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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꼼수에 중독된 정치

중앙일보 2012.12.21 00:24 종합 47면 지면보기
김진국
논설실장
“문재인, 그 참 사람은 좋은데….” 이번 선거 기간 내내 수없이 들었던 말이다. 사람이 좋으면 찍어주면 될 일이다. 그런데 ‘은데…’는 왜 붙이는 걸까. ‘은데…’를 붙이는 사람들의 말은 한결같다. “그 옆에 있는 사람들 설치는 꼴이 보기 싫어서….” ‘노빠(노무현 열렬 지지자)’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완장’의 악몽에 치를 떨었다.



 문재인 후보를 돕는 사람들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안철수 후보가 사퇴하고 잠적했을 때다. “안 후보는 문 후보를 도울 거다. 확실한 카드가 있다. 문 후보는 의원직을 사퇴하고, 이해찬·박지원 의원은 정계은퇴한다. 노빠들은 공직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할 거다.” 새 정치를 내세운 안철수의 변화 요구를 수용한다는 것이었다.



 “글쎄….” 나는 의문을 제기했다. 그럴 거라면 애초에 문재인 대신 안철수를 선택했을 거라고 했다. 문재인을 선택한 건 물러나기 싫어선데 2선 후퇴를 받아들이겠느냐, 정치를 그만두느니 야당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당 원로들이 실제로 그런 건의를 했지만 결과는 내가 예측한 대로였다. 다만 안철수가 미적지근하게나마 지원을 시작한 건 의외였다.



 이번 선거는 실망스러운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새 정치에 대한 요구가 거셌다. 그러나 정치권은 외면했다. 오히려 과거의 선거 경험을 내세워 정치공학에 매달렸다. 거기에 개인적 이해관계까지 집어넣어 뒤죽박죽이 됐다. 꼼수에 미련을 못 버린 탓이다.



 선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말하는 비장의 무기는 ‘한 방’이다. 선거 막판에 결정적인 ‘한 방’을 터뜨려 상대를 변명할 새도 없이 무너뜨리는 기술이다. ‘억대 피부관리’나 ‘국정원녀’ 같은 것이다. 요즘은 정치권 밖의 지원 세력들까지 ‘한 방’의 유혹에 빠져 있다. ‘나꼼수’가 북한 김정남 인터뷰설을 흘린 것도 상대의 ‘한 방’을 물타기하려는 것이다. 서울시장 선거 때는 ‘억대 피부관리’로 재미를 봤다. 그러나 ‘김용민 학습효과’의 영향이 컸다. 저질·악성 메시지는 오히려 역풍을 불러왔다. 반대 측 지지자를 격분시키고, 결속시키는 부작용만 낳았다. 국민은 진화한다. 정치권이나 얼치기 정치꾼보다 훨씬 진화가 빠르다.



 증오의 정치도 심판받았다. ‘사람 좋은’ 문재인이 거부당한 이유는 노빠의 증오의 정치 때문이다. “당신을 떨어뜨리기 위해 나왔다”는 이정희의 독설도 증오의 정치다. 증오의 정치는 정치를 전쟁으로 만든다. 나라의 미래보다 승부에 매달린다. 대화와 타협, 민주적 절차는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사회 통합은커녕 분열을 통해 기존 지지층을 다지는 데 급급하다. 합리적 토론이 불리한 세력, 광적인 지지층을 놓칠까 안달하는 세력에나 그럴듯한 방법이다.



 좌우 대립의 낡은 프레임도 깨졌다. 이미 그런 낡은 틀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유권자가 너무 많아졌다. 그런데도 정치 기득권층은 프레임 전환을 싫어한다. 자신의 기득권이 그런 프레임을 통해 나왔기 때문이다. 경쟁의 틀을 바꿔버리면 기득권의 미래가 불투명해진다. 대통령이 되려면 그런 틀을 깨고 나와야 한다.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 후보 지지층을 흡수하기 위해서는 더욱 그랬다. 그러나 ‘사람 좋은’ 문재인은 이 부분에서 리더십의 한계를 보였다. 통진당 부정경선 사태 처리에도 미적거렸고, 오히려 연대했다. 통진당 이정희 후보의 독설에 숨겨진 독의 효과를 간파하지 못했다. 북방한계선(NLL), 강정마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문제도 이념적으로 끌려갔다. 그러다 일관성도, 신뢰도 모두 잃어버렸다.



 박근혜 당선인의 승리도 위험한 승리다. 20~40대 유권자의 지지가 문재인 후보의 절반밖에 안 된다. 이번 선거야 50~60대의 총궐기로 뒤집었지만 앞으로의 선거는 어떻게 할 건가.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박근혜의 정책은 대학생들의 지지를 받았다. 순환출자나 안보정책도 안철수의 정책과 닮았다. 20대가 거부하는 게 정책 때문만은 아니라는 소리다. 과거 보수 정권들의 행태를 보아왔기 때문이다. 직선제를 다시 시작한 이후 한 정권도 패거리 인사, 친인척·측근 부패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기존 젊은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말보다 실천이었던 것이다.



 여야 정치권 모두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반독재 투쟁을 하던 시절에는 정권을 비난하고, 대기업을 두드려 패면 모든 것이 용서됐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이미 일자리와 상생 발전의 미래 프레임으로 옮아가 있다. 그럴듯한 포장을 해서 정치적 이익만 도모하는 과거 행태로는 해법을 찾을 수도, 마음을 얻을 수도 없다. 이번 선거를 뼈아픈 반성의 계기로 삼지 못하면 다음 선거에서는 그 정당의 흔적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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