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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에 갇힌 사람도 구했다 물에 빠진 사람도 건졌다 ‘마징가Z’ 집배원 아저씨

중앙일보 2012.12.21 00:36 종합 21면 지면보기
전인호
지난 2월 추운 겨울의 한낮.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은 앞서 내린 눈이 쌓여 녹지 않은 상태였다. 미탄우체국 집배원 전인호(50)씨는 이날도 오토바이를 타고 집집마다 우편물을 배달하고 있었다.


전인호씨 등 19명 시민영웅상

길가에 있는 오래된 목조주택 지붕 위는 보온을 위해 스티로폼을 두텁게 올려놓아 마치 눈이 쌓인 것처럼 보였다. 찬바람과 눈, 오래된 주택까지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풍경을 그냥 스쳐 지나가던 그때였다. 방금 지나친 길에서 뜨거운 기운이 훅 느껴졌다. 오토바이를 세우고 돌아보는 순간 좀 전까지 평범하던 풍경에 붉은색이 덫칠해져 있었다. 불이 난 것이다.



목조주택의 주인 아주머니(62)가 황급히 뛰어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나무를 태워 보일러를 가동하는데 그곳에서 불이 시작된 것 같았다. 전씨는 우선 119에 신고하고는 집 마당에 쌓인 눈을 불이 난 곳에 뿌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주변을 보니 갑자기 주인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았다. 가재도구를 챙기겠다고 집 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전씨는 오토바이 헬멧을 쓴 채로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방에 들어가자 유독가스에 질식해 쓰러져 있는 아주머니가 눈에 띄었다. 전씨는 서둘러 아주머니를 들쳐 업고 밖으로 나왔다.



 키 1m57㎝에 몸무게 65㎏으로 다소 왜소한 체격의 전씨는 어디서 그런 힘이 났을까. 그는 “급한데 어떡합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11년 전 우체국에 들어가기 전까지 광산 등에서 일하면서 몸이 단련된 것 같다”고 했다. 그는 9년 전에는 장마에 불어난 물살에 떠내려갈 뻔한 성인 남성을 건져 올린 적도 있다. 전씨는 “설령 나까지 위험해지는 한이 있더라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또다시 남을 구하러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씨는 21일 한국사회복지협의회(회장 차흥봉)와 S-OIL(에쓰-오일)이 수여하는 ‘2012 올해의 시민영웅상’을 받는다. 중앙일보와 보건복지부·경찰청·KBS가 후원한다.



 전씨 외에 6월 어린아이(3)를 납치해 도로로 뛰어든 중국인을 맨몸으로 막아 낸 김현옥(42)·장태훈(47)씨와 지난 5월 격투 끝에 성추행범을 붙잡은 야구해설가 이병훈(45)씨 등 용기 있게 남을 도운 이웃 16명도 ‘시민영웅’으로 선정됐다. 김현옥씨는 “무섭다는 생각보다 ‘애가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고 말했다. 물에 빠진 어린아이를 구하고 익사한 고교생 고(故) 이재홍군과 봉사활동을 하다 쓰러져 숨진 경찰관 고(故) 김재익 경사는 ‘시민영웅 의사자(義死者)’로 선정됐다.



 에쓰-오일의 CEO 나세르 알마하셔는 “위험을 무릅쓰고 이웃을 구하기 위해 헌신하는 의로운 시민들은 우리 사회를 빛내는 진정한 영웅들”이라며 “이들의 숭고한 희생정신이 널리 알려져 사회가 더 밝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012 시민영웅 수상자 명단



◆의사자=고 이재홍(16), 고 김재익(52)



◆의인=이광호(59), 이준희(49), 전인호(50), 최혁(34),김영구(45), 임상록(26), 장태훈(47), 김현옥(42), 유현식(43), 권용구(46), 김상현(44), 이병훈(45), 김정모(36),박성훈(31), 박일영(34), 잔티담(31·베트남), 김모(16·이름 밝히길 원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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