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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열풍의 두 얼굴

중앙선데이 2012.12.09 01:02 300호 31면 지면보기
얼마 전 친구들과 ‘우리는 외국어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데 왜 제대로 못하느냐’에 대한 자기비판적 논쟁이 있었다. 사실 우리가 외국어에 바치는 관심과 노력에 비해 실제 구사 능력은 만족스럽지 않다. 혹자는 문법과 해석 위주의 외국어 공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누구는 학생은 결코 스승의 수준을 능가할 수 없다면서 은근히 외국어 교사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누구는 한국의 어법 순서가 대부분의 외국어와 달라 외국어를 배우는 데 핸디캡이 있다는 주장을 한다. 심지어 누구는 각 언어가 갖고 있다는 고유 파장설로 설명한다. 한국어와 일본어는 유사한 파장 대역에 있어 서로 알아듣기 쉬운 반면 영어와 같은 서양 외국어는 그 대역이 상이해 태생적으로 습득하기 어렵다는 과학적 주장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상은 점점 좁아지고 영어가 국제공용어가 되고 있다. 국수주의적일 정도로 불어 사용을 고집하던 프랑스에서도 외국 여행객이 식당에서 알량한 불어를 사용하면 오히려 웨이터가 영어로 답할 정도다. 영어의 중요성이 커질수록 영어에 주눅 들어 사는 사람도 많다. 이제는 영어 구사 능력이 학력·경력·성품 못지않게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는 핵심 요소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영어를 잘하려면 보다 좋은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먼저 배워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과거 중학교부터 배운 영어를 요즘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시작한다. 심지어 동네 유치원에서도 아직 한글도 제대로 깨치지 못한 어린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 시대정신에 맞는 유치원 대접을 받는다. 초등학생 때부터 방과 후 영어학원 다니는 것은 일상사가 돼 버렸다. 상당수 지방자치단체들은 적지 않은 재정 부담에도 불구하고 지역 주민을 위해 영어마을을 운영 중이다.

조금이라도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을 낼 수 있도록 어린아이의 혀뿌리를 자르는 몬도가네식 수술 사례도 있다고 한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모들은 자녀의 백년대계라는 명목하에 조기유학을 결심한다. 일부 유력 인사들은 조기유학 대신 국내의 외국인학교에 보내기 위해 외국 여권 매입 등 불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대학에 들어가면 외국에서 1년 정도는 어학연수나 교환학생을 하는 게 대학생활의 공식처럼 됐다. 국내에서 원어민 교사에 대한 수요가 많다 보니 교사로서의 기본 자질도 부족한 자격 미달의 외국인 교사들도 많다. 누구 말대로 “미시시피 강가에서 바깥 세상 구경 한 번 못하고 장작 패던 사람”도 오로지 자기네 나라 말을 할 줄 안다는 재주 하나로 한국에 오면 선생님으로 대접 받는 판국이다.

이런 외국어 열풍 현상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극성스러울지 모르며 부작용이 우려되는 면도 있다. 그렇다고 경쟁이 극심한 세상에서 내 자녀의 외국어 실력만큼은 남들 못지않게 만들겠다는 부모의 강력한 소망이 당분간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 외국어 열풍은 우리 사회가 모든 면에서 급속히 국제화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어쩔 수 없는 현상일 수 있다. 더욱이 무엇을 해도 더 빨리, 더 잘하려고 하는 한국인의 속성이 이런 현상을 부채질한다. 그 덕인지 높기만 하던 외국어 장벽도 점차 낮아지고 있다. 50대 이상 세대는 외국인을 만나면 공연히 위축되기 일쑤였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대부분 외국어 실력을 갖춰 어느 외국인을 만나도 당당한 모습이 보기 좋다. 아마도 한 세대만 더 지나면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외국어에 대한 자격지심은 상당히 없어지고 지금과 같은 외국어 열풍도 다소 수그러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우리가 외국어를 잘하기 위해 고심하는 동안 외국에서는 “한국말 정말 어려워요” 하면서도 한국어를 배우려고 열과 성을 다하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도 조금은 위안이 되는 대목이지 싶다.



조환복 서울대 무역학과. 외시 9회. 주중 대사관 경제공사, 주홍콩 총영사,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주멕시코 대사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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