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취재일기] 공지영의 나치 타령

중앙일보 2012.12.21 00:28 종합 45면 지면보기
류정화
정치국제부문 기자
이길 듯한 싸움에서 질 때. 그 허탈감과 패배감은 쉽게 삭이기 힘들다. 처음부터 안 되는 싸움이라면 자포자기라도 한다. 하지만 피 말리는 박빙 승부에선 결과가 나온 뒤에도 집착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양이다.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가 그렇다. 민주통합당을 중심으로 한 야권은 투표 마감 직전까지만 해도 거의 다 이긴 싸움이라 여기는 분위기였다. 그러다 2~3시간 뒤 뒤집어졌다. 부풀었던 정권교체 기대감은 싸늘히 식어버렸다. 패배라는 차가운 현실이 야권을 온통 휩쌌다.



 정작 당사자인 문재인 후보는 담담했다. 19일 자정을 넘기지 않고 당사를 찾아 ”패배를 인정한다. 박근혜 후보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당선인이 국민 통합과 상생의 정치를 펴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깨끗이 승복한 것이다. 문 후보뿐 아니다. 그의 멘토로, 찬조연설자로 나섰던 사람들은 인터넷에, SNS에 이런 말을 남겼다.



 “그 모든 절망과 좌절 속에서도 되돌아보면 우리가 외치던 많은 것들이 실현됐습니다. 오늘 하루만 더 슬퍼하고, 내일부터 우리 함께 힘내요. ^^ 서로 위로하고, 칭찬하고, 격려합시다.”(진중권 동양대 교수)



 “여러 많은 분들 많이 애쓰셨습니다. 그리고, 지나친 패배의식은 버리자고요. 괜찮아요. ^^ ”(만화가 강풀)



 "기운 빠지고 암담한 건 어쩔 수 없지만 서둘지 않고 천천히, 다시 바라보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내가 잘 몰랐던 ‘사람의 마음’이란 것에 대해.”(배우 김여진)



 대개는 툭툭 털고 다시 시작하자는 말들이다.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이는 모습들이다. 성숙한 의식 덕분 아닌가 싶다.



 그런데 이건 뭔가. 한구석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아집과 집착은.



 “아침에 한술 뜨다가 비로소 울었다. 가끔씩 궁금한데 나치 치하의 독일 지식인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유신 치하의 지식인들은? 절망은 독재자에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열광하는 이웃에게서 온다. 한반도, 이 폐허를 바라보고 서 있다.” 작가 공지영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이게 알려지자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우리 사회가 나치라고?” “왠 셀프 지식인?” “당신 같은 독선 때문에 문재인이 졌어요” 등의 비아냥이 넘쳐났다.



 선거에선 승자의 아량뿐 아니라 패자의 승복도 중요하다. 그래야 다음에 또 승부를 벌일 수 있다. 문 후보는 유세장을 찾을 때마다 “서로 싸우지 않고 보복하지 않는 정치, 겸손하고 깨끗한 정치를 하겠다”고 말해 왔다. 그의 말에 ‘내가 이기면’이라는 전제가 달리진 않았다. 그렇다면 패배를 깨끗이 승복하는 것도 새 정치다. 공지영에게 새 정치를 따르라는 건 무리일까.



류 정 화 정치국제부문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