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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구나무 해칠라, 고이 고쳐 쓰는 집 … 한복처럼 헐렁하고 편안하네요

중앙일보 2012.12.21 04:40 Week& 11면 지면보기
한복 디자이너 김영진이 서울 한남동 집 2층 거실에서 고양이 ‘춘희’를 안고 있다. 얇은 소창을 주름 잡아 만든 커튼이 햇살을 창호지처럼 은은하게 걸러준다. 앤티크 유리등과 낡은 가구들이 침착하게 어울리는 공간이다



김서령의 이야기가 있는 집 (18) 한복디자이너 김영진의 한남동 집

처음 ‘김영진 한복’을 본 것은 이 난에 소개한 적 있는 경기도 남양주 ‘잔서완석루(殘書頑石樓)’에서였다. 집주인 송승훈 부부의 혼례식 사진 속 한복이 너무 아름다워 옷 지은 사람 이름을 기억해 두었다. 디자이너 김영진(41). 그가 살고 있는 서울 한남동 2층 양옥집은 그의 한복 브랜드 ‘차이’의 작업 공간이기도 했다.



1 김영진이 만든 저고리. 그는 일제시대로 단절된 전통 한복의 맥을 현대인의 일상생활 안으로 연결하고 싶어 한다. 적어도 혼례만이라도 드레스 아닌 한복을 입고 치르게 되기를 꿈꾼다.
 집을 구경하는 게 목적이지만 옷 만드는 사람이니 한복 이야기부터! “한복은 왜 예식장에서 안 예쁠까란 의문을 먼저 가졌어요. 옷이란 때와 장소에 맞아야 아름다운데 서양 공간과 우리 옷이 퉁그러져서 조화가 깨지더라고요. 원인이 소재와 라인에 있다는 걸 알게 됐지요. 레이스로 한복을 지어보자 싶었어요. 소재를 다양하게 써봤더니 이미지가 전혀 달라지더라고요.”



  간단한 듯 말하지만 매사 그렇듯 새로운 발견에 이르는 건 결코 쉽지가 않다. 김영진 한복은 전통적인 한복 소재가 아니다. 레이스·시스루 소재·자가드 실크·순면 프린트·모피 등. 전에는 한복에 연관조차 짓지 않던 소재들로 한복을 만들기 시작했다. 한복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전문가들이 동의하듯 색상, 배색, 저고리의 형태가 50%를 결정하고 원단 종류, 길이, 치마 라인으로 만들어지는 실루엣이 나머지 50%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그 각각의 요소들에 김영진식 파격이 더해졌다. 김영진 한복이 알려진 건 뉴욕 한국인들에게 먼저였다. 한국인 아이덴티티를 보여주면서 세련되고 현대적인 옷, 그런 바람이 김영진의 한복 속에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차이’ 옷의 가장 큰 특징은 소재와 선이다. 소재의 영역을 전 세계, 모든 고급 소재로 확장한 건 그렇다 치고 치마라인을 일반적 A라인이 아닌 항아리 라인으로 바꿨다. “그게 전통복식에 더 가까운 모습이거든요.” 혼인복은 가운데가 풍성하게 부풀도록 단속곳과 무지기치마를 입는 전통을 따른다. “속옷으로 상주에서 짠 생초 명주로 만든 단속곳을 반드시 입혀요. 속치마와 바지가 한데 달린 것을 특별히 고안해 만들었죠. ”



 옷 이야긴 이제 그만. 미를 보는 안목은 함께 간다. 옷 보는 눈 따로 있고, 집 보는 눈 따로 있어 그게 들쭉날쭉 할 리 없다. 한남동 골목 안 집은 지은 지 30년이 썩 넘은 자그마한 뜰을 가진 단독주택이다. 한복 짓는 사람이 살기에 딱 어울리는 집이다. 우선 대문 곁에 늙은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살구꽃이 피고 살구가 연다. 내가 맛있게 먹은, 커피 곁에 견과류를 넣은 빵과 함께 딸려 나온 살구잼이 바로 그 나무가 지난여름 키워낸 살구였다고 한다. 이야기가 있는 집은 이렇게 마당에서 딴 과일로 겨울양식을 만들 수 있을 때 시작된다. 우린 이런 익숙하고 자연스러운 습속들과 너무 많이 멀어져 버려 따로 전문가에게 힐링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돼가는 것 같다. 눈앞에 과일나무 한 그루만 길러도 꽃 피고 열매 맺고 제 열매에 천천히 단맛을 들이는 그놈이 우리 마음을 상당 부분 치유해 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2 뜰에서 바라본 집 전체 모습. 지은 지 30년 넘은 집을 수리해 살면서 거실 앞엔 길쭉한 수조를 뒀다. 3 1층 거실. 정경심의 밥상 그림, 김정옥의 북어. 성석진의 달항아리가 놓여 있다. 4 창에 횟대보를 걸어둔 ‘글래스 룸’. 5 작은 방의 빛 고운 벽지. 벽에 걸어놓은 병풍은 황학동에서 건진 것이다.


