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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 8년 애증' 진영, 친박→탈박→복박 결국…

중앙일보 2012.12.28 01:12 종합 3면 지면보기
진영 인수위원회 부위원장(왼쪽)과 김상민 청년특별위원장이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기자실로 걸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발표된 대통령직 인수위원장단 인선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사람은 부위원장을 맡게 된 새누리당 진영 정책위의장이다. 박 당선인과 애증의 관계로 얽혀 있으면서도 끝내 박 당선인의 부름을 받은 거의 유일한 인사이기 때문이다. 당내에선 그를 ‘박근혜의 비서실장’에서 ‘무늬만 친박(親朴)’을 거쳐 ‘탈박(脫朴)’ 후 다시 ‘복박(復朴)’이 된 사람이라 부를 정도다.

비서실장 → 무늬만 친박 → 탈박 → 복박 … 결국 박심 된 진영



 두 사람의 인연은 2004년 4월 총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거가 끝난 뒤 진 부위원장은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로부터 대표 비서실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선거 기간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용산에서 유세할 때 두 번 정도 박 당선인의 얼굴을 본 게 전부였던 그는 처음에는 의아해했다고 한다. 부위원장 임명 하루 전인 26일 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아직도 왜 나를 비서실장을 시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그 인연을 계기로 박 당선인과 가까워졌다. 박 당선인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 진 부위원장과 상의할 만큼 신임이 두터웠다는 평판을 얻었다. 이른바 ‘친박(박근혜계)’이 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박 당선인의 정치적 생명이 걸린 두 번의 고비에서 박 당선인과는 다른 길을 갔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가 그 첫 번째다. 당시 그는 이명박 후보가 아닌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지만 경선 캠프엔 참여하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대선 캠프에서 뛰는 방식에 반대한다”는 자신의 소신 때문이었다. 그러자 박근혜계에선 “무늬만 친박”이라며 그를 몰아붙였다. 경선 직후 그가 캠프 사무실에 들르자 “진 의원이 여기 웬일이에요?”라는 말을 들었을 정도라고 한다.



 2008년 7·3 전당대회에 출마했지만 박근혜계가 비난하자 그는 결국 중도포기를 택했다.



 그러다 2010년 6월 세종시 수정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부쳐졌고 그는 찬성표를 던졌다. 이명박 대통령과 대립하며 정치적 생명까지 위협받던 박 당선인이 직접 반대 토론자로 나온 상황에서였다. 박 당선인과 두 번째 엇갈린 장면이었다.



 이후 그는 사실상 ‘탈박’이 됐다. 지난해에는 “박근혜 전 대표를 둘러싼 폐쇄적 벽이 너무 두터워 개인적으로 불편함을 느꼈다”고 박근혜계를 비판했다.



 한때 그는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터운 이재오 의원과 가까이 지냈고 이명박계 의원들과도 거리를 좁혔다. 이렇게 친박과 친이 사이를 넘나들면서도 한번도 박 당선인을 비판하거나 공격한 적이 없다. 평소 사석에서도 “계파를 떠난 것이지 박 전 대표를 떠난 것이 아니다”라고 했었다.



 진 부위원장에 대한 박 당선인의 신임이 재확인된 건 지난 5월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 당시 진 부위원장은 이한구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나섰다. 당시 당내에선 ‘박심(朴心)’이 이주영 의원에게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있었지만 박 당선인은 경선 하루 전날 진 부위원장의 지역구인 용산 노인복지관을 찾아 배식봉사를 했고 결국 그는 정책위의장이 됐다. ‘다시 박근혜계’로 돌아온 ‘복박’이 되는 순간이었다.



당 정책위의장직도 겸임할 진 부위원장은 27일 “다시 무거운 책임을 맡게 돼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다. 국민께 드린 민생과 관련된 모든 약속을 철저히, 또 빠르게 실천할 수 있도록 박근혜 정부를 준비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김용준 “당선인 약속 지킬 수 있도록 보좌”=인수위원장에 임명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은 “너무 큰 욕심을 갖고 일을 벌일 게 아니라 대통령직이 원활하게 인수되게 여러 인수위원과 논의해 (인수위) 권한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선인이 선거기간 중 지키겠다고 한 민생 대통령, 약속 대통령, 대통합 대통령 등 세 가지 약속과 공약을 지킬 수 있도록 보좌할 것”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은 장애인으론 처음 헌법재판소장이 된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세 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를 저는 지체장애(2급)를 갖고 있다. 어머니 등에 업혀 등교할 정도로 몸이 불편했지만 서울고 2학년 재학 중 검정고시를 쳐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대학 3학년 때 최연소(19세)이자 수석으로 사법시험(9회)에 합격했다. 이후 판사의 길을 걸어 제2대 헌법재판소장(1994~2000년)을 지냈다. 63년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를 반대하는 글을 썼다가 구속된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을 구속적부심에서 석방하는 소신 판결로 유명하다.



허진·손국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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