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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지식] 가난한 집 아이들에게 ‘기회의 평등’은 없는 걸까

중앙일보 2012.12.08 00:43 종합 28면 지면보기
불평등한 어린 시절

아네트 라루 지음

박상은 옮김, 에코리브르

560쪽, 2만8000원




‘가난의 대물림’은 해묵은 주제다. 해답이 없다는 사실도 피로감을 더한다. 괴롭지만 직시해야 하는 문제를 끈질긴 현장 조사로 파고든 책이 번역됐다. 2003년 미국에 출간돼 반향을 일으켰던 『불평등한 어린 시절』이다.



 사회학 박사인 저자는 9~10세 자녀가 있는 중산층·노동자 계층·빈곤층 12가구를 한 달 동안 따라다니며 관찰했다. 세밀화를 그리듯 이들 가정의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묘사한 것은 이 책의 정체성이자 가장 큰 특징이다. 저자는 양육방식, 언어사용, 학교와의 관계 등에서 계층별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가장 큰 차이는 양육방식이다. 중산층 부모가 경제력을 바탕으로 아이에게 쉴 틈 없이 과외활동을 시킨다면 노동자 계층·빈곤층 부모는 자녀들이 형제나 사촌, 동네 친구들과 자유롭게 보내게 한다. 중산층이 아이의 재능을 평가·지원하기 위해 ‘집중양육방식’을 취하는 동안, 사정이 어려운 부모는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 방식을 택한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중산층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다양한 사회활동을 경험하고 재능 개발에 힘쓰면서 경쟁의식을 갖게 된다. 또 고학력자인 부모로부터 풍부한 어휘력과 능수능란한 언어구사력을 물려받는다. 저자는 이런 집중양육방식이 학교 등 사회기관이 원하는 교육 방식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서 성공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고 설명한다.



 이런 교육 방식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자연적 성장을 통한 성취’는 아이들의 독립심과 창조성을 키워줄 수 있다. 저자가 지적하는 것은 ‘기회의 평등’이다. 그는 “탄생의 순간엔 모두 축복을 받지만, 특정 사회 계층에 속한다는 것은 그에 수반하는 기회를 얻는 것과 직결되는 문제”(448쪽)라고 썼다. 그러면서 주정부가 나서서 노동자 계층과 빈곤층의 아이들에게 과외 활동을 제공하는 것을 대안으로 들었다.



 저자가 도출한 결론과 대안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 책의 메시지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집요하게 서술된 ‘개릿 탈링거의 사례’ ‘티렉 테일러의 사례’는 김모군, 이모양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머리’로 쓴 것이 아니라 ‘발’로 썼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강력한 설득력을 지닌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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