턱에 날아갈 듯 앉았다. 두 처마 선이 헌걸스럽게(풍채가 좋고 의기가 당당한 듯하다는 뜻의 우리말) 양팔을 펼쳤고 그 어깨와 용마루 위로 달마산 암봉들이 올라앉아 있다. 저녁이면 찬란한 황혼이 이 대웅전 기둥에 부처님의 말씀을 금빛으로 새겨놓을 것이다.



 이 대웅보전을 지은 재목들은 먼 보길도에서 바다를 건너온 것이라고 한다. 그 옛날 그 먼 길을, 환희에 찬 불제자들의 신심(信心)으로 이 대웅전은 건너온 것이다. 배흘림기둥을 받치고 있는 주춧돌은 내가 본 주춧돌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연꽃 문양의 돋을새김 가장자리에 게와 거북이 올라서 있다. 어여쁘고 한편 마음이 아리다. 마치 구제받은 중생의 상징과도 같다. 이 마을이 반도의 땅끝 바닷가라는 것을 실감케 하지만 또한 어쩌면 자신의 일이 지루했을지도 모를 그 석공의 마음 풍경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천천히 돌아 들어가니 요사채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새어나온다. 살림의 소리가 정답고 반갑다. 자연석을 맞춰 아름답게 수놓은 계단들을 올라가니 응진전(應眞殿)인데 그 앞에 수국들이 시들어 있다. 대나무 빗자루 하나 담 옆에 세워져 있다. 저것으로 어디 마당만 쓸랴!



 나는 그 곁에 앉았다. 그리고 먼바다 쪽을 내려다보았다. 인간은 악한가? 인간은 선한가? 시들어버린 수국처럼 그 무겁고 어리석은 질문을 내려놓고 싶었다. 나는 깜빡, 대웅전 주춧돌에 올라선 그 게의 다리 하나를 붙잡고 더불어 빙글빙글 춤추며 절 마당을 도는 꿈을 꾸었다.



 글=장석남(시인),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