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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귀식의 시장 헤집기] 경제 종말론? 치유 출발점일 뿐

중앙선데이 2012.12.09 00:11 300호 29면 지면보기
생명력이 대단하다. 마야력이 끝나는 2012년 12월 21일이 바로 인류 종말의 날이라는 믿음 말이다. 권위 있는 미 항공우주국(NASA) 과학자까지 나서 아무런 근거가 없다고 해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맹신자가 넘쳐난다. 러시아에서는 소동이 가라앉지 않자 정부가 종말론을 퍼뜨리는 사람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엄포를 놓을 정도다. 그런데도 보드카·밧줄 등이 든 생존키트가 890루블(약 3만1000원)에 잘 팔린다는 소식이다. 잊을 만하면 다시 출현하는 종말론. 21일은 그중 하나가 종말을 맞는 날이 될 것이다.

경제에도 종말론은 있다. 마르크스가 선구자쯤 된다. 자본주의가 그 자체의 모순으로 붕괴할 것이란 마르크스주의자의 목소리는 위기 때마다 증폭되곤 한다. 독일 막스프랑크연구소의 볼프강 스트레크 교수가 말하는 ‘부채 자본주의의 종말’도 그 배경은 땅이 갈라지듯 금융시장과 기업이 와해되는 글로벌 위기다.
현대 자본주의는 어찌 보면 빚의 바벨탑이다. 바벨탑의 벽돌은 다음 달 이후 발생할 소득을 미리 당겨 쓰는 신용카드의 영수증 한 장이다. 또 문이 활짝 열린 은행으로 들어가 개인이 얻어 쓴 주택담보대출의 증서 한 장이다. 증서를 바구니째 들고 있던 금융사가 그걸로 돈을 빌리고, 그 돈을 또 빌려주는 금융공학이 발명되면서 세상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른바 자산유동화, 자산증권화의 혁명이다. 미래의 소득과 수입, 손자의 세금까지 가져다 쓰는 시간가치(value of time) 금융공학에 힘입어 파생상품의 요술 시대가 본격 개막됐다.

스트레크 교수는 지난 40년간의 경제성장이 부채에 의존한 것이었다고 주장한다. 첫 단계가 1970년대의 ‘돈 찍기(print)’다. 실소득은 정체됐지만 돈을 찍어대니 월급이 오르는 듯한 인플레이션의 환상이 일어났다. 그 고통이 느껴질 무렵 정부는 빚(public debt)으로 지출을 늘려 경제를 지탱한다. 이것도 한계에 봉착한 90년대부터는 민간부채(private debt)를 늘려 경제동력을 창출했다. 돈 찍기, 정부부채, 민간부채의 ‘3P’ 단계를 지나 더 이상 빚을 늘리기 어렵게 된 2008년, 마침내 파국이 왔다. 그리고 거덜난 민간을 구제하느라 정부가 다시 나섰고, 그게 각국 정부의 족쇄가 돼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교육·의료 등 시민의 요구도, 부채 상환이란 시장의 요구도 충족시키지 못한다. 아무리 긴축정책을 펴도 시장을 안정시킬 수 없고, 그렇다고 시민이 원하는 복지를 종전처럼 제공하기도 어렵다. 이게 그가 말하는 위기이자 종말인데 과연 자본주의의 종말까지 논할 정도일까 싶다.

우리에게도 유사 경제종말론이 있다. 가계부채, 인구구조란 시한폭탄이 째깍째깍 돌아가고 있다는 공포다. 하지만 늘 그렇듯 종말은 오지 않을 것이다. 기상이변에 의한 인류멸망 경고가 지구온난화 대책을 낳듯 종말론 역시 치유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믿거나 말거나 콜럼버스조차 종말론 신봉자였기에 아메리카를 찾아냈다고 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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