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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칼럼] 김정은 닮은 아베 총리

중앙일보 2012.12.28 00:53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김정은과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사상의 좌표에서는 극과 극이지만 지독히 닮은 데가 있다. 두 사람 모두 완고한 내재적 논리로 중요한 정책을 결정한다. 국제여론이나 이웃 나라와의 관계보다는 국내 정치의 필요에 따라 한 사람은 미사일을 쏘고 또 한 사람은 보수·우익의 주장에 영합하는 정책을 강행한다. 그렇게 해서 김정은은 북한을 더욱 고립으로 몰고, 아베는 잃어버린 10년으로 상징되는 쇠잔한 경제와 국가 위상을 회복할 힘과 기회를 소진하고 있다.



 지난주 아베는 박근혜 당선인에게 특사를 보내려다 실패했다. 박 당선인 측과는 사전 협의 없이 언론에 발표부터 했다가 총리 취임 후 일정을 다시 잡고 자민당 총재가 아니라 일본 총리의 친서를 가지고 가는 게 정도라는 서울과 도쿄의 여러 채널의 건의에 따라 특사 파견을 연기한 것이다. 아베 내각의 얼굴들을 보면 아베의 특사 파견 타진에 우리 측에서 신중하게 대응한 것이 백 번 잘했다. 아베 내각에는 독도와 위안부와 역사교과서 문제에서 극렬한 극우 성향의 정치인들이 들어 있다. 아베를 긍정하는 일본 학자들은 그가 현실주의자(Realist)와 이데올로그(특정이념의 신봉자)의 두 얼굴을 가진 정치인이고, 총리 아베는 이데올로그보다는 현실주의자의 얼굴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아베의 내각 인선은 그런 낙관론에 찬물을 끼얹었다.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에서 아베 총리의 내각이 내부지향적 국가가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고 시선을 안으로만 돌려 대중영합적인 민족주의로 나간다면 일본과 함께 세계가 불행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아베에게는 외부의 선의의 충고는 마이동풍이다. 그건 김정은이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 북한에 대한 제재가 강화돼 북한은 더욱 고립되고 이미 한계에 이른 북한 백성들의 생활은 더욱 궁핍해질 것이라는 경고가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을 막을 수 없었던 것과 같다.



 아베는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식에 오고 싶다. 특사를 보내는 것도 아베의 취임식 참석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다. 아베의 취임식 참석을 계기로 박·아베 정상회담이 열려 한·일 간의 3대 현안인 독도, 위안부, 역사교과서 문제를 논의하면서 이명박 정부에서 파국 직전까지 간 한·일 관계 복원의 기본 궤도를 까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한국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3대 현안 해결의 하한선을 못 박는 것이 중요하다. 독도는 한·일 간 현안이 아니다. 역사 왜곡은 더 넓은 장기적인 문제다.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시급한 것은 위안부 문제다.



 노다 정부는 지난 4월 한국에 밀사를 보내 위안부 문제 해결안을 내어놓았다. (1)이명박·노다 회담에서 노다가 위안부 문제에 사과하고 (2)일본 정부가 위안부들에 대한 위로금을 지급하고 (3)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들을 만나 위로의 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 정부는 노다의 제안을 거절했다. 거기에는 법적 책임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법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위안부 동원이 일본 정부 작품임을 인정·사과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여성성과 인간성을 말살당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간적 존엄을 조금이라고 회복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위로가 아니라 반인류적 범죄행위에 대한 진정한 사죄다. 일본이 해결을 미루는 사이에 위안부 문제는 세계보편적인 전시 여성의 성노예(Sex slave) 문제로 변질·격상되어 일본이 궁지에 몰렸다.



 역설적으로 일본에서 한·일 간 3대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아베 신조다. 그가 보수·우익의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1972년 미국 보수의 대명사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극적으로 중국을 방문해 미·중 관계뿐 아니라 국제정치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선례가 있다. 한·일 새 지도자들은 계속 대화를 해야 한다. 김정은이 미사일을 쏘아도 결국은 남북, 북·미 대화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군사적 존재감을 키우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높은 시기에 한·일 안보협력은 필수적이다. 그래서 미국도 한·일 관계를 개선하라고 일본 등을 떠밀고 있다.



 7월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군대를 가진 보통국가가 되기 위한 개헌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다. 일본이 국방군이라는 이름의 정규군을 갖는 것이 곧 군국주의를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일본의 개헌과 군대 보유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를 갖고 우리에게 유리한 세계여론을 업고 공식·비공식의 유연하고 여유로운 외교로 법적 책임이 따르는 위안부 문제 해결을 끌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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