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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서툰 나처럼 괴물도 뭔가 오해받고 있어...그게 내 상상의 출발점

중앙선데이 2012.12.16 01:45 301호 10면 지면보기
(왼쪽)2층 전시장에는 팀 버튼의 어린 시절 드로잉과 괴물 조각이 설치돼 있다.(오른쪽)팀 버튼:1958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뱅크 태생. 17세 때 애니메이터가 되기로 결심했다. 디즈니사가 설립한 예술학교인 칼아츠(캘리포니아 예술학교)에서 2년간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뒤 디즈니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4년 뒤 독립해 ‘배트맨’(1989),‘가위손’(1991), ‘유령신부’(2005) 등을 연출했다.베니스 국제영화제 평생공로상(2007),프랑스 예술문학 훈장(2010) 등을 받았다.
“팀 버튼 도착! 바로 작품 살피러 미술관행.”
9일 트위터에 이 한 줄과 함께 팀 버튼(54) 감독의 사진이 떴다. 서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장을 살피는 모습이었다. “그가 지금 정말 한국에 있단 말이냐!” 흥분한 멘션들이 SNS를 달궜다. 그리고 이틀 뒤인 11일 “팀 버튼, 이번엔 광장시장에 나타나다! 빈대떡과 막걸리에 완전히 반한 듯^^”이라는 내용이 다시 올랐다. 서울 예지동 광장시장의 한 막걸리집에 앉아 있는 그의 사진과 함께. 전시 공동 주최사인 정태영 현대카드 대표가 트위터에 올린 것이다. 팀 버튼은 주점 벽에 특유의 괴물 그림을 남겼고, 시장 내 여러 상점을 다니며 아이쇼핑을 즐겼다. 700명 가까운 트위터 사용자가 이 장면을 퍼나르며 열광했다.

아시아 첫 전시회 여는 팀 버튼 감독

비주류 감성으로 할리우드에서 히트한 감독, 팀 버튼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다. 영화 홍보가 아니라 개인전을 위해서다. ‘배트맨’(1989), ‘가위손’(1991), ‘크리스마스의 악몽’(1993), ‘빅피쉬’(2003) 등 지난 25년간 14편의 영화로 우리를 웃고 울려온 그의 B급 정서는 전시장에서도, 짧은 서울 일정에서도 톡톡 튀었다. 3박4일의 방문을 마치고 그는 떠났지만 전시는 내년 4월까지 이어진다. 어린 시절 습작부터 회화, 데생, 사진, 영화를 위해 만든 캐릭터 모형까지 총860여 점으로 구현한 ‘팀 버튼의 세계’다. 기자는 전시 개막 이틀 전인 10일 오후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그와 살며시 만났다. 고백하건대 기자여서 행복했다.

1 무제(굴소년의 우울한 죽음)1998, 종이와 펜, 잉크와 수채,27.9X35.6㎝2 무제(굴소년의 우울한 죽음)1982-1984, 종이에 잉크와 마커와 색연필, 25.4X22.9㎝3 무제(생명체 시리즈)1997-1998, 종이에 파스텔,35.6X27.9㎝
일제시대인 1928년 경성재판소로 지어진 르네상스식 건물, 그 고색창연한 전면부를 살려 리모델링한 서울시립미술관이 뱀파이어의 성처럼 변했다. 전시장 흰 벽은 검게 칠해졌고, 괴물 드로잉들이 한가득 걸렸다. 입구와 계단도 동심원 무늬나 괴물 모양 조형물로 치장했다. 붕대를 칭칭 두르거나 몸 곳곳에 꿰맨 자국이 남아 있는 괴물 등 전시된 드로잉은 그의 영화만큼이나 기괴했다. 다리가 쭉~ 길어진 세 개의 의자가 탁자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는 그림, 발끝에 주사기들을 꽂은 채 박쥐 날개를 달고 있는 거미 그림, 점토ㆍ철사ㆍ스티로폼 등으로 만든 괴물 모형도 전시장을 한 자리씩 차지했다. 그의 영화와 똑 닮았다. 팀 버튼에게는 두 개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 선과 악, 기쁨과 슬픔, 정상과 비정상, 산 자와 죽은 자,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가 구획돼 있는 게 아니라 문 하나만 열면 서로 오갈 수 있을 정도로 인접해 있다. 그 매개는 ‘기형’이다. 검댕을 남기는 게 유일한 특기인 검댕 소년, ‘가위손’의 에드워드, 벽난로 재로 오인당해 길거리에서 치워진 숯 소년, 남들보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고고학자처럼…큐레이터 2명이 ‘발굴’한 작품들
그런 전시장 안으로 덥수룩한 수염에 헝클어진 머리, 검은 옷을 걸친 음울한 분위기의 남자가 들어왔다. ‘고딕의 영상시인’이라고도 불리는 팀 버튼 감독이다. 전시장에서 마주 앉은 그는, 보이는 것과 달리 겸손하고도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괴물을 연기해 달라” “어릴 적 우울했던 모습을 보여달라”는 사진기자의 요구에도 적극 응했다. 그는 “관객들은 나를 예술가, 혹은 영화감독으로 구분 짓기보다 내가 뭔가를 만들어간 과정을 보게 될 것”이라면서도 “창작 당시의 감정을 다시 마주하는 게 힘들다. 내가 너무 노출되는 건 아닌가 싶다”고 털어놓았다.

