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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래의 세상탐사] 공개 못한 통계치, 얼마나 민감하길래

중앙선데이 2012.12.09 01:03 300호 31면 지면보기
얼마 전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기회의에 통계 자료 하나가 올려 졌다. 이 자료의 주요 내용은 ‘국민 처분가능 소득 중 기업(법인)과 개인(가계)의 차지 비율’을 따진 것이라고 한다. 한은이 이 자료를 공개하겠다고 금통위에 사전 보고하는 절차였다. 그런데 일부 금통위원이 이 통계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12·19 대선을 앞두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시기인데 이런 수치가 나가면 어떻게 하느냐는 반론이었다. 박근혜·문재인 두 후보가 경쟁하듯 경제민주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둔 지적이다. 금통위원들은 금리 결정 등 정부의 통화정책을 주로 자문하지만 한은의 내부 운영에 대해 심의·의결하는 권한도 있다. 결국 한은은 금통위원들의 의견대로 통계자료를 대통령 선거일 이후에 발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고 한다.

도대체 이 통계수치에는 어떤 의미가 함축돼 있길래 금통위가 민감하다며 공개를 미뤘을까.

한은의 원 자료를 입수하지는 못했지만 현대경제연구원의 협조를 얻어 이를 추정할 수 있는 통계수치를 뽑아낼 수 있었다. 이를 보면 우리 사회에서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의 목소리가 왜 점점 더 커졌는지를 통계수치로 실감할 수 있다. 한 해 동안 국민이 생산한 파이(부가가치)인 국민 처분가능 소득을 100으로 봤을 때 기업 몫은 외환위기 이전에는 3% 안팎이었고, 가계는 75% 안팎이었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근로자의 임금 등을 통해 가계로 많이 흘러 들어간 것이다. 국가 전체의 파이는 지금보다 훨씬 적었지만 분배 비율로 볼 땐 사회적으로 적정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당시에는 기업이 성장하면서도 양극화니 경제민주화니 비판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아서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양쪽의 균형은 무너져갔다. 지난해의 경우 기업 몫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반대로 가계 몫은 사상 최저치를 면치 못했다. 이를 시계열로 비교해 보면 양극화 해소와 경제민주화가 국가적 문제로 불거지는 시점과 궤를 같이한다. 비정규직의 증가 추세와도 거의 일치한다. 외환위기 극복 과정에서 김대중 정부가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해고가 쉽고 임금을 적게 주는 비정규직을 크게 늘렸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비정규직은 현재 공식 통계상 임금 근로자 1600만 명 가운데 600만 명 수준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규직에 비해 절반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인건비가 많이 들어가는 정규직 일자리를 줄이는 대신 비정규직을 늘려 이윤이 늘어난 측면이 크다. 반면 임금소득이 대부분인 가계 입장에서는 일자리 사정이 악화돼 소득이 줄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바뀐 셈이다. 역대 정권에서 고수해 온 수출주도형 경제정책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데 한몫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국내 기업들이 수출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국내 가계로 전이되는 연결고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과거보다 파이를 더 많이 가져간 기업이 투자를 통해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다면 소득분배의 선순환 구조가 이어질 수 있었다. 사정이 그렇다고 13%대에 이른 기업 몫을 외환위기 이전 수준(3%대)으로 끌어내리자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만에 하나 한은이 발표하지 못한 통계치도 실제로 이런 상황을 압축한다면 정부는 서둘러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가계소득을 늘릴 방안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일자리를 더 만들든지, 근로자 임금을 더 올리든지,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든지 대책을 내놔야 한다.

박근혜 후보는 전체 임금근로자 중 비정규직 비율 30%대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10%대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 문재인 후보는 비정규직 숫자를 임기 내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공언했다. 앞으로 정부의 통계치까지 뒷받침된다면 두 후보 중 누가 당선돼도 비정규직 관련 공약을 실천하는 일은 명분을 얻을 수밖에 없다. 다만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국내 기업들이 어렵사리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만큼 이를 훼손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솔로몬의 지혜와 같은 경제정책은 이럴 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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