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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중앙선데이 2012.12.08 23:10 300호 30면 지면보기
포장마차에 처음 간 것은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그날 나는 아버지를 따라 시골 상갓집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뾰족한 날씨가 털옷에 먼지 붙듯 달려들었다. 내가 살던 도시는 바닷바람이 많이 불어서 체감온도가 실제 온도보다 항상 2~3도는 낮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추위를 많이 탔다. 게다가 허기가 지면 더 추운 법인데, 나는 시골 상갓집을 나설 때부터 배가 고팠다. 마침 터미널 주변에는 포장마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무럭무럭 뜨거운 김을 뿜어내며.

김상득의 인생은 즐거워

아버지는 검소하다. 지금도 그렇지만 옛날에는 더 심했다. 박봉의 월급으로 사남매를 키우고 부모님을 모시는 가장이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자라면서 우리는 외식이란 걸 해본 적이 없다. 어쩌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헛된 희망은 품지 않았다. 끼니때가 지나 배가 고프더라도, 길가의 포장마차에서 고소하고 달착지근한 냄새가 흘러나오더라도, 그것이 입안의 침을 범람시키고 주린 위와 창자를 마구 잡아당기더라도, 어린 아들놈이 아무리 포장마차 쪽으로 자꾸 쳐다본다 하더라도 아버지는 꿈쩍도 안 할 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으니까.

자식은 부모를 어디까지 아는 것일까?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포장마차 비닐천막 속으로 쑥 들어갔다. 첫 외식이었다. 포장마차 안을 가득 채운 뜨거운 수증기가 황홀했다. 카바이드 불빛 아래 오징어, 멍게, 닭똥집, 닭발 같은 안줏감들이 진열돼 있었다. 아버지는 소주 한 병과 홍합탕을 주문했다. 그날 나는 처음으로 홍합이란 걸 먹었다. 지금이야 홍합의 씁쓰레한 맛과 향을 좋아하지만, 당시 어린 내 입맛에는 한약처럼 썼다. 그나마 따뜻한 맛으로 국물만 들이켜고 홍합은 몇 개 먹지 않았다. 아버지는 홍합을 맛있게 드셨다. 소주를 한 잔 마시고 홍합을 두 개 드시고, 국물을 한술 떠 삼키는 순으로. 나는 차츰 지루해졌다. 바깥은 춥고 안은 따뜻했다. 포장마차에는 연기와 수증기가 가득했다. 곰장어 굽는 냄새처럼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쉰의 내가 마흔을 갓 넘긴 젊은 아버지 옆에 앉아 있다. 어린 나는 잘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어쩌면 그를 이해할 것 같다. 나도 아버지처럼 홍합탕에 소주를 마신다.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아버지와 나는 간단한 인사를 나눈다. 아버지보다 더 늙은 내가 아버지의 잔에 소주를 따른다. 나는 몇 십 년 만에 닥친 강추위를 이야기하고, 아버지는 느닷없이 찾아오는 죽음에 대해 말한다. 카바이드 불빛에 비친 아버지의 그림자가 흔들린다. 젊은 아버지와 늙은 나는 술잔을 기울인다. 아버지는 오르기만 하는 물가와 막막한 내년의 생계를 걱정한다. 자식 이야기를 할 때 아버지는 수줍게 웃는다. 옆에서 잠든 어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상득아, 이제 집에 가야지.” 아버지가 나를 깨운다. 어린 나는 포장마차 안 아버지 옆에서 그만 까무룩 잠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눈을 뜬다. 내 앞에는 홍합 껍데기가 수북하다. 포장마차 안은 여전히 수증기가 가득하다. 계산을 치른 아버지가 포장마차를 나서도록 나는 잠에 취해 의자에서 미적거린다. “상득아, 이제 집에 가야지.” 아버지의 채근으로 겨우 비닐천막 밖으로 나왔다. 하늘에서 눈발이 흩날렸다. 첫눈이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장이다. 눈물과 웃음이 꼬물꼬물 묻어나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 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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