-첫 방한이다.
“일본엔 몇 번 간 적 있는데 한국은 처음이다. 기획 의도를 잘 살려 전시 공간이 구획돼 만족스럽다. 서울엔 곳곳의 디자인적 요소, 호텔 안팎과 조각상의 모습 등 전반적으로 흥미를 돋우는 점이 많다.”

-영화가 아닌 그림 전시다.
“영화 연출이든 그림 그리기든 결국 사람들과의 연결고리를 찾는 일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데서 기쁨을 찾는다. 수년 전 뉴욕 현대미술관(MoMA)의 큐레이터 두 사람이 찾아와 전시를 제안했을 때 대단히 놀랐다. 내 그림이나 모형은 영화에 필요해 만든 게 대부분이라 전시는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전시가 성공적이라기에 또 한 번 놀랐다.”

4 무제(숫자시리즈 #6) 1982,종이에 잉크, 마커와 수채,27.9X38.1㎝5 와인과 푸른 소녀, 1997년 경,캔버스에 유채, 71.1X55.9㎝6 ‘배트맨’ 마스크 모형
(왼쪽위부터)팀 버튼의 괴물 캐릭터가 들어 있는 인형의 집,영화속 괴물 로봇 인형,‘슬리피 할로’에 나온 호박 귀신.,‘슬리피 할로’에 나온 호박 귀신.(가운데)팀 버튼이 어릴 적 그린 작품 39광대39(아래)기묘한 음악 속에 엽기적인 인형 캐릭터가 돌아가는 어둠의 방
전시는 2009년 MoMA에서 시작했다. 1년5개월간 이어진 이 전시엔 80만 관객이 몰렸다. 피카소전(1980), 마티스전(1992)에 이어 이 미술관 사상 세 번째 관객몰이다. 그러나 뉴욕 미술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내 영화를 두고서도 평단과 대중의 반응이 엇갈리니 익숙한 상황이었다. 다만 전시 이후 미술관 관람객 수가 늘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뿌듯했다. 예술과 대중의 벽을 다소 허물었다고 생각해서다.”

전시는 이어 호주 멜버른, 캐나다 토론토, 프랑스 파리 등 5개 도시를 순회한 뒤 서울에서 그 여정을 마친다. 아시아에서는 첫 공개다. 전시는 ▶성장기(Surviving Burbank)-상상력을 스케치하다 ▶성숙기(Beautifying Burbank)-창의의 세계로 내딛다 ▶전성기(Beyond Burbank)-꿈을 완성하다 등 시기별로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눴다. 고교 재학 중 만든 아마추어 영상, 캘리포니아 예술학교(Cal Arts) 재학 중 그린 기괴하고도 유머러스한 그림들, 감독이 된 후 영화 제작을 위해 만든 스케치부터 캐릭터 모형들까지 그의 면모를 생생히 구현했다.

