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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칼럼] 이제 새마을운동을 놓아주자

중앙일보 2012.12.08 00:16 종합 39면 지면보기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하루 종일 적도 바로 밑 뜨거운 태양열에 시달린 몸을 끌고 숙소에 들어왔다. TV를 켜자 뉴스가 막 시작됐다. 지난달 21일 저녁 9시(우간다 현지 시간)였다.



 “우리는 중국인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그들은 단결돼 있고, 정부가 무엇을 하라고 말하면 그대로 합니다. 그들은 여기(우간다)처럼 쓸데없는 논쟁으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27년째 우간다를 통치하고 있는 요웨리 무세베니(68) 대통령의 연설 장면이었다. 이날 우간다에서는 수도 캄팔라와 엔테베 공항 사이 51㎞를 잇는 왕복 4차로 고속도로 공사 기공식이 열렸다. 중국 수출입은행이 자금 3억5000만 달러를 댔다. 40년 거치, 연리 2%의 좋은 조건. 기공식에는 중국대사도 참석했다. 풍부한 자원을 노린 중국의 아프리카 원조 열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뉴스에서 대통령의 중국 칭찬이 이어졌다. “중국은 돈을 빌려주면서 일부 원조국과 달리 조건을 달지 않습니다. …중국에서는 물건을 훔치다 붙잡히면 총살당합니다. 만약 우리도 그렇게 한다면 도둑이 많이 줄어들 겁니다.” 3선 연임 금지규정까지 철폐(2005년)해 사실상 종신대통령의 길을 걷고 있는 무세베니의 연설은 거침이 없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중국의 정부개발원조(ODA) 규모는 한국의 180배. 돈으로는 상대가 안 된다. 해외 새마을운동 현지 평가단의 일원으로 아프리카를 돌면서 이 점을 실감했다. 그러나 우간다 서부의 키보하·부산자 마을에서 나는 희망을 발견했다. 한국의 경쟁력은 돈의 규모가 아니라 ‘경험’이었다. “살사라보세~. 살사라보세~. 우리도 한본 살사라보세.” 이곳 주민들은 1970년대 한국에서 울려 퍼졌던 ‘잘살아 보세’도 부를 줄 알았다. 한국에서 연수를 받고 귀국한 지도자들 덕분에 재래식 화장실마다 변기 뚜껑을 설치했고, 마을길과 집 주변도 깨끗이 단장돼 있었다. 아프리카뿐이 아니다. 아시아·아프리카 10개국 19개 마을에서 새마을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유엔도 아프리카 빈곤퇴치 프로그램의 하나로 새마을운동을 선정했다.



 그러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라는 생각이 어쩔 수 없이 뒤를 잇는다. 한국은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도약한 유일한 경우다. 대외원조? 물론 기껍다. 서구 국가들이 경제위기로 인해 대규모 원조에서 발을 빼는 요즘 상황에선 더욱 그렇다. 문제는 국내의 새마을운동이 아직 덜 체계화·이론화돼 있고, 정치적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는 5공 시절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던 전경환(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씨가 비리·부정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지켜본 기억이 생생하다. 전 회장이 구속되기 직전인 1988년 3월 청와대 부근 팔판동 자택 앞에서 며칠간 ‘뻗치기 취재’를 했다. 당시 위로차 전씨 집을 찾던 새마을 여성회원들이 하나같이 뽀얀 얼굴 화사한 치장이어서 ‘거친 손 검게 탄 얼굴의 새마을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고 질타하는 취재일기도 썼다. 새마을운동은 1988년 이후 새마을운동조직육성법에 따라 ‘제2의 새마을운동’을 벌이고 있지만 과거의 기억은 아직도 많은 이의 뇌리에 남아 있다. 노무현 정권 때는 청와대 지시로 ‘새마을운동’이라는 말을 쓰지 못하게 한 적도 있다. 당시 캄보디아에 새마을운동을 전수하러 갔던 한 전문가는 “청와대에서 ‘새마을’을 쓰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새마을운동에 해당하는 현지어(크메르어)로 급히 명칭을 바꾸었다”고 회고한다. 그런 노무현 전 대통령도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 “이름에 부정적인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농촌의 환경을 되살리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새마을운동을 다시 하자고 해볼까 싶다”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렸다(2008년 3월).



 ODA 전문가인 임형백(성결대 지역사회과학부) 교수는 “박정희라는 개인과 새마을운동에 대한 평가는 서로 맞물려 있다. 따라서 박정희와 새마을에 대한 평가도 연구자의 정치적 성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날카롭게 지적한다(논문 ‘새마을운동의 세계화와 공적개발원조 적용을 위한 과제’). 박정희의 딸과 노무현의 비서실장이 맞붙은 이번 대통령선거 국면에선 더욱 그럴 것이다. 사실 새마을운동 관계자들은 누가 당선돼도 새마을운동의 앞날이 걱정이다. 박근혜 후보가 되면 너무 발호(跋扈)할까 봐, 문재인 후보가 되면 운동이 초토화될까 봐서다. 서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지역개발 운동인 새마을운동은 아이로니컬하게도 ‘종속이론의 이상을 성공적으로 구현한’ 세계적으로 희귀한 사례다.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체험인 새마을운동에 더 이상은 정치색을 입히지 말자. 누가 되든 새마을운동을 박정희로부터 떼어내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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