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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거리 찾다 푹 빠져…몸 만들기 위해 해병대 근무”

온라인 중앙일보 2012.12.16 01:52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귀국한 윤승철씨가 지난 13일 남극과 사하라 사막 등지에서 겪은 경험담을 설명하고 있다.
“도전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4대륙 사막을 뛰는 것도 도전이고, 자격증을 따고 영어 공부를 하는 것도 같은 도전입니다.”


‘4대 극지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한 윤승철씨

이집트 사하라 사막부터 남극 대륙까지 올 한 해 동안 4대륙 사막을 도는 ‘4 데저트’ 대회 완주라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고 돌아온 윤승철(23·사진)씨. “초인적인 일을 한 해에 어떻게 모두 해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담담하게 대답했다.

13일 기자와 만난 윤씨는 “마음먹은 일은 시간이 얼마가 걸리건 결국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게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눈폭풍 조난 위험GPS 지니고 경기



막상 만나본 윤씨는 사막과 설원을 달리는 ‘철인’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남극 설원 태양빛에 코끝이 그을린 것 말고는 여느 청년과 다를 게 없었다.



이맘때 남극은 연중 가장 따뜻한 여름철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여름을 떠올리면 곤란하다. 밤이면 영하 20도까지 기온이 내려간다. 낮에 잠깐 영상으로 올라가지만 안심할 수 없다. 언제 눈보라가 휘몰아칠지 모른다. 눈 깜짝할 순간에 조난을 당할 수 있어 참가자들은 위치추적장치(GPS)와 비상용 방한·방풍막, 침낭 등으로 구성된 서바이벌 키트를 필수적으로 지참한다.



하지만 어떤 고난도 윤씨를 비롯한 도전자들을 막지는 못했다. 윤씨는 “대회 마지막 날 백야 때문에 새벽까지 지지 않는 해를 바라보며 전 세계에서 온 도전자들과 나눈 정담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동국대 문예창작과 2학년(휴학 중) 학생이다. 극지를 달리는 문인 지망생인 셈이다. 전공을 택한 계기가 먼저 궁금했다. 현대중공업에서 일하는 아버지 윤차근(50)씨의 장남으로 울산에서 태어난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다리를 크게 다쳤다. 4개월이나 입원을 해야 했다. 윤씨는 “병원에서 소설을 비롯한 온갖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보냈다”며 “어느 순간 글을 쓰는 게 무척 좋다는 생각에 작가의 꿈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 입학 후엔 작품 소재를 찾다가 극한에 도전하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생각했다. 색다른 얘기를 찾다가 ‘극지 마라톤’을 접했다. 윤씨는 “극지 마라톤 소개 사이트에서 드넓은 사하라 사막을 힘차게 뛰어가는 참가자의 사진을 봤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눈을 감아도 그 사진이 눈앞에 펼쳐졌다.



도전을 결심했지만 몸 상태가 문제였다. 어릴 때 다친 다리도 걱정이었지만 그는 의사들도 보기 드물다고 할 정도로 심한 평발이다. 하지만 열정을 억누를 수는 없었다. 목표가 정해진 뒤 모든 것을 여기에 맞췄다. 집요하게 매달렸다.



극지 마라톤 사진을 큼지막하게 뽑아 자취방 침대 위 천장과 벽에 붙였다. 윤씨는 “아침에 아무리 피곤해도 눈을 떠 사진을 본 순간 벌떡 일어났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운동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아예 해병대에 자원 입대했다.



부모 몰래 자취방 보증금 빼 참가비



제대 후 본격적으로 대회 준비를 시작했지만 참가비 조달이 문제였다. 해병대 시절 낙하 훈련 때마다 받은 생명수당과 입대 전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을 합쳐도 턱없이 부족했다. 스포츠용품 회사나 대기업 등 100여 곳을 찾아다녔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자취방 보증금을 쓰기로 하고 부모님 몰래 방을 빼 더운 물도 안 나오는 작은 월세방으로 옮겼다.



2011년 11월, 이렇게 떠난 사하라는 만만치 않았다. 숨도 제대로 쉴 수 없는 끔찍한 더위였다. 하루 평균 40㎞씩 6박7일간 250㎞를 뛰었다. 5, 6일 차에는 24시간 안에 90㎞ 가까이를 뛰어야 하는 강행군이었다. 윤씨는 “몸과 마음이 극한의 테스트를 받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몇 번이나 고비를 넘겼다. 대회 주최 측은 15㎞마다 체크포인트를 두고 물을 보충해준다. 대회 참가자들에게는 체크포인트가 자리한 검은색 텐트가 오아시스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분명히 저 앞에 보이는 검은색 텐트를 향해 한참이나 달려갔는데, 어느 순간에 텐트가 사라지는 경험을 두 번이나 했다. 신기루였다. 실종 위기도 겪었다. 모래바람의 흔적을 발자국으로 착각한 채 엉뚱한 곳으로 간 것이다.



온갖 고난을 뚫고 무사히 주하고 나서 얻은 성취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윤씨는 목표를 새로 세웠다. 2012년 한 해에 4개 대륙 모두를 돌아 그랜드슬램에 도전하기로 했다. 자금 마련을 위해 소셜 펀딩 사이트에 글을 올리고 후원을 받았다. 막연히 돈을 달라고 할 일이 아니었다. 후원자들에게는 사하라 사막의 모래와 남극 대륙의 얼음물을 작은 병에 담아 선물하기로 했다. 고비 사막에 갈 때는 모금한 돈의 일부를 사막화 방지를 위한 나무 심기에 보탰다. 강연도 여러 차례 했다. 주제는 언제나 도전이었다. 그는 한 강연에서 했던 ‘꿀벌과 파리’의 얘기를 들려줬다. “어두운 방에서 꿀벌과 파리가 각각 든 유리병의 입구를 밑으로 향하게 든 뒤 위에 빛을 비춰보세요. 똑똑한 벌은 밝은 곳만 찾아서 막혀 있는 위쪽에서만 맴돕니다. 하지만 파리는 사방에 부딪치다가 아래쪽 입구를 찾습니다. 세상에 꿀벌처럼 똑똑한 사람도 많지만 파리처럼 여기저기 부딪쳐보고 새로운 해법을 찾는 사람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3월 중국 고비 사막에서 벌어진 첫 대회 완주를 시작으로 국내와 대회 장소를 오가며 한 해를 보냈다. 대회 준비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 것도 큰 자산이 됐다. 부모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는다. 장남이 문학을 택하고, 해병대에 자원 입대하고, 전 세계 사막을 돌아다녀도 묵묵히 믿어준 분들이다. 올해 사하라 사막 대회 때는 친동생 승환(19)씨도 함께 완주하며 우애를 키웠다.



윤씨는 아직 새 목표를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내년 초엔 자신의 경험을 담은 책을 낼 계획이다. 복학과 함께 밀린 학업도 해야 한다. 하지만 초조하지는 않다. 그는 “앞으로 할 일도 많고 어려움도 있겠지만 더 이상 두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이승녕 기자·윤설아 인턴기자 franc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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