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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용기

중앙선데이 2012.12.09 01:18 300호 30면 지면보기
대부분의 대통령에게 흥미 있는 관찰거리가 많이 있지만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제2차 세계대전 때 격침된 어뢰정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부하를 구조한 것이나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창설한 것도 그렇지만, 특히 내 관심을 끈 것은 그가 쓴 한 권의 책이다. 30대 후반 상원의원 시절 척추수술을 받고 병상에 있으면서 쓴 용기 있는 사람들(Profiles in Courage)이다. 케네디는 이 책으로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다.

미국 의회 역사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정치적 순교자의 길을 걸었던 여덟 명의 상원의원에 대한 내용이다. 매사추세츠의 존 Q 애덤스 상원의원은 출신 주보다 국가의 이익을 우선해 영국과의 교역을 봉쇄하는 통상금지법을 지지하다 결국 당에서 축출되고 사임한다. 캔자스의 애드먼드 로스 의원은 정치적 몰락을 예상하면서도 대세와 압력에 굴하지 않고 암살된 에이브러햄 링컨의 후임인 앤드루 존슨 대통령 탄핵에 반대표를 던져 한 표 차이로 무산시킨다. 책 속의 주인공들은 파문(破門)과 모욕, 심지어 살해 압력까지 받으면서도 국익을 위해 한결같이 양심과 신념을 좇아 행동함으로써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곧 다음 대통령이 뽑힌다. 나는 다음 대통령이 임기 중 ‘인기 없는’ 지도자가 되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음 정부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위기는 상시화·장기화되고 경제는 저성장 국면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와 복지 요구는 거세지고 우리 경제와 사회시스템은 지속가능한지 그 어느 때보다 도전을 받을 것이다. 국제정치, 외교, 남북문제 어느 것 하나 녹록한 것이 없다. 우리의 현실과 도전과제를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려주고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장밋빛 구호 대신 모두의 고통분담이 필요한 것은 우리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구조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위기를 극복하는 것 같아도 다음 위기에 바로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내연(內燃)하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가 터지는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언제 올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한 제도와 구조 개편이 광범위하게 필요하다. 지금의 구조가 유지되기를 원하는 기득권층과 맞서고, 때로는 참을성이 부족한 대중에게 인내를 요구하거나 많은 국민이 반대하는 인기 없는 정책을 펴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새 대통령은 이런 차원에서 우선 선거기간 중 쏟아냈던 공약에 대해 솔직할 수 있는 용기가 있었으면 좋겠다. 수많은 약속을 냉정하게 따져보면 좋겠다. 꼭 지켜야 할 약속과 그렇지 않은 약속을 정부 출범 전 대통령직 인수위 기간 중 구별해 제시하면 좋겠다. 그러면서 동시에 국가비전도 함께 제시하면 좋겠다. 선거 때 경쟁적으로 내건 복지공약이나 특정 지역 또는 이익단체의 민원해결성 약속의 합(合)이 국가비전이 될 수는 없다. 우리가 지향하는 미래의 국가상은 무엇이며 거기에 맞춰 바로 할 일과 착실히 준비해서 할 일, 그리고 해서는 안 될 일들을 정했으면 좋겠다.

또한 이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 중 국가장래를 위해 계속 추진해야 할 것은 적극 계승하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경쟁자였던 다른 후보의 공약 중에서도 좋은 것은 과감히 수용하는 금도(襟度)가 있으면 더욱 좋겠다. 그렇게 함으로써 지지자로부터 인기를 조금 잃는 한이 있더라도 솔선해서 사회통합의 큰 발걸음을 떼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이념에 따른 편 가르기나 무조건적인 차별화의 유혹을 떨쳐내는 용기가 있으면 좋겠다.

다음 대통령은 과거 어떤 대통령보다 힘든 시기를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헤밍웨이는 용기란 ‘수난 아래서의 기품’이라고 정의했다. 새 대통령은 자기 온 생애를 걸고 앞으로 닥칠 고난과 도전에 ‘기품 있게’ 맞서는 지도자이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역사는 용기 있는 지도자를 다시 평가한다. 배신자라고 비난받던 로스 의원은 사후 그의 용기 덕분에 전쟁보다 더 큰 재난으로부터 국가를 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새 대통령도 임기 중 또는 자기 생애 중에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더라도 용기 있는 결정과 행동이 국민 마음판에 새겨져 훗날까지 두고두고 존경받았으면 좋겠다. 무릇 살려면 죽고 죽으려 마음먹으면 사는 법이다. 그게 지도자의 ‘진정한 용기’다.



김동연 대통령 경제금융비서관으로 금융위기 극복에 기여했고 기획재정부 예산실장으로 재정 건전화를 주도했다. 미국 미시간대 정책학 박사. 상고 졸업 후 야간대학을 다니면서 행정·입법고시에 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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