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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검사 추문에 ‘녹슨 칼’ 오명… “외부에 감찰권 넘겨야”

중앙선데이 2012.12.09 01:47 300호 7면 지면보기
지난달 28일 오후 6시50분.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은 충격에 휩싸였다.

‘12월 검란’ 소용돌이의 한복판, 대검 감찰본부

대검 감찰본부가 현직 중수부장인 최재경(50·사법연수원 17기) 검사장에 대해 전격 감찰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기자실에 내려온 이준호(49·16기) 감찰본부장은 굳은 표정으로 준비된 발표문을 읽었다. 이 본부장은 “뇌물수수 혐의로 특임검사팀의 수사를 받고 있는 김광준(50) 서울고검 검사에게 언론취재 대응 방안에 대해 조언하는 등 최재경 중수부장의 품위손상 비위에 관한 자료를 김수창 특임검사로부터 이첩 받아 감찰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현직 검찰총장과 대검 중수부장이 정면 충돌한 사상 초유의 ‘검란(檢亂)’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 격랑의 한가운데에 대검찰청 감찰본부가 있었다. 감찰본부는 원래 검찰 내 다른 부서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는 조직이다. 감찰 자체가 밀행성(密行性)을 중시하는 데다 대형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중수부 등 일선 수사부서에 비하면 별 이목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2년 12월 현재, 검찰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다름 아닌 감찰본부다. 10억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특임검사팀에 의해 기소된 김광준 검사 사건도 감찰본부의 감찰조사로 시작됐다. 여성 피의자와 부적절한 성관계를 맺은 전모 검사 건은 아예 감찰이 수사로 전환된 케이스다.

최재경 중수부장 감찰 발표로 이목 집중
감찰본부는 이번 ‘검란’에서 주연급 조연(助演)으로 활약했다. 한상대(52·13기) 전 검찰총장이 자신의 직할부대장이자 최측근인 최재경 전 대검 중수부장(현 전주지검장)에 대한 감찰조사를 전격 지시했고, 최 전 중수부장을 비롯한 일선 검사들이 강력 반발하면서 검찰은 돌이킬 수 없는 내분에 빠져들었다.
현재 감찰본부는 매형이 근무하는 법무법인에 자신이 맡았던 사건 피의자를 소개해 준 의혹이 있는 서울중앙지검 강력부 박모(38) 검사에 대한 감찰조사를 진행 중이다. 편파수사 논란을 빚은 광주지검 A검사(36) 건도 조만간 감찰 결과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에서는 아직도 감찰본부를 ‘감찰부’로 부르는 사람이 많다. 감찰본부의 전신인 감찰부는 원래 중앙수사부, 공안부, 형사부, 강력부, 공판송무부, 기획조정부 등과 마찬가지로 대검 내 하나의 부(部)로 구성됐다. 감찰부장도 현직 검사장이 맡았었다.

감찰본부가 별도 조직으로 분리된 것은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이후다. 당시 부산지역 건설업자 정모씨가 100여 명의 현직 검사에게 접대와 상납을 했다고 폭로하면서 검찰은 순식간에 ‘쑥대밭’이 됐다. 이 사건에 당시 현직 대검 감찰부장(한승철 전 검사장·이후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까지 연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찰의 감찰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한바탕 홍역을 치른 뒤, 검찰청법이 개정되면서 대검 감찰부는 감찰본부로 격상돼 대검 내 다른 부들과 분리됐다. 감찰본부장도 기존 현직 검사장에서 2년 임기가 보장된 외부 인사로 바뀌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검찰이 감찰 기능을 강화할 때마다 검사 비리 사건이 터졌다. 2010년 ‘그랜저 검사’ 사건, 2011년 ‘벤츠 여검사 사건’에 이어 올해 11월에도 김광준 검사 사건 등 검사 비리 사건이 속출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11월의 저주’란 말이 나올 정도였다.

감찰 기능 강화 때마다 비리 속출의 ‘역설’
검찰은 검사 비리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감찰 제도를 개선하고 특임검사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검·경 수사권 조정과 사법개혁 논의 등 외부로부터의 개혁 압박은 거세졌다.

이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세상을 시끄럽게 만든 검사 비리 사건 치고 사전에 감찰 기능이 제대로 작동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는 비아냥도 나왔다. 수장을 검찰 밖에서 수혈했다 해도, 대검의 독자 부서로 운영된다 해도,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는 검찰 내 조직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대검 감찰본부는 2개의 과(課)로 구성돼 있다. 사정(査定)업무와 검찰공무원의 비위에 관한 정보수집 등 직접 감찰 기능은 감찰1과 소관이다. 감찰2과는 사무감사나 기강감사, 사건평정 등 행정업무를 맡는다. 현재 편제상 감찰본부는 1명의 본부장과 2명의 부장검사급 과장, 7명의 연구관(검사·1과 4명, 2과 3명)으로 구성돼 있다.

현재 대검 감찰본부에는 원래 편제에서 2명의 검사를 더 파견받아 모두 9명의 검사가 있다. 감찰업무를 맡는 감찰1과 소속은 6명으로, 이중 2명은 특임검사팀에 파견돼 김광준 검사 건을 수사했다. 최근 논란이 된 사건들의 감찰 조사와 수사를 진행한 것은 안병익(46·22기) 감찰1과장과 4명의 소속 검사다.

현재 대검 감찰본부를 지휘하는 사람은 이준호 감찰본부장이다. 지난 7월 전임 홍지욱(50·16기) 변호사에 이어 임명된 이 본부장은 대검 감찰본부장 자리가 개방직으로 바뀐 뒤 두 번째로 취임한 비(非)검찰 출신이다.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출신인 그는 검찰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이 본부장은 한 전 총장의 지시로 최 전 중수부장의 감찰에 전격 착수했지만, 부당한 지시는 거부하는 강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한 전 총장이 “김광준 검사와 최 전 중수부장의 문자메시지 내용을 공개하라”고 지시하자 “규정상 감찰 착수 여부는 공개할 수 있어도 특임검사의 수사기록(문자메시지)을 공개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끝내 거부했다. 결국 이 내용은 대검 대변인실을 통해 외부에 공개됐다.

대검 감찰본부는 비위 진정이나 제보를 접수하거나 자체 인지할 경우, 곧바로 사실관계 파악에 들어간다. 감찰에 착수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사전 단계다.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공식 감찰에 들어간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감찰 착수 여부도 비공개로 하는 것이 원칙이다.

잇따라 터진 검사비리로 ‘녹슨 칼’ 취급을 받고 있지만 대검 감찰본부는 일선 검사들 사이에선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때로 공직생활을 좌우하는 ‘저승사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수사 관련 비위 진정이 접수돼 한 달 동안 감찰조사를 받았다는 A부장검사는 “감찰조사를 받은 뒤 피의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번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감찰본부는 또 한 번의 변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외부 출신 본부장 영입과 감찰시스템 강화 등 ‘내부 개혁’을 추진했음에도 제대로 된 성과를 보여주지 못한 탓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외부감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검찰총장의 지휘를 받는 감찰본부가 엄정하고 독립된 감찰을 진행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승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전체 검찰 개혁의 틀 안에서 법무부를 문민화해 검찰과 분리시키고 법무부가 검찰에 대한 감찰권을 직접 행사하는 방식으로 외부감시를 강화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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