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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드레스 입고 '꽈당'…속보이는 섹시마케팅

온라인 중앙일보 2012.12.09 00:57
웬만하면 너그러웠다. 그간 시스루 룩이니, 하의 실종이니 하는 야한 옷차림이 수없이 화제가 돼도 무덤덤하려고 애썼다. 젊으니까, 예쁘니까 할 수 있는 권리이자 축복이라 여겼다. 그런데 이번엔 좀 심했다. 예쁘게 봐달라며 입었다기엔 보는 사람이 불편했다. 지난달 30일 제33회 청룡영화제의 노출 드레스 얘기다.배우 하나경은 브래지어보다 더 가슴이 드러나는 드레스에 치마가 쭉 찢어진 ‘아슬아슬한’ 드레스를 입고 레드카펫에 나타났다. 노출 수위만으로도 숨이 턱 막힐 지경인데 킬 힐을 신고 걷다 그만 비에 젖은 바닥에 미끄러졌다. 맙소사, ‘못 볼 광경’을 온 국민이 지켜봤다.


스타일#: 레드카펫 노출의 사회학

‘사고’는 일파만파 파장이 컸다. 사고 순간부터 영화제 다음날까지 인터넷 포털 검색어엔 그의 이름이 수위를 차지했다. 누리꾼들의 입방아에도 올랐다. ‘홍보를 위한 고의적 행동’과 ‘최악의 실수일 뿐’이라는 공방이 오갔다. 급기야 당사자는 “넘어져서 죄송하다”는 웃지 못할 사과를 트위터로 남겨야 했다. 본인밖에 모르는 ‘사고의 진실’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건 무의미하다. 다만 그런 억측과 두둔이 나오게 되는 상황은 이해가 간다. 언젠가부터 우리네 레드카펫 패션에선 ‘노출이냐, 아니냐’가 유일한 기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칸, 그래미 어워드 같은 해외 시상식에선 레드카펫 패션을 놓고 어느 브랜드냐, 어떤 디자인이 대세냐를 논하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노출 수위도 점점 높아진다. 가슴골이 보이는 정도는 참한 수준이다. 앞은 막혔는데 뒤는 없는, 반전 드레스라는 말도 레드카펫에선 예사다. 지난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에선 배우 곽지민이 상체와 등이 완전히 노출된 블랙 드레스를 입었고, 배우 오인혜는 2011 부산국제영화제에 가슴을 겨우 가리는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올해 부산영화제엔 배소은이 엉덩이가 거의 보일 듯 말 듯한 드레스로 레드카펫에 나서기도 했다. 그때마다 ‘파격’ ‘아찔한’ 등의 수식어가 붙는 기사가 앞다퉈 인터넷에 올랐고, 그들 이름 또한 검색어 수위를 차지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신인 여배우다. 레드카펫에서 ‘섹시 마케팅’을 한다는 삐딱한 시선은 그래서 나온다. 물론 본인들이야 절대 부인한다. “이렇게까지 관심을 받을 줄 몰랐다” “배우로서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라는 얘기다. 일리가 없는 말은 아니다. 신인 배우들이 처음 가는 자리에 좀 ‘오버’할 수도 있지 않나. 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게다. 레드카펫이란 데가 본디 배우들의 개성을 한껏 뽐내려고 만든 자리 아닌가. 선배들만큼은 아니어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면 어떻게든 남달라야 할 터다.



하지만 노출의 약발, 여기까지다. 악플에서 보듯 대중의 ‘학습효과’가 만만치 않다. 노출 수위가 지금보다 더 높아질 가능성? 배우의 품격을 포기하는 일이다. 김혜수·임수정 같은 영리한 배우들은 얌전하고 단정한 드레스로 이미 역발상을 꾀하고 있지 않나.



레드카펫 스타가 되려면 차라리 다른 전략을 생각해 볼 일이다. 좋은 예가 있다. 2009년 칸 영화제에서 ‘돌아보지 마(Don’t look back)’에 함께 출연했던 모니카 벨루치와 소피 마르소는 둘 다 붉은색의 이브 생로랑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여배우 둘이 커플처럼 손을 잡고 등장하니 카메라 플래시가 사방에서 터졌다. 레이디 가가는 또 어떤가. 그는 올 2월 그래미 어워드에서 거대한 알 속에 들어간 채 시상식장에 나타났다. 세기의 커플인 브래드 피트와 앤젤리나 졸리 부부의 경우 블랙 턱시도와 드레스로 완벽한 커플룩을 뽐내기도 했다.



그래도 굳이 노출 드레스를 입겠다면 당당하기라도 하자. 벗을 대로 벗고 나온 뒤 어쩔 줄 몰라 하는 부자연스러운 행동이 더 볼썽사납다. 옆에 서 있으면 ‘볼 것은 다 봤다’고 할 만한 옷을 입고 자꾸 양손으로 뭔가 가리려 하는 걸 보면 짜증까지 치민다. 누가 보여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중요한 건 노출이 아니다. 레드카펫에서 나만의 카리스마로 좌중을 압도하며 걸어나갈 수 있는 옷이냐가 선택의 기준이 돼야 한다. 패션의 완성은 자신감이라는 상투적 공식, 레드카펫에서도 여전히 통한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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