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방법을 배우고 시작하는 인생은 없다

중앙선데이 2012.12.16 00:21 301호 28면 지면보기
조셉 콘래드(Joseph Conrad, 1857~1924)폴란드 태생으로 스물한살에 영국 상선의 선원이 돼 영어를 처음 배웠고,29세 때 영국으로 귀화한 뒤 평생 수많은 영어 작품 을 남겼다.
부와 권력, 감각적 만족을 얻기 위해 당신은 뭔가를 하려고 한다. 당신이 한 행동은 그 누구도 알 수 없고 의심조차 하지 못한다. 어떤 인간도, 심지어 신조차도 전혀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 일을 해치우겠는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이런 물음에 수없이 부딪친다. 벌써 2000년 전에 로마 철학자 키케로가 던진 이 질문은 꼭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답을 할 것을 요구한다. 우리는 그렇게 삶의 본질과 의미를 찾아가는 내면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너무 어려운가? 그러면 『암흑의 핵심(Heart of Darkness)』을 읽어보자. 이 작품은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여행기이자 그 깊은 심연에까지 이르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인데,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여기서 영감을 얻어 ‘지옥의 묵시록’을 만들었다.

박정태의 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26>『암흑의 핵심』과 조셉 콘래드


작중 화자인 말로는 벨기에의 상아 무역회사 소속 기선 선장으로 콩고 강 상류의 오지로 배를 몰고 간다. 그의 임무는 커츠라는 주재원을 데려오는 것인데, 가는 곳마다 직원들은 커츠를 일급 주재원이라든가 아주 주목할 만한 인물이라며 칭송한다. 사실 커츠는 아프리카에 처음 왔을 때 과학과 진보의 사절로 자처했고, 원주민을 교화한다는 도덕적 이념까지 내세웠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그는 회사를 위해서는 가장 생산적인 직원이었지만, 원주민들에게는 가장 잔혹한 약탈자이자 독재자였다. 더구나 오랫동안 착취와 수탈에 몰두하면서 정신적 타락까지 겪었다. 그는 문명을 벗어난 암흑의 오지에서 온갖 무자비한 수단을 동원해 상아를 긁어 모았고, 원주민들을 총으로 제압해 살아 있는 신으로 군림했으며, 식인 의식까지 치르는 악의 화신으로 변해버렸던 것이다.

마침내 말로의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내려오면서 커츠는 화려한 달변으로 담론을 펴나간다. 거짓된 명성과 헛된 탁월성, 겉으로 보기에 성공과 권세로 여겨지던 그 모든 것을 탐해왔던 자신의 영혼을 토로한다. 그러던 어느 날 커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죽음을 기다리며 여기 암흑 속에 누워 있소.” 그때 그의 상앗빛 얼굴에는 음침한 오만, 무자비한 권세, 겁먹은 공포, 치열하고 기약 없는 절망의 표정이 감돈다. 말로는 그 순간을 이렇게 전한다.

“완벽한 깨달음이 이루어지는 그 지고한 순간에 그는 욕망, 유혹, 굴종으로 점철된 그의 일생을 세세하게 되살아보고 있는 것이었을까? 그는 어떤 이미지, 어떤 비전을 향해 속삭이듯 외치고 있었어. 겨우 숨결에 불과했을 정도의 낮은 목소리로 두 번 외치고 있었어. ‘끔찍해! 끔찍해!’”

커츠의 이 외침은 아마도 영문소설에 등장하는 제일 유명한 유언일 텐데, 자신의 삶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이자 지상에서 자기 영혼이 겪은 모험에 대한 냉정한 판결이다. 말로는 끔찍하다(The horror!)는 커츠의 이 마지막 절규가 무수한 패배를 대가로 치르며 얻은 하나의 긍정이요 도덕적 승리라고 믿는다.
“인생이란 우스운 것, 부질없는 목적을 위해 무자비한 논리를 불가사의하게 배열해놓은 게 인생이라고. 우리가 인생에서 희망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은 우리 자아에 대한 약간의 앎이지. 그런데 그 앎은 너무 늦게 찾아와서 결국은 지울 수 없는 회한이나 거두어들이게 되는 거야.”

우리는 사는 방법을 배우기도 전에 살아가야만 한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야 비로소 약간의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작가인 조셉 콘래드는 젊은 시절 말로처럼 콩고 강을 운항하는 기선의 선장으로 일했다. 그는 콩고로 가기 전까지 자신은 머릿속에 아무 생각도 들어 있지 않은 철저한 짐승에 불과했다고 고백한다.
문명사회 안에서의 평온한 삶을 거부하고 목숨을 건 모험을 했기에 그는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암흑의 핵심』은 콩고를 체험한 후 세상과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진 작가 자신의 고백록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커츠의 죽음에서 끝나지 않는다. 말로는 1년 뒤 커츠의 약혼녀를 찾아간다. 약혼녀는 커츠의 고귀한 희생과 모범을 이야기하며, “그분이 남긴 마지막 말씀을 말해 달라”고 고집스럽게 요구한다. 말로는 ‘그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소리칠 뻔하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말해준다. “당신의 이름이었습니다.” 약혼녀는 희열의 눈물을 흘린다. “저는 그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걸 확신하고 있었지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말로는 영국 템스 강변 하구에 떠 있는 유람선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땅도 한때는 이 지구의 어두운 구석 중 하나였겠지.” 2000년 전 로마인들이 정복지 영국 땅을 처음 밟았을 때 그들을 암흑 속에서 구원해준 것은 능률에 대한 헌신이었고, 약탈 행위를 정당화하는 이념에 대한 믿음이었다.

커츠 역시 그랬다. 그는 자신이 필생의 과업을 성취하고 귀국하는 날 제왕들이 그를 맞이하러 기차역까지 나오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고 허영일 뿐이었다. 자기 성찰의 고통스러운 과정을 외면하는 인간에게 진실은 마지막 순간 무섭게 찾아온다. 끔찍할 정도로.



박정태씨는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와 서울경제신문, 한국일보 기자를 지냈다. 출판사 굿모닝북스 대표이며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