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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report] 매트릭스의 힘 … 볼보, 제품 개발 23개월서 15개월로

중앙일보 2012.12.12 00:12 경제 4면 지면보기
경남 창원의 볼보그룹코리아 기술개발센터에서 연구원들이 영하 30도 환경시험실에서 굴착기 상태를 살피고 있다. 이들은 하이브리드 굴착기 개발에도 참여하는 등 ‘1인 2∼3역’을 수행 중이다. [사진 볼보그룹코리아]


세계 3대 필름회사인 일본 후지필름이 2007년 화장품 사업 진출을 발표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러나 ‘후지필름이 만든 화장품’이라는 광고를 앞세운 여성용 화장품 ‘아스타리프트’는 지난해 1364억 엔(약 1조78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급격한 디지털 물결 속에서 140년 전통의 필름회사인 코닥과 아그파는 쓰러졌지만 후지필름은 위기 속에서 변신을 통해 살아남은 것이다. 그 배경엔 ‘효율화 된 연구개발(R&D)이 있었다. 후지필름은 필름시장의 위축 속에서도 R&D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대신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찾았다. R&D부터 상품화로 이어지는 단계를 축소하고 지휘 계통을 단순화해 상품화에 걸리는 시간을 줄였다.

R&D 효율 끌어올리는 기업들



‘R&D 효율화’가 기업의 화두로 떠올랐다. 경기가 가라앉았다고 무작정 R&D 투자를 줄였다가는 자칫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고, 그렇다고 호황기처럼 아낌없이 투자하기도 곤란해지자 기업들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



 경남 창원의 볼보건설기계는 조직개편을 통해 R&D 효율을 끌어올린 경우다. 굴착기와 아스팔트 도로포장 기계 같은 다양한 건설기계를 취급하는 볼보그룹의 전 세계 사업장 가운데 이곳은 굴착기 본사 역할을 하고 있다.



 1600여 명 임직원 가운데 340명에 이르는 R&D 인력은 거미줄처럼 연결된 ‘매트릭스 조직’을 이루고 있다. 매트릭스란 프로젝트에 기반한 조직이다. 프로젝트 담당(매니저) 아래 엔진과 구조, 유압 등 관련된 부서에 속한 연구원, 재무팀과 마케팅팀 등의 인력 등이 가담한다. 어떤 물리적인 공간에 이들이 모이는 게 아니라 각자 소속된 부서에서 서로에게 할당된 R&D 목표에 맞게 진행하는 방식이다. 더 큰 특징은 한 명이 하나의 프로젝트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압기기 전문가라면 자기의 전문지식이 관련된 2~3개 프로젝트에 모두 참여한다. 재무 전문가 역시 마찬가지다. 이렇게 인력이 여러 프로젝트에 그물처럼 얽혀 있다는 의미에서 ‘매트릭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볼보그룹은 2009년 6월부터 R&D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매트릭스 조직을 꾸몄다. 볼보의 매트릭스 조직은 한국뿐 아니라 스웨덴·독일·미국 등 전 세계 인력을 망라해 구성됐다. 이 회사의 김두상 부사장은 “매트릭스 조직이 이뤄지니 필요할 때마다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 볼보그룹 내 인재들을 활용할 수 있고 산재된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됐다”며 “자연스레 R&D 효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한국에선 매트릭스 조직을 도입한 뒤 개발 착수부터 출시까지 평균 23개월 걸리던 것이 15개월로 줄었다.



 지난 6일 방문한 이 회사 첨단기술개발센터에서는 세계 각지에서 온 연구원들이 공동연구를 하고 있었다. 영하 30도의 냉동실에 굴착기를 집어넣고 내구성을 시험하는 공간, 운전석만 있는 가상의 굴착기에서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실제 굴착기와 같은 느낌으로 동작 상태를 알아볼 수 있는 시뮬레이션 시스템 등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연구원들의 명함에는 두 개 이상의 직책이 표시돼 있다. 매트릭스 조직이라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호진 매니저는 모터와 엔진을 함께 사용하는 건설기계용 하이브리드 시스템 개발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는 글로벌 프로젝트 매니저였다. 이 프로젝트는 한국인 15명, 스웨덴인 30여 명으로 구성돼 있다. 독일인과 미국인도 있다. 강 매니저는 오후 4시에는 스웨덴과 연결해 프로젝트 상황을 점검하고 오후 8시에는 미국과 연결한다. 강 매니저는 하이브리드 프로젝트 말고도 시뮬레이션 시스템과 유압시스템 프로젝트까지 맡고 있다. 강 매니저는 “한국인은 해내겠다는 목표의식이 강해 프로젝트 매니저로서 적격이라는 평을 듣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상품화 단계별로 개발 부서가 달라지는 R&D 전략을 택하고 있다. 1~2년 내 시장에 선보일 상품화 기술의 경우 세부 개발팀, 3~5년 후의 미래 유망 중장기 기술은 연구소, 미래 성장엔진에 필요한 핵심 요소기술의 선행 개발은 그룹 종합기술원 등 3단계의 연구개발 조직을 운영 중이다. ‘단계별 전문화’를 통해 효율 높이기를 꾀하는 것이다. 한편 삼성전자는 경기침체기에도 R&D 투자를 공격적으로 늘리고 있다. 지난해 R&D 투자는 매출의 6.2%인 10조3000억원에 달해 사상 처음으로 연간 10조원을 넘어섰다. 임직원의 25%에 해당하는 5만5000여 명이 R&D 인력이다.



 R&D 효율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맺고 끊기가 중요하다. 포스코는 핵심 사업화 프로젝트의 경우 기술개발 상업화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최고기술책임자(CTO)가 주재하는 기술조정위원회를 통해 경제성이 떨어지는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중단한다. 이른바 ‘스마트 엑싯(Smart Exit)’으로, R&D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전략적 의사결정이다. 포스코는 또 연구원들이 주인의식을 갖고 R&D 상업화에 도전할 수 있도록 ‘R&D기업’을 육성할 계획이다. R&D기업은 완성된 기술을 상업화하기 위한 ‘개발기술 소사장제’와 연구과제 수행 시 연구원의 지분 참여를 통해 연구개발의 완성도를 제고하기 위한 ‘연구과제 소사장제’ 두 가지 축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심재우.이지상 기자



볼보, 매트릭스 조직 도입했더니 …



- 개발 착수부터 출시까지 23개월 → 15개월

- 화상회의 통해 글로벌 연구인력이 공동 작업

- 성과를 중시하는 한국인과 과정을 중시하는 서양인이 서로의 장점을 습득

- 프로젝트에 재무·인사·마케팅·영업 인력도 참여해 연구 인력과 소통·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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