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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미술시장 위기를 이겨내는 법

중앙선데이 2012.12.16 02:15 301호 30면 지면보기
지난 10여 년간 세계 미술계의 화두는 단연 ‘미술의 상품화’이다. 인터넷 등 정보 통신망의 급속한 발전과 금융자본의 미술시장 유입은 ‘투자 상품’으로서의 미술품을 바라보는 시각을 심화시켰다. 미술품이 괜찮은 투자 상품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본이 미술시장으로 밀려온 것이다. 서구 미술계의 호황이 1990년대 말 시작되어 2008년 전후로 닥친 금융위기 시점까지 10년 가까이 거침없이 지속되었다. 국내의 경우는 오랜 침체 끝에 2006년께에 이르러 갑자기 시장이 춤을 추기 시작하다가 꼭 2년여 만에 세계 금융위기와 함께 무력하게 주저앉는 ‘반짝 경기’가 되고 말았다.

그런데 최근의 서구 미술계는 금융위기 시기의 시장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 지표를 여러 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주요 아트페어는 매출 강세로 다시 호황을 보이고 경매에서의 미술품 가격은 최고점을 기록했던 2006~2008년 당시의 가격선을 대체로 회복했다. 세계 굴지의 모 경매 회사는 ‘동시대 미술’ 경매의 올 상반기 매출이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한번 큰 위기를 경험한 서구 미술계는 미술품의 가격 회복에 있어서 매우 조심스러운 자세다. 그러면서도 또 다른 비즈니스 대안을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아시아 시장의 적극적인 개척에서 찾으려 시도하고 있다. 불과 1~2년 사이 서구의 주요 갤러리들은 홍콩에 앞다퉈 지점을 개설하고 아시아 컬렉터들을 대상으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판매해온 서구 작가들뿐만 아니라 아시아 로컬 작가들도 적극적으로 영입하며 막대한 자본력과 선진적 운영 시스템을 바탕으로 아직 전반적으로 영세하고 전속 작가 체계에 대한 인식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은 아시아의 많은 갤러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리고 세계 최대의 아트페어인 아트바젤은 홍콩 아트페어를 인수하여 ‘아트바젤 인 홍콩’이라는 명칭으로 2013년 론칭할 예정이다. 오늘날 미술시장의 주요 두 축이 ‘경매’와 갤러리들의 단적 판매 방식인 ‘아트페어’라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이미 서구 주요 경매회사들이 자리 잡은 홍콩에 서구의 주요 갤러리들과 최대 아트페어가 가세해 서구 미술상인들이 아시아 미술시장의 판을 본격적으로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세계화된 미술시장은 양극화 상황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는데, 구조가 그들과는 비할 나위 없이 취약하고 몇 년째 불황의 늪 속에서 맥을 못 추고 있는 국내 미술시장을 들여다보면 상황은 매우 심각하다. 국내 미술시장의 불황 이유라면 지속되는 경제 침체 등 외부의 요인도 있지만 미술계 안쪽의 문제로 집중해서 생각해볼 때 더욱 근본적인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서구 미술계 역시 근래 금융자본 유입과 함께 지나친 상업화로 부작용을 겪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는 오랜 기간 다져진 체력이라는 것이 있다. 작가들에 대한 전문가적 평가의 충실함을 잃지 않고 미술사적으로 소장가치가 있는 작품들의 구입에 비중을 두어온 미술관의 올바른 역할, 그리고 전속 작가 제도가 확실한 갤러리 시스템, 또한 미술작품이 보여주는 진보적 독창성을 아끼는 진정한 ‘미술 애호가’로서의 두터운 컬렉터 저변 등 오랫동안 미술계를 지탱해온 건강한 구조가 단단한 지층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기본’이 갖춰져 있다는 의미다.

이 ‘기본’은 거대자본에 의한 지나친 상업화로의 출렁거림 속에서도 미술시장의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지는 않는 저력이 된다.

하지만 국내 미술시장은 말 그대로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짧은 미술시장의 역사 속에서 거품 낀 시장만 있었을 뿐 위에 언급한 ‘저력’을 키울 경황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계화’된 시장 논리 앞에서 이제 국내 미술시장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지름길은 없을까. 세계시장의 흐름을 발 빠르게 포착하고 순발력 있게 움직이는 대응자세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이와 더불어 저들의 저력이 ‘기본’에서 나왔음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즉 시간이 조금 더 걸리고 당장 이익이 덜하더라도 미술판에 갖춰져 있어야 할 ‘기본’은 반드시 노를 저어야만 건널 수 있는 강임을 깨닫게 될 때 그 지름길은 좀 더 가까이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박경미 순수미술을 전공한 뒤 1989년부터 미술계에서 일하고 있다. 2001년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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