  김영진은 그 살구나무를 해치기 싫어 집을 새로 짓는 것도 포기했다. “허물면 큰 차가 들어와야 하고 그러려면 저 나무를 베어내야 한대요. 그냥 수리해서 살자고 남편과 합의했지요.” 자신의 정체성을 ‘멋쟁이’로 규정하고 싶어하는 케케묵지 않은 전통을 원하는 젊은 친구들이 김영진 한복을 사랑하는 이유가 이런 부분에 있을 것 같다. 집은 헐렁하고 편안했다. 작업실과 갤러리와 학습장과 살림집이 섞여 있다고 할까. 1층은 공적 공간이고 2층은 사적 공간으로 나누긴 했지만 서로 들락날락한다. 부엌은 아래층, 침실은 위층에 뒀고 청주에서 가끔 오시는 시어머니를 위해 작은 방 하나를 비워뒀다. 낡은 것과 새것이 적절히 섞인 공간은 생각의 지평을 확장한다. 창에 커튼 대신 걸어놓은 ‘sweet home’이란 십자수가 놓인 횟대보나 부모님의 혼례식 사진 같은 것들이 집에 즐거움과 깊이를 준다. 한때 갤러리를 운영한 적도 있어 집엔 유난히 그림과 도예작품이 많다. “이건 제가 특별히 좋아하는 화가 정경심의 작품이에요. 가족과 밥상이 주 테마지만 밝지도 가볍지도 않지요. 화면에 등장하는 빛깔이나 문양이 제 작업을 자극하고 아이디어를 주지요.”



 이 테이블 매트는 도예가 김지영의 것, 곁에 놓인 컵은 일본인 수미 리오코, 저 그림은 화가 국대호, 저 사진은 사진가 박명래, 이 빨간 북어는 김정옥 선생…. 좋아하는 작가를 김영진은 새가 지저귀듯 행복하게 호명한다. 그들의 작품을 일상 속에서 즐기지만 실은 김영진의 세간 중에는 줍거나 얻은 것이 더 많다. 황학동에서 횡재하듯 ‘득템’한 것도 꽤 된다.



  “학이 날아가는 이 자개는 문양이 무척 훌륭하지 않나요? 아는 분이 어느 아파트에 자개장이 버려져 있다고 가보래요. 당장 달려가 주워온 거예요.” 집안 이곳저곳 그런 명품 자개장이 일고여덟은 된다. 거실에서 작은 방으로 가는 좁은 복도에 걸어둔 병풍은 금분으로 쓴 글씨가 좋아 황학동에서 10만원에 건졌다. 특별한 한복을 만들어낸 그녀의 감각이 공간 또한 심플하고 따스하고 개성적으로 만들어뒀음을 확인한다.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것은 이 집에 없다. 과연 ‘차이(差異)’다. 그러나 영진이 말하는 차이란 나는 너와 달라! 란 선언이 아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자는 의미가 더 커요.” 아마도 ‘디테일의 힘’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전체 이미지를 좌우하는 건 작은 요소일 때가 많으니까.



 작업실 한쪽 면은 뜰 쪽으로 터서 널찍하게 유리 천장을 달았다. 이 글래스 룸에서 그녀는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다. 미싱과 테이블을 두어 차도 마시고 일도 하며 밖을 내다볼 때가 많다. 눈앞엔 겨울에도 푸른 대나무가 장하고 현무암 벽돌로 만든 수조엔 물 칸나도 키운다. 물이 바라보는 사람에게 여유와 안정을 선물한다는 것을 그녀는 믿고 있다.



 김영진은 한때 이윤택 선생을 따라 가마골 연희단에서 연극도 한 적이 있고 루이뷔통 남성복의 수퍼버이저 노릇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섬유에 관한 공부를 흠씬 할 기회를 얻었으나 혼인 후엔 전업주부가 됐고 정신 없이 퀼트에 빠졌던 시절을 거쳐 박선영 침선장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그 과정이 누군가가 잘 짜놓은 커리큘럼 같다고 생각할 때도 있다. 내가 ‘차이’에 간 날 입은 김영진의 윗도리는 대금형 상의라고 불리는 헐렁한 옷이다. 소재는 제 빛깔 무늬가 든 압축모직, 속엔 실크를 대서 보온성을 높였다. “출토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이건 남자 무관들이 입던 옷이래요. 대학에서 복식을 전공하지 않은 것이 되려 저를 자유롭게 만듭니다. 상상력이 제멋대로 흘러갈 수 있거든요.” 듣고 보니 김영진은 스승 운이 썩 좋다. 좋은 선생을 적절한 타이밍에 딱딱 만난다는 것은 인생이 비밀스러운 뜻인 것 같다.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선생이 패션의 엄마예요. 제게 필요한 걸 다 주셨죠. 전 그저 레이스로 한복을 만들었을 뿐인데 선생님이 보그지에 실어주셨고, 그건 저를 디자이너로서 살아가게 만드는 엄청난 에너지가 됐어요.”



 김영진이 고르는 빛깔은 특별하다. 실내에 붉은색을 자유롭고 과감하게 쓰지만 전혀 튀지 않는다. 안방 벽지는 핑크, 작은 방 벽지는 가라앉은 자주, 암체어도 큼직한 꽃무늬, 그녀가 키우는 페르시아 고양이 춘희에게 어울리는 빛깔이기도 하다. 빛에따라 음영이 달라지는 벽지를 쓸어보며 나는 이런건 어디서 구하냐고 자꾸 묻게 된다. “이건 프랑스에서 생산한 건데 ‘엘리티스’라는 브랜드예요. 이건 길드라는 디자이너 것이고….”



글=김서령 칼럼니스트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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