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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특허침해소송 이길 확률 20%인 나라

중앙일보 2012.12.28 00:25 경제 10면 지면보기
정성준
아이피스타 대표변리사
변리사가 된 후 몇 가지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내가 생각한 기막힌 아이디어가 대부분 누군가에 의해 이미 특허출원이 됐다는 사실에 놀랐고,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아이디어도 특허등록이 된다는 사실에 또 놀랐다. 더 놀란 것은 한국의 특허침해소송에서 특허권자가 승소하기가 쉽지 않고, 이에 따라 기업인들이 특허제도를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특허무효심판에서 특허권 무효 확률은 70%에 육박하는 반면, 특허권자가 승소할 확률은 20%에 불과하다.



 실제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의 국내 중견기업 중 상당수는 경쟁사로부터 단 한 번도 특허침해 경고장을 받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종종 경영자들로부터 “특허출원은 도대체 왜 하는 것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다. 사실 이는 한국이 특허권의 중요성을 애써 무시한 영향도 있다. 한국은 국가 주도로 경제개발을 추진했고 해외의 우수 기술을 도입해 산업구조를 선진형으로 변모시켰다. 이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특허권을 강력하게 보호했다면 어땠을까. 해외에서 도입한 기술에 대해 국내 기업들은 더 많은 사용료를 지불했을 것이고 어떤 기술은 도입조차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특허는 기술 진보와 제품 혁신의 원동력이다. 특허를 부정하고 침해하는 것은 기업의 기술개발 의지를 꺾고 나아가 산업발전을 저해한다. 특허권을 경시하는 태도는 특허침해소송 곳곳에서 확인된다. 그중 하나가 특허 침해자에게 물리는 평균 손해배상액이 5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배상금액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다. 특허권이 무효로 확정되면 특허권자는 소송의 상대방에게 오히려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점, 특허소송의 기간이 길다는 점도 특허권 보호에 소홀한 환경으로 꼽힌다. 결국 피해자의 정당한 소송 제기조차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



 시대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지 9개월이 지났다. 세계에서 특허권자를 가장 강하게 보호하는 나라가 미국이다. 동일한 아이디어에 대해 미국 특허권과 한국 특허권이 존재하는데, 특허권자가 미국에서 승소하고, 한국에서는 패소한다면 어떨까. 미국은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한국의 특허제도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미 국내 특허권 존속 기간 연장제도는 변경됐다. 특허제도만 변경되는 것이 아니다. 유럽의 요구에 따라 디자인보호법, 상표법 및 저작권법도 변경되고 있다.



 해외 기업의 특허 공세뿐만 아니라 국내 기업 간 특허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기업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상호가 겹치는 영역이 늘어났고, 이들 간 특허분쟁이 발생하고 있다. 특허권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정비가 절실해졌다. 국내 기업의 특허 역량을 강화시켜 해외 기업들의 특허 공세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정 성 준 아이피스타 대표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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