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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의 사소한 취향] 결혼을 묻다 ‘우결수’vs‘돈과 꽃’

중앙일보 2012.12.07 00:24 종합 32면 지면보기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처음엔 조금 걱정스러웠다. 아무리 이 땅에서의 결혼이 ‘고난의 가시밭길’이라 하더라도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의 사연만으로 20부작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싶어서다. JTBC 월화드라마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이하 우결수)’의 두 주인공 정훈(성준)과 혜윤(정소민)이 결혼의 첫 번째 고비라는 상견례를 지나 가장 큰 시험대인 예단 문제를 통과하자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나’ 싶었다. 하지만 짧은 생각이었다.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등장하고, 회를 지날수록 이들의 결혼 성사 여부는 점점 미궁으로 빠져들고 있으니 말이다.



 지난주 방송된 10회에서 두 주인공은 두 번째 헤어졌다. “뭐야, 또 헤어져?” 짜증낼 법도 한데, 반응은 호평 일색이다. 이별을 통보하면서 혜윤은 정훈에게 고백한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내 안에 있던, 극복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열등감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어. 왜 난 부잣집 딸이 아닐까. 왜 우리 엄만 품격 있지 못할까. (중략) 우리 사랑은 현실에 졌어. 우리 사랑은 나 자신을 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후진 사람으로 만들어. 미안해.” 얼마 전 무사히 결혼에 골인한 한 친구는 이 장면에서 ‘내 마음 그대로라’ 펑펑 울었다고 했다. 이 드라마가 단지 결혼을 둘러싼 현실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안의 인간을 들여다보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SBS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돈과 꽃’의 한 장면.
 지난 주말, SBS에서 방송된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돈과 꽃’은 돈에 무릎을 꿇고 만 ‘우결수’의 사랑과는 다른, 또하나의 사랑 이야기를 들려줬다. 히말라야 라다크의 브룩파 마을, 이 마을 사람들에게 사랑은 꽃으로 상징되는 성스러운 그 무엇이다. 앙모라는 여인과 결혼하고 싶은 청년 스탄진이 그녀를 위해 준비하는 것은 정성껏 손질한 머리 장식 하나뿐. 꽃과 노래가 함께하는 이들의 단출한 결혼식은 드라마 20회 분량에 담기에도 벅찰 만큼 사연 많은 우리네 결혼 풍경과 대비되며 찡한 울림을 안겼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에서 반복되는 내레이션처럼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관람하며 정작 시선이 머물렀던 건 사랑에 빠진 시골 청년 스탄진의 준수한 외모였으니. “저 정도 생겼으면 머리 장식 하나로도 괜찮잖아?”라는 농담을 던지다 깨달았다. 이건 외모가 기대에 못 미치는 딸의 전 남자친구에 대해 “쟤는 100억원짜리 빌딩이 있어야 용서되는 인물이야”라고 일갈하는 ‘우결수’ 속 혜윤 엄마(이미숙)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꽃으로 정화하기엔 이미 타락해 버린 이 영혼을 어찌하면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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