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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아 떠나는 성지순례

중앙선데이 2012.12.09 00:19 300호 27면 지면보기
지난달 2주 일정으로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성지순례도 여행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래도 여행은 삶에서 많은 걸 새롭게 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80여 명의 신자들과 함께 이탈리아·그리스·터키·이스라엘의 성지를 돌아볼 계획이었다. 기대를 가득 안고 인천공항을 떠나 첫 목적지인 이탈리아 밀라노에 도착한 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교전 소식을 들었다. 급하게 일정을 변경해야 했다. 예수가 태어나고 복음을 선포한 곳,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고대했던 신자들은 크게 실망한 눈치였다. “성지순례는 돈이나 시간이 많다고, 건강하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몇 해 전 성지순례를 할 당시 여행 가이드에게서 들은 말이 자꾸 생각났다. 어디 성지순례뿐이랴. 우리의 모든 삶이 그러하리라. 확실히 세상 일은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게 아닌가 보다.

삶과 믿음

성지 중에서 이스라엘이 물론 기독교 최고의 성지지만, 내게 인상적인 장소는 터키의 에페소다. 에페소는 기원전 7세기경 최고의 번성기를 누린 도시답게 고대 유적이 많이 있고 무엇보다 성모와 사도 요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중요한 순례지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기 전, 요한에게 성모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요한복음 19장 26∼27절).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사도 요한과 성모는 기독교 박해를 피해 예루살렘에서 에페소로 피신했다고 한다. 요한은 성모의 여생을 위해 에페소가 내려다보이는 크레소스 산 위에 작은 집을 마련해준다. 요한은 이후 오래도록 에페소에서 활동했고, 성모는 이곳에서 살다 영면해 승천했다고 전해진다.

1967년 교황 바오로 6세, 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이곳을 찾았다. 이후 각국 순례자들이 성모의 집을 찾고 있다. 에페소를 생각하면 마음에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2002년 순례자들과 함께 이곳을 처음 찾았을 때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꼭 다시 오겠노라고 다짐했다. 어머니는 기다려 주시지 않았다. 그해 초여름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하늘나라에 있는 부모님을 그리워할 때면 늘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온다.

여행의 장점은 뭐니뭐니해도 일상의 삶을 떠나는 게 아닐까. 특히 매일 쳇바퀴 같은 생활에서 넓은 산과 바다, 자연을 보는 일 자체가 경이롭다. 여행 중 자연히 생각도 많이 하게 되고 시야가 넓어진다. 결국 그 시선이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성지순례는 어느새 나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행이 된다. 여행은 내게 마치 먼지에 뿌옇던 하늘이 날씨가 개고 맑아져 분명하게 보이는 것처럼 다가온다. 누구나 비행기를 타고 하늘 높이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면 세상과 사람의 존재가 미소(微少)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유명한 음악가가 고향인 그리스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유럽 대륙을 내려다 본 소감을 말한 적이 있다. “지도에는 분명히 국경선이 굵게 그려져 있는데 하늘에서는 그저 아름다운 산과 들만 보이지요.” 인간이 구분해 놓은 구분과 구별의 선은 고립과 고독을 만들어낸다. 사람과 사람을 막아놓은 보이지 않는 장벽이 완전히 사라져 서로 소통하게 되는 날은 언제쯤 올까. 여행 중엔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진다.



허영엽 천주교 서울대교구 대변인·문화홍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오랫동안 성서에 관해 쉽고 재미있는 글을 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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