-900점 가까이 출품됐다. 대체 얼마나 많이 갖고 있나.
“나도 모른다. 사실 나나 부모님은 정리를 잘하는 편이 아니어서 그림을 상자에 담아 옷장이나 창고에 넣어두고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MoMA의 두 큐레이터는 수년간 고고학자처럼 우리 집과 스튜디오, 그리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캘리포니아 버뱅크의 옛집까지 뒤져 모든 작품을 찾아내 분류했다. ‘이런 것도 그렸었나’ 싶은 것까지 챙겨왔더라.”

-유년기 그림부터 소개된다. 당신의 시작은 어땠나.
“많은 아이가 ‘나는 남들과 달라’ ‘외로워’ 하고 느낄 거다. 나 역시 말수가 적었고 남들과 얘기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교외에서 자라 미술관 관람 같은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없었다. 그리기와 영화 보기가 탈출구였다. 특히 괴물영화를 좋아했다. 의사소통에 서툴렀던 나처럼 괴물들도 뭔가 오해를 받고 있다고 여겼다. 내 상상은 주로 거기서 출발했다.”

-왜 그림을 그렸나.
“그림이야말로 의사소통ㆍ감정표현의 과정, 즉 남들과 얘기하며 나를 보여주는 과정이었다.”
집에서는 아버지와 틀어졌고, 학교에서는 왕따. 소년 팀 버튼의 모습이었다. 소년은 그리고 또 그렸다.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이나 킹콩 등 괴물이 나오는 공포영화 또한 그의 도피처였다. 또래들이 괴롭힐 때면 공동묘지에서 공상 속 친구들과 오싹한 놀이를 즐겼다. 기괴한 외모 때문에 오해받고 소외된 존재, 괴물은 그의 분신이었다. 괴물을 연기하는 배우, 어릴 적 그의 꿈이었다.

-쉰이 넘도록 기발한 상상을 계속할 수 있는 비결은.
“나이 먹어 얼굴과 몸이 늙더라도 마음은 그렇지 않잖나. 아이였을 땐 세상에서 접하는 모든 게 처음이라 세상에 강한 흥미를 느끼며 새로운 방식과 관점으로 사물을 본다. 그런 감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마음이 분주한 성인이 어릴 적 감성을 유지하기란 말처럼 쉽진 않을 텐데.
“살면서 많은 일을 겪고, 감정은 변한다. 그게 영화에도 똑같이 반영된다. 가령 영화 ‘빅 피쉬’를 찍기 전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아버지가 주인공인 이 영화는 만들지 못했을 거다.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새로운 책임이 생기고, 가족과 친구들을 새로 만나고 헤어진다. 그걸 기반으로 작품도 똑같이 변화한다. 그러니 내 말은 ‘어린 아이로 남아있으라’기보다는 ‘어린 시절 호기심을 갖고 사물을 봤던 그 시각을 유지하라’에 더 가깝다.”

줄무늬 양말 신어봤나? 기분이 훨씬 좋아지더라
그는 제스처가 풍부했다. 대화 중에 어깨를 으쓱하거나 현란한 손놀림은 기본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줄무늬, 동심원 이미지에 대해 묻자 “여기도 있다”며 바짓단을 들춰 검정과 보라 줄무늬 양말을 보여줬다. "어느 날 처음으로 줄무늬 양말을 신어봤더니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땅에 발붙이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동심원 무늬는 신비롭고도 영적인(spiritual)인 느낌이 든다.”‘기괴하고 음울한 영화를 즐겨 만드는 이 사람, 상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실은 인터뷰 전에는 걱정스러웠다. 전시장에는 그의 부인인 배우 헬레나 본햄 카터의 메모도 있었는데, 남편이 평소 불면증으로 고생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시차적응도 안 되었을 테니 제대로 예민하겠군.’ 그러나 그는 이날 ‘예술가’보다는 ‘사업가’에 가까운 인터뷰 포스를 뿜었다. 예술가로서의 면모는 어떨까 궁금해 평소 생활을 물었다. “정말 정말 바쁘다”면서도 이렇게 답했다. “워낙 기술이 발달한 세상이라, 끊임없이 울리는 전화벨에 시달리는 가운데서도 가능하면 조금이라도 짬을 내려 노력한다. 그림도 그려보고, 나무에 나는 잎사귀도 보고,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 한다.”

▶현대카드 컬처 프로젝트
-팀 버튼전=내년 4월 14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
입장료 19세 이상 1만2000원, 청소년 1만원, 어린이(7∼12세) 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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