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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각장애우 섬세한 손끝 커피가 더 부드러워졌다

중앙일보 2012.12.14 00:11 종합 19면 지면보기
지난 4일 마포구 상암동 마포구고용복지지원센터에서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양성 과정 수료생들의 실력을 뽐내는 창작메뉴 콘테스트가 열렸다. ‘얼그레이 카페라테’로 1등을 차지한 이종범·김소영·조항성(왼쪽부터)씨 팀이 심사위원들에게 직접 만든 커피를 건네고 있다. [박종근 기자]


13일 오후 서울시 신청사 9층 하늘광장 내 카페.

서울시 바리스타 과정 밟은 7명



 점심식사 후 신청사를 찾은 시민과 시 직원들의 주문이 밀려들었다. 카페라테를 주문받은 최화(31·여)씨와 조은빈(21·여)씨가 각각 커피를 내리고 스팀기를 이용해 우유 거품을 만들었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호흡을 맞췄다. 수화(手話)로 대화를 하기 때문이다. 둘은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는 2급 청각장애인이다. 하지만 최씨는 “손님의 입 모양만 보고서도 어떤 커피를 주문하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지난 6월부터 마포구 상암동 마포구고용복지지원센터의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무료 양성 과정’을 다니기 시작해 지난달 말 이수했다. 현재는 커피·쿠키·컵 등 장애인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카페형 매장인 행복플러스가게 시청점에서 실습하고 있다.



 최씨는 2009년 취업을 위해 중국 창춘(長春)에서 온 중국동포다. 다섯 살 때 유치원 놀이터에서 떨어진 후 제때 치료받지 못해 청력을 완전히 잃었다. 그는 “조선족인 데다 장애까지 있다 보니 한국에서 막상 일할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러던 중 지역 농아센터에서 바리스타 양성 프로그램 공지를 보고 도전장을 내밀었다.



 커피 전문업체인 ‘전광수 커피’가 재능기부 차원에서 강사를 파견하고, 서울시가 재료·교재비 등을 지원해 진행되는 수업이었다.



‘전광수 커피’의 김정곤 팀장이 수업을 진행하면 동시에 수화통역사가 교육생들에게 전달했다. 김 팀장은 “일반인은 잘못된 부분을 바로 지적하면 되는데 청각장애인들은 일일이 통역을 거쳐야 되고, 전문용어 등을 수화로 다 표현할 수 없어 어려운 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가능성을 엿봤다”고 했다. 스팀기를 이용해 우유 거품을 낼 때는 압력이 중요하다. 이때 청각장애인들은 소리가 아닌 ‘손의 감각’으로 압력을 맞춘다. 김 팀장은 “청각장애인들은 스팀기 진동과 온도를 일반인보다 더 섬세하게 느낄 수 있어 우유거품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씨는 “수업 때 배운 내용을 수첩에 빼곡히 적어놓고 공부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내 이름을 걸고 카페도 차리고 유명한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4일 마포구고용복지지원센터에서는 청각장애인 바리스타 양성 과정을 이수한 7명의 수료생이 실력을 뽐내는 행사가 열렸다. 2~3명이 한 조가 돼 새로 개발한 메뉴를 만들고 평가를 받았다. 최씨와 조씨는 에스프레소에 아몬드 가루를 넣은 우유 거품으로 만든 카푸치노를 선보였다. 김 팀장은 “아몬드의 고소한 맛을 부드러운 우유에서 느낄 수 있었다”며 “창의성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얼그레이 카페라테를 만들어 1등을 차지한 조항성(30)씨는 “2년 뒤에는 내 이름을 내건 카페를 차릴 테니 언제든지 방문해 달라”고 권했다. 황인식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장은 “취업 취약자인 장애인들의 자립도를 높이고 일자리를 지원하기 위한 민관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최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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