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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대통령의 뒷모습

중앙일보 2012.12.21 00:26 종합 46면 지면보기
김영훈
경제부문 차장
사진작가 강영호는 최근 1년간 박근혜 당선인의 사진을 찍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현장을 쫓아다니며 찍은 ‘아스팔트 사진’이다. 그가 블로그(blog.naver.com/kyhsang)에 올린 사진은 낯설다. 선거 벽보에서, 홍보물에서 익숙하게 봐 온 박 당선인의 앞 얼굴을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강 작가는 박근혜를 둘러싼 공간을 찍었다. 식당에서 혼자 덩그러니 앉은 채 물끄러미 식탁을 보는 사진을 통해 작가는 그의 운명적 외로움을 전한다. 차에서 내려 머리를 젖히고 허리를 펴는 사진에선 그의 고단함이 보인다.



 박 당선인을 전면에 배치해 크게 나온 사진도 있다. 이 가운데 당선인의 얼굴이 부각된 사진은 테러의 흉터가 선명한 옆 얼굴뿐이다. 거의 대부분은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역설적이게도 그 뒷모습은 박 당선인과 사진을 보는 사람이 교감하게 한다. 그의 뒤통수 너머로 그가 만나는 사람의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웃고, 누군가는 운다. 어떤 이는 놀라고, 어떤 이는 환호한다. 공감은 당선인과 같은 시선을 갖게 되는 순간에서 비롯됐다.



 그는 이제 각종 매체를 통해 더 많이 우리와 마주할 것이다. 선뜻 다가가기 힘든 단정하게 손질한 머리와 침착한 얼굴을 하고서 말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그를 더 외롭게 할 게 분명하다. 그러나 그는 아닌 척 꼭 다문 입술로 우리를 맞을 것이다. 청와대도 ‘인증 샷’을 양산할 것이다. 대통령을 중심으로 주변에 참모가 앉은 그 전형적이고, 권위적인 사진 말이다. 백악관은 그렇지 않다. 강영호 작가는 뒷모습이 많은 미 대통령 사진을 분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대통령이 바라보는 대상과 대통령을 바라보는 사람의 표정을 통해 호감도를 간접적으로, 그러나 더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싸움에선 상대에게 등을 보이지 않는 법이라 했다. 이제 대선은 끝났다. 강 작가의 사진처럼 이제 뒤를 내주시라. 뒤로 돌아선다는 것은 불통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외면하기 위해 돌아설 때나 적용되는 얘기다. 국민을 향해 서 있는 뒷모습이라면 사정은 달라진다. 그가 뒷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면, 우리는 그가 보는 곳을 함께 볼 수 있다. 마주할 때 그와 나는 서로 객체지만, 나란히 같은 곳을 본다면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대통합이다.



  박 당선인은 탕평 인사를 말한다. 진정 탕평이 되려면 그는 반대 진영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믿어야 한다. 신뢰의 최상급은 상대에게 등을 드러내는 것이다. 뒷모습은 허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테러를 당했다. 부모도 그렇게 잃었다. 그래서 뒷모습을 보이는 게 더 힘들 수 있다. 그러나 두려워 말라. 강 작가가 찍은 박 당선인의 뒷모습 사진에는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를 지켜보는 국민 누군가의 얼굴이다. 그가 허리를 숙이면 숙일수록 그 얼굴들은 더 많이, 더 크게 화면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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